제왕운기[두타산 베틀바위산성길]
2021. 6. 3. 22:48ㆍ강원
전쟁으로 길이 막혀 10년 동안 산 속에서 농사를 지었다.
이승휴가 과거 급제 이듬해(1253)에 홀어머니를 뵙기 위해 삼척에 갔을 때,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였다. 개경으로 가는 길이 막혔고, 그는 두타산 구동(귀동)에서 1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어머니를 모셨다. 관직을 구하는 시를 보낸 끝에 이장용과 유경의 추천을 받아 벼슬길에 올랐고, 1280년부터는 구동(귀동)에 은거하면서 '제왕운기'와 '내전록'을 저술하였다.
제왕운기: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엮은 서사시.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을 받는 상황에서, 민족의 문화와 역사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자주 의식을 드러냈다는 평과 함께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원나라에 대한 사대(事大)를 합리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단군신화를 서술하여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삼은 것은 '사학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 되었다는 평도 있다. 서문에 '두타거사 이승휴'.
2021년 6월 3일 목요일. 고려 문신 이승휴가 낙향하여 역사책 '제왕운기'를 저술했다는 두타산 자락을 걷다. '베틀바위산성길'로 이름 붙은 길.
무릉계곡 매표소를 지나 왼쪽으로, 베틀바위 가는 길로 들어선다. 봉분 아랫부분에 돌을 쌓아 만든 테를 두른 묘가 눈길을 끈다. 조금 더 가니, 옛 숯가마터를 복원해 놓았다. 회양목 군락지가 나타난다.석회암 지대에서 잘 자란다는 나무. 여기도 대표적인 석회암 지대인 것이다.
푸른 숲에 싸여 시원한 산길. 길은 잘 나 있지만 기파르다. 덕분에 땀에 흠뻑 젖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베틀바위 앞에서 깊은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는다. 바위는 날아갈 듯 삐죽삐죽 솟아 절경을 이루고, 안내판에는 하늘나라 선녀가 내려와서 비단 세 필을 짜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적혀 있다.
다시 가파른 길을 잠깐 오르니 미륵바위. 큼직한 바위가 사람이 서 있듯이 서서 위엄을 부린다. 보는 방향에 따라 미륵불, 선비, 부엉이처럼 보인다고 하며, 400년 전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도 이 바위가 나온다고, 안내판이 설명한다.
이제 길은 그윽한 숲속에서 산허리를 휘감으며 순하게 이어진다. 좋다. 더없이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 매양 이럴 수 있을까.
숯가마터가 또 나오고, 거북바위가 나타나고, 산성십이폭포가 바라다보인다. 산성은 거의 허물어졌고, 온통 허연 바윗돌만 깔려 있어 흙 한줌 보이지 않는 곳에 소나무는 말없이 서서 바람을 쐬고 있다.
용추폭포와 쌍폭포는 무릉계곡의 터줏대감. 용추폭포 아래위가 온전하게 보이는 곳에 앉아 땀을 들이고, 쌍폭포 시원한 물소리에 온몸이 흠뻑 젖는다.
하늘문 이정표에 이끌리다. 까마득한 계단 위에 대문처럼 열려 있는 바위틈. 하늘로 들어가는 까마득한 사다리를 한 계단 또 한 계단 밟는다. 수직에 가까워 아찔아찔하다. 하늘문을 지나 하늘에 오르니, 관음암으로 가는 길이 궁금하다. 오는 듯 마는 듯 보슬비는 꾸준한데. 그래, 가 보자.
아주 험하고 가파른 절벽에 손바닥만 한 터를 찾아 자리를 잡고 들어앉은 관음암은 조용하다. 아, 저기 보살님. 길을 되짚지 않고 계곡 입구로 가는 길을 일러 주신다. 무릉계곡 명물 널찍한 무릉반석엔 옛사람들이 새겨놓은 글씨들이 한가득하다.
초여름 푸른 숲, 푸른 숲 여기저기에 날아갈 듯 박혀 있는 허연 바위, 힘차게 부서지는 하얀 물소리, 산과 물, 하늘을 적시는 보슬비. 땀에 젖고 보슬비에 젖어 걷는 나그네. 옛사람들이 남긴 사연도 보슬비를 맞는다. 토장국을 곁들인 산채비빔밥이 꿀맛이다.
'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릉도원[영월 요선정] (0) | 2021.08.26 |
---|---|
소똥령 옛길, 건봉사[강원도 고성] (0) | 2021.08.19 |
민물김[삼척 소한계곡] (0) | 2021.05.20 |
지지리골[태백] (0) | 2021.05.06 |
이 얼마만인가[오대산 비로봉] (0) | 2021.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