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 살자[거창-김천]
거창(居昌)의 옛 이름 가운데 하나인 ‘거열(巨列)’은 크고 넓은 들판이란 뜻을 가진다고 한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높은 산으로 둘러싸였는데 들이 참 넓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길 양 옆으로 펼쳐지는 들판이며 맑은 물 흐르는 하천이 깨끗하고 기름진 땅이라는 인상을 준다.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들판에는, 요즘 들어 사과와 포도, 쑥을 먹여 키운 소-애우(艾牛) 등과 함께 이 고장 사람들이 특산물로 자랑하고 있는 딸기 재배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인다. 바람이 통하도록 비닐을 약간씩 걷어 올린 비닐하우스 안에는 딸기가 불긋불긋 익어간다.
주상면을 지나 웅양면 소재지에서 점심을 먹고, 3번 국도에서 벗어나 하천 둑을 걷다가 1099번 지방도를 따라 우두령으로 향한다. 소의 머리 모양이란 뜻을 가진 고개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고갯마루에서 양 도에 양다리를 걸치고 기념 삼아 막걸리 한 잔씩을 한다. 김천시 지역으로 내려오는데, 혼자서 감자를 심고 있는 중년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참 부지런하고 건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김천 사람들의 젖줄이라 할 감천 발원지가 있다는 골짜기를 내려오니 김천시 대덕면 문의리 대동마을이다. 대동마을에서 3번 국도를 만난다. 국도는 계속하여 감천 줄기와 이리저리 어울리면서 김천시내로 이어진다. 대덕면, 지례면, 구성면을 흐르는 감천은 참으로 깨끗한 하천이다. 세 개의 면에 속하는 여러 마을들을 지나면서 함께 하는 감천의 둑방길, 그 정취를 원 없이 즐긴다. 봄 가뭄 탓인지 얇게 흐르면서 만들어 놓은 모래톱과 어울리는 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 이 산골짜기 하천에 저렇게 하얀 모래가 깔려 있다니! 물론 크고 작은 강돌들이 더 많이 널려 있지만. 보고 또 보고, 나타나고 또 나타나는 물과 모래. 주변 산세도, 날씨도, 바람도 모두가 깨끗함을 보여 주니 내 마음도 깨끗해지려나. 저 속에 묻히고 싶어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
보드라운 봄바람이 남실대는 들판과 골짜기에는 생강나무 꽃이 노랗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다. 산수유가 노랗고, 목련이 하얗게 봉오리를 터뜨린다.
25일 저녁에 먹은 지례 흑돼지고기와 26일 점심으로 직지사 사하촌에서 먹은 산채정식은 이번 여행에서 자랑할 만한 먹거을리.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례 흑돼지’를 본고장에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서른 가지가 넘는 정갈한 반찬과 풀풀 넘치는 인정으로 차린 정식을 매우 즐겁게 먹었다.
경상남도 거창과 경상북도 김천. 서로 이웃해 있으면서 국토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3번 국도로 통한다. 덕유산, 가야산을 비롯하여 황악산, 수도산 등 수많은 명산이 주위에 있어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를 주고 있다. 산과 물이 좋아 그런지, 그 정기 또한 맑고 곧다는 느낌이다. 수승대, 직지사를 비롯하여 많은 명승과 문화유적이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을 터이다. 이번 여행에서 이렇게 저렇게 만난 사람들 모두가 친절하고 어진 사람으로 다가온 것도 그렇게 좋은 자연의 덕으로 여겨진다.
25일(토)
충주(05:00)-(승용차)-김천-버스(07:40)-거창(08:40)-(도보)-김천시 지례면(저녁 식사)
26일(일)
김천-(시내버스)-지례(08:20)-(도보)-김천(11:50)-(승용차)-직지사(점심)-(승용차)-충주
* 유병귀 최광옥 임성규 이호태.
(200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