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쑥떡을 먹고[주흘산]

풍류산 2008. 3. 22. 23:00
 3월 22일 토요일 맑은 후 흐림.

모처럼 가족들과 봄나들이를 하다.


경상북도 문경새재도립공원 주차장. 차에서 내리니 쑥떡 장수 아저씨가 쫓아온다. 갓 돋아나는 쑥을 뜯어다가 만든 쑥떡이란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고, 쑥 향기가 입 안에 확 풍기고, 겉에 무친 콩가루가 고소하다. 마수라며 두어 개 더 집어 준다.


쑥떡을 우물거리며 주흘산으로 간다. 영남제일관문[주흘관]을 통과하자마자 옆길로 들어서니 산에도 봄기운이 잔뜩 서려있다. 생강나무는 노란 눈망울을 껌뻑거리고, 여궁폭포는 맑은 물을 길게 떨어뜨리는데 그 모습이 왜 그리 은밀한 건가? 훔쳐보듯 사진을 몇 번 찍어본다. 꽤 오랜만에 찾은 주흘산 길, 봄 냄새 풍기는 폭포수 앞에 한참을 쉬었다가 혜국사 쪽으로 간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에게 쫓기다가 쉬어갔다는 절. 그래서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었고, 절 이름을 법흥사에서 혜국사[惠國寺]로 바꾸었단다. 현대에 와서 중창되었고, 지금은 비구니들이 도를 닦고 있다. 혜국사 앞에서 모녀는 내려가고, 부자가 둘이서 올라간다.


해발 850 미터 대궐터에 샘이 있다. 산죽나무에 둘러싸여 있던 옛 모습이 가물가물한데, 지금은 파이프를 통해 떨어지는 물이 돌확에 넘쳐 찰랑이고 있다. 누군가 갖다놓은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시니 온몸이 시원하다.


주봉 바로 밑에서 만난 지인이 복수초를 일러준다. 얼음 사이에서 꽃이 핀다고 하여 ‘얼음새꽃’. 노란 꽃망울이 술잔 같이 생겼다고 하여 ‘황금술잔’. 복수초는 일본식 이름이고, 우리 식으로 하면 ‘수복초[壽福 -]가 어울린다고 한다. 중국에선, 눈 위에 피는 연꽃이란 뜻으로 설연(雪蓮)이라고 한다. 올 삼월 날씨가 더워서인가, 얼음 사이가 아니라 가랑잎 사이에 피어 있다. 하도 작아 일부러 찾기 전에는 눈에 띄기 어려운 꽃, 노란 모습이 참으로 예쁘다. 3월 중순, 높은 산 가랑잎 사이에 이렇게 예쁜 꽃이 숨어 있는 걸 누가 알 거며, 저렇게 작으니 뉘라서 쉽게 찾아낼 건가.


주흘산 정상.

문경읍내와 진남교반까지 이어지는 들판이 훤하다. 백화산-조령산-신선암봉-마패봉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이 코앞에서 꿈틀대고, 그 너머로 첩첩 산봉우리들이 너울진다. 산마루 쪽으로 깊게 파고드는 골짜기마다 마을들이 보이고,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엔 작은 산줄기가 길게 이어져 어여쁘다. 이태 전 초여름, 보름달빛 속에서 하늘재를 넘을 때 지나친 팔영리가 저기로구나. 산 속의 고요한 밤공기와 반딧불이가 어렴풋하고, 개 짖는 소리가 아련하다.


꽃밭서들을 거쳐 2관문―조곡관으로 내려온다. 이 골 저 골에 흐르는 물소리에 얼음 녹는 소리가 섞여 있고, 부봉 쪽 바위봉우리들은 진경산수화처럼 다가온다.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 또 맑은 물. 기어코 발을 벗고 들어선다. 목이 떨어져 나갈 듯 시리다, 발목이.


주흘산(主屹山). 문경의 진산으로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서울 남쪽에 있는 모든 산봉우리들이 서울을 향하고 있는데, 주흘산만이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왜구를 막아 나라의 우환을 덜겠다는 산의 뜻이라고 한다. 또는, 산이 솟아오르면서 도읍을 품겠다고 했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서울에 삼각산이 있더라는 것. 그래서 돌아  앉았다고 하니 꽤 재미있는 이야기로다.


2관문, 조곡관으로 나오면서 다시 쑥떡을 한 쪽 입에 넣는다.


09:10 문경새재도립공원주차장 - 주흘관[1관문] - 여궁폭포 - 혜국사 - 대궐터 - 주흘산주봉 - 꽃밭서들 - 조곡관[2관문] - 조곡폭포 - 교귀정 - 마당바위 - 조령원터 - 주흘관[1관문] - 주차장 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