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안동에 내리는 비[2008안동낙동강마라톤대회]

풍류산 2008. 3. 30. 21:48

안동에 내리는 비[2008안동낙동강마라톤대회]

이호태

 

 

2008년 3월 30일 일요일. 흐리고 비 약간.

2008안동낙동강변전국마라톤대회.

안동시내를 관통하는 강변 양쪽을 길게 한 바퀴 돌았다.


안동 땅을 처음 밟았던 것이 서른두 해 정도 된 듯하다. 정기화물 트럭을 타고, 청주에서 김천, 상주, 예천을 거쳐 안동에 이르는 길을 한 해 여름 동안에 대여섯 번 다녔다. 도롱이를 쓰고 논일을 하는 사람들, 오동잎인가 연잎인가로 햇빛이나 비를 가리며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입은 사람들도 꽤 보였었다. 다른 지방에 비하여 예스런 복장과 생활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안동 쪽으로만 오면 비가 내렸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상도 하지, 날씨가 맑은 날에도 소나기가 또는 여우비라도 꼭 내렸었다.


지난 주 일요일에 내린 비는 집 앞에 목련꽃봉오리를 터뜨렸다. 이번 비는 어떤 걸로 봄빛을 도울 것인가?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속에서 오래 전의 한여름 비를 추억하면서 안동시민운동장으로 간다.


안동 낙동강.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이 물줄기 저 물줄기를 모아 바다로 달리다가 안동시내를 관통하고 있다. 아니, 그 물가에 안동이라는 고을이 들어섰다고 해야겠다. 강이 안동시내로 들어오기 전에 안동댐이 있으니 물난리 걱정은 필요 없겠고, 넓고 길게 이어지는 둔치는 시민들의 휴식과 오락, 운동 공간으로 아주 잘 정비되어가고 있다. 훌륭한 환경을 가진 안동시민들이 부럽다.


겨울 동안 쉬었다가 올 들어 처음 출전한 대회. 날씨는 잔뜩 찌푸려 쌀쌀하다. 초반 걸음이 팍팍하여 거북하더니 십삼사 킬로미터 쯤 지나서야 몸이 풀린다. 하프마라톤이라고 가볍게 여기고 몸과 마음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끝내고 나니, 좀 부족한 것도 같고, 다리 한 구석이 뻐근한 것도 같고, 어쨌든 기분이 좋다.

 

어느 대회건 주최 측에서 준비하는 먹을거리가 입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이번엔 통돼지 바비큐와 안동국시가 넉넉하고, 안동봉화축산업협동조합에서 안동참마돼지고기 요리를 다양하게 차려 놓았다. 참으로 맛있다. 헌데 어딘가 허전하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막걸리가 없구나. ‘할 수 없지’ 하는데, 저쪽 자리에 소주가 있고, 맥주가 있는 게 아닌가.

“소주 한잔 먹읍시다.”

“예, 이리 오시소.”

“고맙습니다.”

“한 잔 더 하시소. 천~처이 마이 자시소.”

무표정하게 맞던 사람이 계속 무표정한 채로, 공손하고 후하게 대해 준다. 예법이 몸에 배어 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공손하고 겸손하다. 내가 만난 안동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받는 느낌이다.


잘 뛰고, 잘 먹었다. 시내로 가서 샤워를 하자.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개운하다. 배부르고, 개운하고, 여유롭다. 봉정사((鳳停寺)로 간다.


<봉정사>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에 있는 봉정사((鳳停寺)는 신라 문무왕 때(서기 672년) 능인대사가 창건한 이래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고려 태조, 공민왕 등이 다녀갔고, 절집과 경관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국보 15호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여럿 있다. 비교적 짧은 진입로 양 옆의 소나무들은 구불구불하지만 잘 자란 것이 제법 운치가 있다. 절을 만들 때의 설화가 재미있다.


“낭군님~!”

능인대사가 젊어서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는데 아리따운 여인이 찾아와 능인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부른다.

“소녀는 낭군님의 지고하신 덕을 흠모하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부디, 낭군님을 모시며 살게 해 주십시오.”

“나는 오로지 부처님의 공적을 사모할 뿐이고, 세속의 즐거움이나 기쁨에는 미련이 없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끈질긴 유혹에도 능인이 넘어가지 않자 여인은 물러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면서 말한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나는 옥황상제의 명으로 당신을 시험하러 왔습니다. 당신의 깊은 덕을 알았습니다. 부디 큰 뜻을 이루소서.”

여인이 하늘로 사라지자 환한 빛이 굴을 비춘다.

“대사, 굴이 너무 어둡습니다. 옥황상제의 명으로 등불을 보내드리오니 더욱 깊은 도를 닦으시기 바랍니다.”

하여 굴 이름은 천등굴(天燈窟), 산 이름은 천등산(天燈山)이 됐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다. 봉황이 날아와 머문 곳에 절을 짓고, 봉황[鳳]이 머문[停] 곳이란 뜻으로 절 이름을 봉정사(鳳停寺)라고 하였다.


그런데 절 앞에 있는 입간판에는,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날아와 머문 곳에 절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그 옆 안내소에 안내 책자가 있어 들춰봤더니, 위 설화에서와 같이 능인대사가 수양을 마치고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렸다고 되어 있다. 문화유적해설사 얘기로는, 능인대덕이 의상대사의 제자이니, 둘 다 맞는 얘기란다.

국보15호인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이고, 보물 55호인 대웅전과 보물 448호와 449호인 화엄강당과 고금당이 모두 오래 된 목조건물이다. 이 건물들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사찰 경내 여기저기 백매화가 하얗게 피어 있다. 이른 봄에 피는 꽃으로 생강나무와 산수유 그리고 개나리가 모두 노란 꽃인데, 거의 같은 시기에 하얗게 피어 있는 매화가 자꾸만 눈길을 끈다. 절집 안팎을 어슬렁어슬렁 맴돌면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창에 또 빗방울이 떨어진다.

(2008.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