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김대중전대통령추모시[정희성 시인]

풍류산 2009. 8. 21. 14:43

금강산 건봉사 불이문 앞에서 그대 부음을 듣고

- 정희승/시인

 

서둘러 그대를 칭송하지 않으리

이승의 잣대로 그대를 잴 수야 없지

그대는 나에게 한이고 아쉬움

이 아쉬움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이지만

그대는 처음 죽는 사람도 아니고

이 더러운 현대사 속에서

이미 여러 번 살해당한 사람

나는 전쟁통에도 불타지 않은

금강산 건봉사 불이문(不二門)에 이르러

그대의 마지막 부음을 듣는다

둘이 아니라면 하나

하나도 못 된다면 반쪽이지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

걸어온 길이 뒤집히는 꼴을 보면서

그대는 기어이 등을 보이는구나

아아 노여움을 품고

한 시대가 이렇게 지나가는 거지!

누가 와서 내 가슴 쓸어주었으면!

사명대사 동상과 만해 시비(詩碑) 앞에 서서

나라 사랑 못 느낄 자 누구랴마는

나는 별 수 없는 떠돌이 시인

그대가 끝까지 귀를 열고 기다렸을

좋은 소식 전해주지 못한 채

고성 외진 바닷가에 이르러

마시던 술 바다에 쏟아버린다

그대여 이 경박 천박한 세상 말고

개벽세상에나 가 거듭나시라

-------------2009.08.21(금),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