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기백산-금원산]
2011년 7월 3일 일요일 9:20.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 장수사 일주문[德裕山長水寺曺溪門] 앞. 예보대로 장맛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반바지로 갈아입고, 비옷을 입고 숲속으로 들어서니 작년 1월 킬리만자로에 올랐던 일이 생각난다. 마랑구게이트에서 밀림 속으로 들어서서 얼마쯤 지났을 때 내리던 비. 그 때 거긴 건기였었는데 비를 맞았다.
그 때 입었던 비옷에 얽힌 사연. 여행 준비를 하면서 비옷을 찾다가 못 찾았었다. 실용적인 등산용 비옷을 아쉬워하다가 맘에 드는 하나를 장만해 두고 입을 때마다 흐뭇해하던 것이었기에 꽤 서운했었던 마음. 건기라고 하니 소용이 있을까 하면서도 만에 하나를 위해 같은 걸로 다시 하나를 구입했었다. 그런데 웬걸, 쨍쨍한 날씨였건만 밀림으로 들어서자마자 비를 만났다. 아주 요긴하게 꺼내 입었던 비옷. 그 후에 국내에서 한두 번 입었었나? 그런데 며칠 전 집안 정리를 하다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 비옷을 찾았다. 등산용 코펠 옆에 아주 잘 보관되어 있는 그 비옷을. 하하. 황당하면서도 반가웠고 혼자 웃었다. 흐흐. 히히. 지금 그 비옷을 입고 기백산에 오르고 있다. 숲을 때리는 빗소리가 그 때 킬리만자로 그 길을 떠올리게 한다. 타다닥 타다닥 ‥‥‥. 마냥 설레던 그 마음. 그때처럼 설레는 이 마음.
기백산 정상까지 두 시간 정도. 장맛비답게 내리는 빗줄기가 싫지 않다. 비옷을 사이에 두고 온몸을 때리는 빗방울, 내 몸을 때리고 숲을 때리면서 내는 따다닥 소리, 산길에 도랑물처럼 흘러내리는 흙탕물. 안개인지 구름인지 시야는 흐리지만 빗소리와 빗물에 빠져 걷는 이 순간. 시원하다. 머릿속이 맑아진다. 이러저러한 세상사에 흔들리던 마음도, 산에 가기로 한 날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걱정이 되던 마음도 흔적이 없다. 빗물에 씻기고 씻기는 지금 이 마음. 무념무상이라던가? 좋다!
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이어지는 등성이길이 또한 좋다. 비는 오는 듯 멎는 듯. 비안개가 아니라면 좌~악 펼쳐지는 산 바다를 향해 연달아 탄성을 쏟아냈을 테지만, 태풍이 올 때처럼 불어대는 바람결이 보드라우면서도 시원해서 좋고, 1,000미터를 넘나드는 산등성이 분위기가 세속을 벗어난 듯, 선경인 듯 좋다. 쫘~악 펼쳐지는 조망 대신 뿌옇게 흐르는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좋고, 비에 흠뻑 씻기고서 수줍은 듯 다소곳한 중나리 꽃이 예쁘다. 기백산에서도, 금원산에서도 정상 사진을 찍으라는 듯 빗줄기가 멈춰 준다. 그래서 한 컷씩.
내려오는 길. 말없이 타박타박, 터벅터벅.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는 걸음은 늘 그렇다. 비워진 마음엔 산 기운이 그득. 유한청폭포 기운찬 물줄기가 즐거움을 더해준다. 15:20에 거창군 금원산 휴양림.
* 함양군 용추계곡 - 기백산 - 금원산 - 유한청폭포 - 거창군 금원산 자연휴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