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에서 강물을 보며[영월 태화산]
2012년 9월 9일 일요일 흐렸다 갰다 하는 날씨.
영월 태화산[1,027]
영월읍 팔괴리 봉정사 앞, ‘태화산등산로주차장’에서 자동차를 세웠다. 흥월리 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고, 자동차도 이따금 지나가고 있지만, 하늘만이 빠끔한 깊은 산속이다. 반시간쯤 걸었나? 태화산 큰골 입구라는 글씨가 새겨진 나무기둥이 서있고, 태화산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큰골로 들어가는 길 양 옆에 재미있게 생긴 장승이 서 있다. 밋밋한 나무기둥에 익살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두 얼굴. 오른쪽엔 “오늘도 안녕” 왼쪽엔 “내일도 안녕”
갈림길에서 1.2Km 거리에 마을이 있다. 서너 가구쯤 되던가? 마을보다 먼저 포도밭이 나타나고, 과수 나무들이 서 있는 묵밭이 보인다. 옛날 담배 건조실도 보인다. 콩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두셋 보이고, 밭가에는 트럭이 한 대 서 있다.
큰골 마을을 벗어나는 길은 가파르게 이어진다. 요 며칠 사이에 무더위가 싹 가시고, 가을 기운이 제법이라고 했는데, 비지땀이 마구 흐른다. 이렇게 온몸을 쥐어짜듯 땀을 흘리는 기분, 이런 기분이 그리워 산을 찾을 때가 있지.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태화산은 강원도 영월과 충청북도 단양의 경계가 되는 산, 산마루에 표지석이 둘이다. 단양군에서 세운 것과 영월군에서 세운 것. 마침 서너 명 일행을 이룬 사람들을 만나 사진 한 컷 부탁하고 고씨동굴을 향해 내려온다.
고려 때 성이라고 하는 태화산성은 거의가 허물어져 있다. 옆에 전설을 적어놓은 안내판이 있다. 옛날에 아들과 딸을 둔 어머니가 성 쌓는 내기를 시켜 먼저 쌓는 자식을 키우기로 했다. 아들인 왕검에게는 정양리에 돌로 성을 쌓게 하고, 딸에게는 태화산에 흙으로 성을 쌓게 하였다. 어머니가 보니 딸이 먼저 성을 완성할 것 같아 흙성을 무너뜨렸다. 딸은 흙더미에 깔려 죽었다. 그래서 왕검성은 지금도 온전하게 남아 있고, 태화산성은 무너졌다고 한다. 충주에 있는 장미산성과 보련산성에 얽힌 이야기와 비슷하다.
‘고씨굴 3Km'라고 쓴 이정표를 지나 한참을 가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길도 좀 희미해진 것 같고, 나타나야 할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되돌아 올라가기는 싫다. 어차피 산 밑에 가면 거기가 거기일 터. 더구나 어느 쪽으로 가든 저기 흐르는 남한강 가에 이를 것이고, 그때 가서 올바로 찾아가면 될 일이다. 한참을 가니 ‘660m봉’이 나타나고, ‘영춘지맥’이란 표지가 나온다. 그러니까 강으로 가는 게 맞기는 한데 가장 긴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강가 마을로 오니 김삿갓면[옛 하동면] 각동리이다. 반시간 정도 물가 길을 걸어 고씨동굴 앞. 한참 여유를 부리다가 버스를 타고 팔괴리.
태화산 정상에서 각동리로 이어지는 등성이는 양옆으로 물이다. 동강과 서강[평창강]은 하송리와 덕포리를 양옆에 끼고 만난다. 이어 팔괴리 앞을 지나고 고씨굴 앞을 흐르다가 급하게 방향을 틀어 강동리 앞으로 해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으로 흘러간다. 고씨굴 쪽은 등성이에서 좀 멀지만, 각동리를 지나 영춘으로 가는 물길은 등성이 바로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산 위에서 훤히 내려다볼 수가 있다. 유유히, 기운차게 흘러가는 강, 거침없는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자연의 힘을 느낀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활기차게 뻗치는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