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 또[영월 발산]
12월 1일. 2012년 열두 달 중 마지막 달 첫날, 영월 발산에 올랐다. 발산은 영월의 진산이라고 하며, 산의 모양에 따라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코앞에 봉래산, 손가락 끝에 계족산, 그 옆에 태화산, 발밑이 영월읍내.
모처럼 도보사랑 도반 다섯이 함께 어울렸다. 영모전에서 가파르게 올라갔다가 두목고개에서 장릉 앞으로 내려왔다. 영모전(永慕殿)은 단종을 추모하는 사당이고 장릉은 노산군 단종의 능이다.
끊임없는 세월 뭇 생명들 중에 슬픈 운명이 하나 둘일까만, 가까운 세월 가까운 곳에 있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영월은 내가 살고 있는 충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단종의 일생은 그리 아득하지 않은 옛날에 있었던 슬픈 운명이었다.
단종 임금이 숙부에게 쫓겨나 노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슬픈 이야기가 영월에 있다. 영모전 자리에는 성황당이 있었다고 한다. 단종의 혼령이 태백산 신령이 되었다고 믿는 백성들이 성황당에서 단종대왕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중종 때 노산군 묘를 찾으라는 어명이 있어 사당을 짓고 영모전이라고 했단다.
영모전 앞 양 옆에 길게 자란 향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끈다. 한자로 쓴 영모전(永慕殿) 현판 글씨가 또한 눈길을 끈다. 알고 보니, 6.25 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글씨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인간 이승만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그러나 그의 글씨에 대한 사람들의 칭송을 들은 적이 있어 눈여겨본다. 시원시원한 붓끝을 느낀다. 모를 일이다. 어느 인생이고 어진 마음과 추한 마음이 뒤엉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번민 끝에 어떤 결단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하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 같다. 아니, 모를 일이다.
두목고개에서 장릉 쪽으로 내려오는 길옆에 금몽암이 있다. 禁夢庵. 임랑이 말한다. “헛된 꿈을 꾸지 마라” 전해지는 얘기로는, 신라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지덕암을 영월로 유배 온 단종이 보고, 궁중에 있을 때 꿈속에서 본 암자와 똑같다고 했단다. 그래서 금몽암(禁夢庵)이라고 했단다. 꿈보다 좋은 임랑의 해몽.
장릉 앞 길가에서 가마솥이 눈물을 흘리면서 펄펄 끓고 있다. 목로로 들어가 끓는 국물을 청하여 점심. 국물 맛이 정말 진하다. 입안이 흐뭇하고, 뱃속이 흐뭇하다. 그래도 서부시장은 들러야 한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메밀전병을 만들고 계시는 예미집 할머니가 잔잔하게 반겨주신다. 밥 배 따로 술 배 따로 하면서 막걸리 한잔. 장바닥 겨울 냉기가 막걸리 잔에 어울린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