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비굴하지 않다[봉하마을]

풍류산 2013. 2. 4. 21:42

 

 

 

 

 

“결코 비굴하지 않겠다.”

 

고려 때 이자겸이라는 사람이 유배지 영광 어디에서 “결코 비굴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 ‘비굴(非屈)’을 ‘굴비(屈非)’로 바꾸어 임금에게 써 보냈다는 이야기. 이자겸의 사위이자 외손자인 인종 임금이, 이렇게 맛있는 고기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대전 상궁이 “굴비(屈非)라고 하옵니다.”고 했다는 이야기.

 

2009년 5월 23일, 내일 있을 굴비골영광마라톤대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 전직 대통령의 투신자살 소식을 들었었다. 와락 밀려오는 울컥함에 좁은 가슴이 일렁였고, 이튿날 개회식에서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짧은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했었다. 좀처럼 알아채기는 어렵지만, 단단하고 분명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응시했었고, 한 세상을 판치고 있는 인간들의 추악함을 저주하기도 했었다. 울컥하곤 하는 가슴을 토닥토닥 발걸음에 싣고 법성포 해변을 달렸었다. 그러면서 고인에게 말을 건넸었지. “당신이야말로 비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2013년 2월 3일. 그렇게 한세상을 마감한 넋이 잠들어 있는 봉하마을에 왔다. 가슴 가득 왈칵 밀려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가, 묘지, 부엉이바위, 정토원, 사자바위 등 ‘대통령의 길’이라고 이름이 붙은 봉화산 숲길을 걸었다. 선이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인가. 절대적인 선, 절대적인 악은 있기나 한 것인가. 있다면 인간의 눈으로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무엇, 선이니 악이니 옳으니 그르니, 절대니 상대니 골치 아프게 따지기 이전에 저도 모르게 가슴으로 밀려오는, 머뭇거림 없이 밀려오는 그 무엇들. 한줌 세상 판을 치기 위해 나대는 탐욕보다는 미련 없이 체념할 줄 아는 여리지만 곧은 마음들이 더 아름답다고 내가 느끼는 것. 더 이상은 모르겠다.

 

 어떤 죽음이든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굳이 말하고 싶은 게 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봉화산 숲길을 걸으면서, 얼핏 얼핏 순수한 영혼들의 몸짓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