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제와 셋이서 바다에
근제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포항으로
죽도어시장을 어슬렁거리다가
고래 고기 맛도 보고
물회 맛도 보고
구룡포에 가서 바다를 만나다.
2013년 2월 22일.
*연오랑세오녀설화 [延烏郞細烏女說話]
신라 때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일본으로 가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으나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렸더니 다시 밝아졌다는 이야기.
원래 〈수이전 殊異傳〉에 실려 있었으며, 고려 때 〈삼국유사〉에 채록되어 전한다.
157년(아달라 4) 동해안에 살던 연오랑은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다가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는 바람에 일본에 건너갔다. 이를 본 왜인들은 연오랑을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그를 찾아나섰는데 남편의 신이 바위 위에 있었다. 바위에 올라갔더니 바위가 움직여 세오녀도 일본에 가게 되었다. 이에 부부는 다시 만나고 세오녀는 귀비(貴妃)가 되었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는데, 일관(日官)은 우리나라에 있던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일본으로 가버려서 생긴 괴변이라 했다. 왕이 일본에 사자(使者)를 보냈더니 연오랑은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을 주며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된다고 했다. 신라에서 그 말대로 했더니 해와 달이 빛을 찾았다. 이에 왕은 그 비단을 국보로 삼고 비단을 넣어둔 임금의 창고를 귀비고(貴妃庫),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했다. 이 설화는 그 내용을 비롯하여 주인공의 이름과 지명 등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태양신화라 할 수 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영일만, 즉 '해맞이'라는 뜻의 지명 속에 남아 있다. 연오는 태양 속에 까마귀가 산다는 〈양오(陽烏)전설〉의 변음으로, 세오도 쇠오, 즉 금오(金烏)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니혼쇼키 日本書紀〉의 〈천일창설화 天日槍說話〉도 태양신화인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동남해안과 일본의 이즈모[出雲] 지방이 문화의 전승로였음을 알 수 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