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면 걷고 걷다보면 닿는다[화개장터-구례구역]
3월 17일 일요일 아침 화개장터.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던 곳,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매일 장이 서는 화개장터. 아침 일곱 시, 시끌벅적거리는 장터도 지금은 고요하다. 어제 순천 역전시장에서 사온 모시송편 몇 개와 집에서 가지고 온 사과 한 알로 아침 요기를 한다.
엊저녁에 건너왔던 남도대교를 도로 건넌다. 길은 어제처럼 강물과 나란히 이어진다. 개나리가 노랗게 가물거리는 길에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이른 아침이라 자동차도 거의 없다. 바윗돌은 말이 없고,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른다. 매화꽃은 어제보다는 덜하고, 개화를 앞둔 벚나무 가로수는 어제처럼 계속 이어진다. 섬진강어류생태관을 바라보며 둑방길로 들어선다. 어류생태관 규모가 꽤 크다. 아직 문을 열 시간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계속하여 둑방길,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간문천을 만나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신발을 벗는다. 몇 해 전 몹시 추운 겨울에 봉화에서 울진으로 가던 일이 생각난다. 꼬비치재였던가, 고개를 넘기 전에 맨발로 들어선 물속에서 발목이 끊어지는 것 같았던 일. 그러나 지금은 봄이 오고 있는 남쪽 지방이다. 강바닥에 앉아서 물에서 건져낸 발을 말리면서 마지막 남은 사과 한 알에 모시 송편 두어 개, 그리고 강둑길로 올라선다.
강 건너로 토지면이 흘러가고 구례읍이 가까워진다. 강바닥에 너른 갈대숲이 지나가고, 물 가운데 듬성듬성 버드나무와 갈대숲이 섞여 지나가고, 강물은 다시 묵직하게 흐른다.
구례읍을 앞두고 강은 크게 휜다. 휘어가는 강을 뒤로 하고 구례읍에 들어섰다. 구례군청 앞에서 좌회전하여 18번국도를 따라 한 시간쯤 걸어 구례구역에 왔다. 구례구역은 구례군에 있지 않다. 아까 휘돌았던 섬진강이 다시 굽이지는 곳에서 물을 건너면 순천시. 물을 막 건넌 곳,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에 구례구역이 있다. 구례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일 게다. 예매했던 17:08 차표를 12:42 차표로 바꾼다.
섬진강 길을 꿈꾸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러다가 이달 3일 하동 섬진강꽃길마라톤대회에 왔었고, 그 무렵에 이번 기차표를 예매했다. 충주-신탄진-순천-하동 / 구례-조치원-충주. 하동에서 구례까지, 기대했던 대로 강물과 나란히 가는 길을 걸었다.
커다란 지리산, 많은 산줄기와 골과 골이 달려 내려와 섬진강 물에 입맞춤하는 걸 보면서 걸었다. 산기슭마다 강변마다, 골마다 들마다,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삶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을 시리도록 보고 또 보면서 걸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매화꽃도 실컷 보았다. 산수유도 간간이 섞였고, 개나리도 웃기 시작했다.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벚나무 가로수도 보았다. 숙제를 마친 초등학생의 마음이 이러할까?
섬진강에 바짝 붙어 있는 구례구역, 곡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길 옆에도 길이 있는 걸 보면서 열차에 오른다.
보이면 걷고
걷다보면 닿는다.
걷고 또 걷는다.
* 3월 17일(일)
화개장터(07:15) - 운천리 - 양천리 - 섬진강어류생태관 - 문척교 - 구례군청 - (11:30)구례구역[섬진강]
구례구역(12:42) - (15:41)조치원역(15:49) - (16:57)충주역[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