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절로[봉화 낙동강비경길]
“이 골 저 골에서 나들이옷 챙겨 입고 몰려드는 장꾼들이 꽤 있었을 법한 거리에
사람 그림자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겨울 한낮 햇빛만이 고요하다니!”
10년 전인 2004년 1월에 왔을 때, 분천역 앞 장터거리가 그랬었다.
그랬던 것이 오늘, 2014년 10월 26일엔 사람들이 넘쳐난다.
거의가 백두대간협곡열차[V트레인]를 타러온 사람들이다.
또는 나처럼 협곡 트레킹을 하러온 사람들도 있다.
역에 들러 역무원에게 말도 걸어보고
두리번두리번 길거리에서 기웃거리기도 하고
가겟방처럼 생긴 찻집에 앉아 보기도 하고.
‥‥‥.
10년 전에 딱 한 번 와봤던 곳인데도
가슴속에 고이는 어떤 추억이 아련하다.
배바위고개를 넘어 승부역까지 갔다가
양원역을 거쳐 분천역으로 되돌아오기로 한다.
분천역-(4m)-비동마을 입구–배바위고개-승부역[9.9Km]
승부역-(6.5Km)-양원역)-(2.8Km)-비동마을 입구-(4Km)-분천역
배바위고개를 넘어 승부역까지 가는 길은 고개를 넘는 산길이다.
가을하늘 아래 가을볕은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가을 산엔 단풍이 울긋불긋하다.
배바위산에 얽힌 전설이 있고
화전민들이 쓰던 샘터가 있고
화전민들이 오가던 산길이 있고
옛사람들의 애환을 그려보는 나그네가 있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고개를 넘어 내려와 물을 건너기 직전
승부역이 건너다보이는 곳
길 양옆으로 포장마차가 대여섯 있다.
막걸리 한잔 생각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문이 열린 집은 단 한 집.
그마저 주인아주머니께선 장을 보러 가셨단다.
일 없이 걸음을 저벅인다.
승부역을 휘 둘러 물가 바위에 앉는다.
삶은 달걀 껍데기를 벗기면서 사방을 둘러본다.
하늘과 산과 골짜기와 시냇물에 흐르는 가을이
은행잎을 노랗게 물들이면서
산골 오지 작은 기차역에도 내려앉는다.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 협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세평하늘길이라고 한다.
그리 맑을 수가 없는 물소리
그리 고울 수가 없는 산과 단풍.
고요한 산속에 고요한 기운이 흐르고
옛사람들 살던 흔적 위에 숲이 우거지고
소문 듣고 찾아온 나그네들의 발길이 흐른다.
협곡 비경에 묻혀 흐르는 물줄기는 낙동강 상류.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와 울진군 서면 전곡리가 나뉘는 곳
서쪽, 분천리 물가에 양원역이 있다.
산골 오지 마을 주민들의 요구로 개설되었으며
역 대합실도 주민들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물 양쪽 마을 사람들이 이용한다고해서 '양원역'
2013년 4월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운행되면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내려 잠깐씩 쉬었다 간다.
천막 안에 앉아 막걸리 두어 잔을 들이킨다.
주인댁 내외가 바쁘게 잔술을 죽죽 따르더니
열차 시간이 되고 우르르 사람들이 내린다.
한 잔에 1,000원
돼지껍데기무침 작은 한 접시에 1,000원
열차는 잠깐 법석이던 무리를 싣고 다시 떠나고
나그네는 잠깐 만에 다시 찾아온 고요를 즐긴다.
양원역에서 분천역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동마을 입구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를
체르마트길이라고 한다.
알프스의 협곡 빙하특급열차가 다니는 체르마트역과
백두대간협곡열차가 다니는 분천역이 많이 닮았단다.
분천역과 스위스 체르마트역은 2013년 5월에 자매결연을 맺었다.
배바위고개와 백두대간협곡과 낙동강과 기찻길과 다리
푸르디푸른 하늘과 단풍과 억새와 티 없이 맑은 물.
그리고 ‥‥‥.
길가에 옛사람의 시조가 한 수 서 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아마도 절로 생긴 인생이라 늙기도 절로 하리라
- 하서 김인후
남한강 상류 동강 물이 맑고 맑다지만
여기 낙동강 상류에도 저렇게 맑은 물이 꽁꽁 숨어 흐른다.
산수도 절로절로 인생도 절로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