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왕국 옛터[공산성-송산리고분군]

풍류산 2019. 12. 14. 20:39

 

 

 

 

 

임씨 집에서 만들어 온 맛있는 떡. 인절미.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에 왔을 때,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지고 온 떡을 맛있게 먹고 나서, 떡 이름이 뭐냐. 어떤 이름이 없었기에 뚜렷한 대답이 없다. 임(任)씨가 가져온 절미(絶味)이니 임절미라고 해라.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음이 변해 인절미.

 

2019년 12월 14일 토요일. 공주 공산성에 오르니, 이야기보따리가 넘친다. 백제가 한성에서 내려와, 사비성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5대 64년 동안 도읍으로 삼았던 웅진도성 안 왕성. 둘레 2,660m. 그때는 토성과 석성이 함께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웅진성, 고려초에는 공산성, 조선 인조 이후 얼마간은 쌍수산성.

 

사비성을 수리할 때 무왕이 5개월 동안 와 있었고, 백제가 망할 무렵 의자왕 또한 얼마 동안 머물렀다.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왔을 때, 두 그루 큰 나무에 기대어 시름을 달랬고, 난이 끝난 후에 정삼품 벼슬을 내렸으며, 훗날, 나무가 없어진 자리에 세워진 정자 이름이 쌍수정이다. 임류각, 만하루에 얽힌 이야기, 광복루와 김구 선생 이야기, 성안 마을과 서문고개 이야기가 있고, 잠종 냉장고 유물이 있다. 망이망소의 난, 취리산 회맹에 대한 설명문이 있고, 임진왜란 때, 승병 합숙소였던 영은사 이야기가 있고, 조선 태종 때 일본에서 선물한 코끼리가 이리저리 박대 끝에 공주에서 기구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춥지 않은 초겨울 날씨. 벚꽃 그늘과 산성 아래 막걸리에 대한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보다. 그때처럼, 궁벽하다는 생각을 하다. 강물을 막아주는 산성 안쪽에 자리잡은 공주시내. 물론, 지금은 강 건너 쪽으로도 건물 숲이 번지고 있다. 급할 것 없는 발걸음. 맑은 하늘, 따뜻한 겨울볕, 아담한 산성, 맑은 공기, 산뜻한 사방 경치와 강물, 넘치는 유물과 유적에 넘치는 이야기. 제민천 건너 송산으로 걸음을 옮기다. 무열왕릉을 비롯한 송산리 고분군. 산비탈에 자리잡은 고분군 주변은 부속 시설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고,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오고간다.

 

고구려에 쫓겨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서는 남쪽에서 자라난 세력에 굴복한 왕국. 그 내막이야 어디 한두마디로, 함부로 말할 수 있으랴만, 그때 남긴 유물과 유적에 사람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다시 공산성쪽으로. 공주중학교 운동장에선 야구부 훈련이 한창이고, 황새바위 성지에는 순례객들이 드문드문.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제민천 작은 물가 양옆에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 잠깐 걸어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