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강생태수길[홍천]
하룻밤 사이에,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하고, 계엄군이 출동하고, 계엄사령관이 포고령을 발령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고, 대통령이 계엄 해제하다.
지난밤이다. 바로 어젯밤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는가. 그간의 언행으로 보아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우리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정녕 이런 정도란 말인가. 아예 말문을 닫자. 예정된 길을 나선다. 2024년 12월 4일 수요일 아침이다.
홍천강생태수길.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수하1리에서 내촌면 물걸2리까지, 내촌천 물가로 이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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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걸리에서 수하리 쪽으로 간다. 텃밭정원길 일부를 생략하고, 강변길, 보도랑길(봇도랑길?), 진여울길, 하여 9.7Km쯤을 걷는다.
초겨울 맑은 햇빛이 비치는 산촌 풍경이 참으로 맑고, 깨끗하다. 흐르는 물은 어쩌면 저렇게 맑을 수가 있단 말인가. 신선이 사는 세상인가.
아, 저기. 정말로 신선이신가. 저만치에서 다가오시는 할아버지 한 분. 한 동작 한 동작,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맑고 깨끗한 낯빛... 여든다섯이라는 연세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볼을 간질이고, 온몸을 휩싸면서 흐르는 이 기운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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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길은 물가로 이어진다. 물은 더없이 맑고, 깨끗하고, 수량이 풍부하다. 두런두런 주고받기도 하고, 침묵도 하고, 티 없는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잠시 서서 물도 마시고, 앉아 떡 한 조각, 사과 한 쪽으로 입맛도 다신다.
맑은 산빛에 젖은 몸에 물소리가 와 감긴다. 산과 물과 허공과 사람이 한 폭 그림으로 어우러진다. 그래, 이렇게 흐르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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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음에 앞서, 서석면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지와 내촌면 동창리 기미만세공원을 둘러보다.
서석은 강원도에서 동학 관련 가장 큰 전투가 벌어졌었던 곳이고, 수백 명의 농민군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1976년, 자작고개에서 길 닦기 공사중 농민군들의 유골을 발견하였고, 1977년 12월 3일, 동학혁명위령탑을 세웠다고 한다.
동창리 기미만세공원은, 3.1운동 때 목숨을 바친 여덟 열사를 비롯한 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다. 여덟 열사를 일컫는 '팔열'이는 말이 이웃에 있는 학교 이름에도 반영된 것을 본다. 팔열중고등학교.
우리가 그간 동학이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애써 그를 외면하고 방해하는 세력이 너무 강했던 것은 아닌가. 지금도 그런 것은 아닌가. 그런 속에서도 찾아내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알리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