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런 즐거움[킬리만자로]

2010. 2. 1. 12:11해외

― 그리움인가

 

망망대해에 넘실대는 파도처럼

인생의 바다에는 그리움의 물결이 그치지 않는다.

그리운 이를 기다리다 지쳐서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리운 무엇을 찾아 헤매다가 굶어서 얼어 죽었다는 표범 이야기도 있다.

이번엔 어떤 그리움을 안고 길을 나서는가?

 

킬리만자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으며, 아마추어들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산. 해발 5,895 미터. 뜨거운 대륙에서 만년설을 이고 있는 유일한 산. 그래서 늘 하얗게 번쩍이는 산. 하얀 산꼭대기에는 신이 살고 있고, 신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와 자유를 약속했다고 한다. 커다란 산 아랫자락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 가슴속에 깃들여 있을, ‘신의 집’에 대한 그리움을 생각해 본다. 사랑과 평화와 자유를 기다리는 삶을 그려 본다. 그러한 그리움에 물들어서, 기다림에 젖어서 이미 평화롭게,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며 살아온 사람들. 이방인으로서 우리들의 발걸음은 이들에게 사랑과 평화와 자유에 대한 약속일 수 있을까? 바람결엔 듯 들려온 킬리만자로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길을 나선다.

 

 

― 오랜 추위 끝에 내리는 비

 

1월 20일. 비가 내린다. 강추위가 보름 이상 이어지고, 몇 십 년 만이라고도 하고 백 몇 년 만이라고도 하는 많은 눈이 내려 녹지 않던 날씨가 누그러지고,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충주 버스터미널에서 인천 공항까지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즐기며 찾아가는 머나먼 여정. 킬리만자로를 찾아간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까지 비행기로, 나이로비에서 탄자니아 아류샤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1박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등산로 입구인 마랑구게이트[해발 1,420미터]

 

 

― 망망한 벌판 끝에

 

1월 22일. 마랑구게이트에서 입산 신고를 하고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13:00[한국 시간은 19:00]. 나이로비에서 아루샤를 거쳐 오는 동안 끝도 없이 펼쳐지던 평원은 마랑구게이트 가까이에서 산기슭 지형으로 바뀌었다. 망망한 벌판 끝에 언덕도 높아지고, 고갯길도 나타나고, 나무도 많아졌다. 끝도 없던 평지에는 아주 가끔씩 집과 마을과 농경지가 있었다. 바나나와 옥수수와 망고 나무. 자동차 매연과 먼지. 가끔씩 황톳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들. 두셋이나 너덧씩 샘을 찾아 물을 긷는 사람들. 뜨거운 햇볕. 지루함을 하소연하는 승객들. 말 없는 시간 끝에 도착한 등산로 입구는 밀림 속.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은 선선하다.

 

입산에 앞서 먹은 도시락 안에는 빵 한 조각, 바나나 하나, 주스 하나, 과자 한 봉지, 사탕 2개. 우리가 이곳에서 만난 기본적인 식단 중 하나와 비슷하다. 주로 빵과 계란과 소시지 하나에 차 한 잔. 어쨌든 현지 음식에 적응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것. 굽이를 돌아 작은 개울을 건너는데, 한 소년이 카멜레온 한 마리를 잡아 나뭇가지 위에 올려 내밀면서 5달러에 사라고 한다. 어떤 애는 탄자니아 국기를 들고, “탄자니아 플래그, 에잍 달러!” 한다.

 

 

― 건기에 내리는 비

 

밀림 속 어둠인가 했더니 빗방울이 듣는다. 건기라고 했는데 비를 맞다니.[대우기(3월 중순~5월 중순), 소우기(10월 중순~12월 중순), 대건기(5월중순~10월 중순), 소건기(12월 준순~3월 중순)] 이태 전에 포카라에서 비를 맞은 일이 생각난다. 마나슬루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에서 저녁술을 한잔 하고 거리에 나섰을 때, 잠깐 동안 내렸던 소나기.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땅에서, 건기인 1월에 맞은 포카라의 비는 생생한 감격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아! 기분이 막 좋아진다. 더구나 밀림이 끝나는, 내일 이후의 길엔 먼지가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비로 인해 그 고통이 덜어질 건 분명한 일이 아닌가?

 

 

― 은하수 그리고 해님

 

만다라 산장에서 산속 첫 밤을 맞았다. 저녁 식사 후, 롯지에서 간단한 술자리. 청주 최창원 선생님께서 직접 담그신 복분자술. 몇 순배 돌아가는 데, 밀림을 때리는 소낙비 소리가 요란하다. 분위기가 마구 달아오른다. ‘건기라는데 내일까지 저럴 일은 없을 테고, 좋은 일만 있을 것이여.’ 자리가 가장 무르익었을 때 술은 끝. “내일을 위하여 자자!” 새벽녘에 소변이 마려워 헤드랜턴을 찾을 때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검은 하늘 은하수에 놀란다. 와! 저렇게 빛날 수가 있는가? 원래 저런 것이었는가?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또다시 옛날 생각을 한다. 어렸을 적, 매산 집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바라보던 은하수가 저랬다. 그러나 그땐, 그저 그런, 일상적인 즐거움으로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를 흥얼거렸었다. 여름에는 풀냄새 곁들여서, 가을에는 벌레소리에 섞여서, 겨울에는 새벽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히말라야 산자락 포타나 롯지에서 지금처럼 놀랐었다. 연기처럼 뿜어져 나와 뿌연 빛을 내는 저것.

 

그래,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했지? 들어가 잠시 누웠다 눈을 뜨니 날이 밝아온다. 울창 숲속에서 짐승소리가 난다. 저들도 아침 인사를 나누는 거겠지. 가장 뚜렷한 건 원숭이 소리일 테고, 그 다음 것은 ‥‥‥? 목에 흰 띠를 두른 까마귀 몇 마리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아침 인사를 한다. 이어서 맑은 새소리들. 상큼한 공기. 저 아래 멀리까지 펼쳐지는 구름바다 먼 끝이 붉어지고 이어서 해님이 떠오른다. 임선생님과 함께, 좋은 자리를 찾아 기울기가 급한 지붕에 걸쳐 있는 사다리 꼭대기로 올라가 킬리만자로 해돋이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 열흘 이상 막혀 있던 코가 확 뚫리면서 작은 답답함이 확 풀린다. 이렇게 킬리만자로 첫 새벽엔 즐거움이 넘치고 있다.

 

 

― 고산병

 

1월 23일. 엊저녁에 내린 비로 하늘은 더 없이 맑다. 빛나는 햇빛 상쾌한 공기 속에 발걸음이 가볍다. 만다라 롯지는 해발 2,720 미터. 한국의 초가을 아침 기분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떡갈나무 잎에 내려앉은 찬 이슬이 아침안개 속에서 햇볕을 받고 있을 때와 같은 정취. 좀 걷다 보니 마웬지봉이 삐죽 올라오고, 나무의 키가 작아지더니 이마에 흰 눈을 이고 있는 키보봉[킬로만자로 주봉]이 쑥 나타난다. 어느새 나무 그늘은 사라지고, 벌판을 걷듯 키 작은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는다. 15:00 호롬보 산장 도착. 해발 3,700 미터. 서서히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손발을 씻고 휴식. 저녁 식사 후 역시 간단하게 한잔하고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간다. 내용은 날아가 버렸지만, 즐거웠던 꿈.

 

1월 24일. 기분 좋게 잠자리를 털고 나와 해맞이. 08:20에 출발. 한참을 걷다보니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다. 숨이 차고, 머리가 띵하다. 배도 좀 고픈 것 같고, 힘이 든다. 폴레폴페[천천히] 헉! 헉! 해발 4,700미터인 키보산장에서 키보봉 등정 준비. 15:00에 라면 한 그릇 먹고 누웠다가 22:00에 일어나 죽 한 공기 먹고, 방한 채비, 방풍 채비를 단단히 하고, 이마에 등을 달고 23:15에 차근차근 오른다. 다섯 시간 정도, 직각에 가까운 벼랑에 붙은 길을 기어올라 25일 05:00 쯤에 길만스포인트에 도착. 해발 5,681미터. 뿌연 은하수가 장관을 연출하고 있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고 정신이 없다. 우후르피크까지는 완만한 오르막. 가끔씩 눈이 쌓였다. 도중에, 킬리만자로에서 세 번째 해맞이. 그러나 아무 생각 없다. 키보산장에 오기 전부터 찾아온 고산병증세가 몹시 고통스럽다. 남들이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 토하고 주저앉고 신음 소리를 내는 걸 보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억지로 태연한 척 한 것은 바로 교만이었다. 가끔씩 방향감각이 흐려지는 것도 같고, 어지러워 중심 잡기가 어렵기도 하다. 휴~ 휴~, 헉, 헉.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기운을 차린다. 기를 쓰고 깊은 숨을 몰아쉬는 동안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걸 느낀다. 그래, 괜찮아! 좀 힘들 뿐이지, 할 수 있어! 그렇다. 쉽고 어려운 차이가 있을 뿐 일을 해낸다는 것은 같은 것이다. 이제 판단이 분명해졌다. 죽을 일은 아니다. 사고도 없다. 끝까지 무사할 것이야. 숨은 가쁘고 좀 어지럽지만 정상에 올라왔다. 머리가 좀 띵하고 허기가 좀 있지만 해냈다. 우후루피크. 해발 5,895미터.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에 이렇게 올랐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힘도 새롭고 자신감도 새롭다. 사진도 찍고, 서로 격려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동안 내려갈 일에 대한 걱정은 저도 모르게 날아가 버린다. 밝은 날 내려오면서 보니, 길만스포인트와 키보산장 사이 비탈이 장난이 아니다. ‘끔찍하기도 해라. 지금 다시 올라가라면 도저히 못 올라갈 거야!’ 12:00 쯤 내려와 빵 한 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호롬보 산장으로 간다.

 

 

― 산 속 대평원, 에이티 달러

 

내려오는 길은 올라간 길을 거꾸로. 이제 킬리만자로를 뒤에 두고 걷는다. 우뚝 솟은 키보봉[우후루피크] 아래에서 만다라산장까지는 산속이지만 산이 아니않다. 양쪽 해발 높이는 2,000미터 정도 차이가 나지만, 완만한 기울기로 넓고 길게 펼쳐지는 거대한 평원이다.[키보산장 4,700/호롬보 3,700/만다라2,720/마랑구게이트 14,20] 산속 대평원을 걸어 내려오다가 뒤돌아본다. 하얀 눈,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우후루피크봉 위에 있지 않다. 빙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순전히 눈으로만 되어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커다란 산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옆에서 흐르는 빙하는 키보산장 옆을 지나 마웬지봉 가까이 흐르다가 언덕지역으로 해서 아래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키보에서 호롬보로 오는 도중 얼마동안,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옛날 빙하가 보인다. 25일 밤을 호롬보 산장에서 보내고 26일 14시 마랑구게이트에서 킬리만자로 등반 일정 끝. 올라갈 때 만났던, 카멜레온 팔던 소년은 그대로 있다. 그간 한 마리 팔긴 했을까? 그 옆에서 다른 소년이 킬리만자로 등산약도가 그려진 티셔츠를 들고 외친다. “에이티 달러!”

 

 

― 고통스런 즐거움

 

킬리만자로에 다녀온 흔적은 크게 둘.

하나는 곧 없어질 것으로 얼굴에 남은 상처다. 따지고 보면 교만과 자만의 대가다. 괜찮을 거야, 나는 괜찮아 하는 마음으로 덤벼들다가 고산증세에 시달렸고, 무엇을 발라 얼굴을 보호하는 일을 가볍게 여기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허물 한 번 벗으면 나을 일이지만, 부족한 마음을 겉으로 떠벌리며 다니는 꼴이 됐으니 부끄럽다. 그것보다 부르튼 입술 때문에 무얼 먹을 때마다 고통스럽다. 표범은 보지도 못했는데, 얼굴에 표범 무늬를 그리다니 우습기도 하고, 온 신경이 입술에 집중되어 모든 일에 방해가 된다. 이 흔적이 사라질 때까지 평생 지닐 겸손함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또 하나는 머릿속에 새겨진 흔적이다. 고산증세에 시달리면서 기를 쓰고 정상에 올라가던 밤중에서 새벽을 지나 아침 시간까지 겪었던 고통에 대한 기억. 누가 킬리만자로를 낭만적으로 생각할 건가? 그리움이 어떻고, 인생의 흔적이 어떻고, 신의 약속이 어떻다고, 낭만적 기분에 젖어 떠벌릴 것인가? 그러면서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흔적. '그래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즐기자.'

 

 

― 코끼리 거시기

 

뒤풀이는 사파리다. 사파리란,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라는 뜻. “사냥을 하기 위하여 사냥감을 찾아 원정하는 일을 이르던 말”인데 “야생동물을 놓아기르는 자연공원을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차 안에서 구경하는 일”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1월 27일 응고롱고로.

응고롱고로는 세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칼데라로 꼽히고 있다. 충청북도 전체 면적보다 훨씬 큰 분화구 안에 25,000 마리 이상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단다. 천정이 위로 올려져 개방되는 지프를 타고 분화구 곳곳을 누비며 갖가지 동물들을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한다. 물론 차에서 내릴 수는 없다. ‘야생동물을 놓아기르는 자연 공원’이 아니라,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땅에 들어온 것이다. 문명의 힘을 업고 원시의 세계에 들어온 꼴인데, 옆에서 주고받는 말,

“문명화란 결국 침략이지요.”

“개발이란 이름으로 ‥‥‥”

사실, 문명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자연이 파괴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짓밟혔는가?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아프리카의 ‘자연’과 ‘평화로움’은 지금 어떻게 문명화 되고 있는가?

분화구로 들어가는 길가에 가끔씩 마사이족 사람들이 목걸이 팔찌 등 물건을 팔러 나와 있고, 가까이에 마사이 마을이 보인다. 문명화된 관광객들에게 원시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마을을 그냥 지나치면서 우리나라 관제 민속촌을 생각해 봤다. 저들이 더 딱하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관광객들의 눈과 호기심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맡기고, 때로는 인격마저 내던져지는 일이 있는 건 아니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분화구 안에는 끝없는 평지 위에 풀밭이 있고, 호수가 있고, 늪이 있고 웅덩이가 있고, 냇물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확 들어온 동물은 얼룩말. 이어서 누, 영양, 가젤, 코뿔소, 물소 등이 떼를 지어 다니고, 타조들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새들이 날고 앉는 평화로운 풍경. 하늘은 더 없이 푸르고, 구름은 더 없이 희다. 사자는 멀리 점으로 보이고, 하이에나는 역시 외롭게 어슬렁거린다. 홍학 무리는 멀리 호숫가에서 분홍빛 띠를 이루고, 날씨가 더운지 하마는 물속에서 나오질 않고, 코끼리는 무지하게 큰 귀를 느릿느릿 펄럭거린다.

 

귀하고 신기했던 장면 하나, 누 한 마리가 새끼를 낳는 모습.

양수 주머니가 보이더니 일어서서 힘을 쓰다 쓰러지길 몇 차례, 앞발이 나오고 머리가 나오는 동안 어미는 더욱 지치고, 드디어 새끼가 태어나는 순간 다가와 서는 수놈은 아빠임이 분명하다. 새끼는 몇 번을 넘어지다가 제 발로 서고, 몇 번을 헤매다가 젖을 찾아 문다. 옆에서 시계를 보던 사람이, 뱃속에서 나와 제 발로 서기까지 5분 정도 걸렸다고 말한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고 있는 안승걸 선생님과 항렬을 맞추어 이름을 지어 주기로 한다.

“애쓴걸, 이쁜걸‥‥‥.”

 

운전기사가 두어 번 짓궂게 차를 세운다. 한번은 얼룩말 가까이에서, 또 한 번은 코끼리 한 마리 옆에서. 두 놈 다 무엇에 홀렸는지 거시기를 길게 내놓고 있었다.

“역시 거시기는 말 거시기여!”

하며 신나게 웃던 사람들이,

“말 거시기는 거시기도 아녀!”

“거시기는 코끼리 거시기여!”

코끼리 다리가 넷이니 다섯이니 하면서 마구 웃어댄다.

그 큰 것이 어쩌면 그리 감쪽같이 줄어서 들어가 버리던지.

 

 

― 산테 사나!

 

마나슬루에 이어 두 번째 같이 하면서 든든한 모습으로 모든 걸 북돋아 주신 최창원 선생님, 언제나 밝은 판단으로 갈피를 잡아주고, 힘들 때마다 거들어주시는 최광옥 선생님, 재주꾼 룸에이트 임성규 선생님, 세계적 산악인으로서 일행을 이끌어 주신 환왕용 대장님, 왕성한 활동력과 늘 배려해 주는 마음이 존경스런 박종익 선생님, 처음 만났지만 친근하게 대해 주던 안승걸 선생님, 이밖에 뒤풀이, 중간풀이에서 술자리 분위기를 띄워 주신 함께한 모든 대원님들, 감사합니다. 혹, 제가 가진 흠으로 불편했던 점 있으시면 널리 헤아려 주시고, 늘 건강하십시오.

 

 * 킬리만자로는 키보, 시라, 마웬지 등 3 개의 주요 화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최고봉은 키보산(해발 5895미터)이다. 1889년에 독일인 지질학자와 오스트리아 산악인이 처음으로 키보산 정상을 밟았다고 한다.[한스 마이어와 루드비히 푸리첼러] 당시에 케냐는 영국령, 탄자니아는 독일령이었는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케냐 경내에 있는 킬리만자로를 독일 황제 빌헬름2세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빌헬름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 킬리만자로에 욕심을 갖게 된 외손자의 요청을 외할머니가 들어준 것이고, 이렇게 해서 산 정상부가 케냐 땅에서 탄자니아 땅으로 바뀐 것이다. 킬리만자로 산기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마사이족의 국적이 케냐와 탄자니아로 나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조선시대 선조 임금도 정휘옹주를 유정량에게 시집보내면서 산을 하나 선물로 주었는데, 그 산이 도봉산 옆에 있는 사패산[패물로 하사한 산]이라고 한다. 세상의 주인은 힘?

 

마랑구게이트 외의 트레킹코스는 로이코키토크(Loitokitok), 므웨카(Mweka), 쉬라 (shira), 마차메(Machame), 음부웨(Umbwe) 루트 등이 있는 데 빙벽과 암벽 등반을 해야 하는 힘든 코스. "킬리만자로의 눈"이란 소설을 쓴 헤밍웨이 자신도 이 산을 종주했다고.

 

* 황금을 찾아 아프리카로 밀려온 유럽 사람들은 자기네 멋대로 남의 땅에 금을 긋고, 나라를 만들고, 다투고, 주고받고 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앞선 문명으로 이룩한 자본의 힘으로 ‘사랑과 평화와 자유’가 흐르는 땅을 마구 파헤치고 있다. 천연자원 개발에 이어 관광 사업까지. 막개발이다.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마구 부리고, 갈등을 부추기고, 싸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개발과 발전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문명화되는 사회에서 원주민들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 응고롱고로 : 세계 8대 불가사의이며 세계 최대크기의 분화구. 마사이어로 '큰 구멍'이라는 뜻의 응고롱고로는 남북으로 16㎞, 동서로는19㎞, 특히 아래로의 깊이가 600m로 제주도의 8배에 달하는 면적. 동물 백화점이라 불리는 응고롱고로에 기린이 없는 것은 분화구를 둘러싼 외각 지역의 경사가 아주 심하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과 오르는 길이 모두 일방통행이며 사륜구동차량만이 출입할 수 있다. 분화구 중간에 있는 마카투호수는 아무리 혹독한 건기라도 항상 물이 고여 있어 '동물의 에덴동산'이라고도 불리며, 호숫가에는 펠리컨과 홍학이 서식하고 있다. 응고롱고로는 마사이부족의 땅이며, 유럽인으로서는 독일사람 바우만박사가 1892년에 처음 발견. 북서쪽으로 50km 떨어진 올두바이 계곡은 200만 년 전의 초기 인류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가 발견된 곳이고, 박물관이 있다.[*기린은,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 나와 아류사로 오는 길에 야산 밑에 서 있는 한 마리를 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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