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그리고 몽골

2011. 1. 19. 10:40중국러시아몽골

 

 

 

 

시베리아 !

종종 혹독한 추위의 대명사로 쓰이는 단어. 가혹한 형벌의 땅이었었고, 군사 요충지였고, 동쪽으로 향하는 통로로 개척되었던 땅. 무한한 천연 자원의 보고로, 매력 있는 관광지로 사람들의 관심과 손길과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는 땅. 한민족을 비롯한 세계 여러 민족들의 발상지로 알려진 곳. 우리의 먼 조상들이 따뜻한 남쪽 나라로 와서 터를 잡았듯이 많은 종족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져 지나간, 끝없이 펼쳐지는 벌판. 유형의 쓰라린 고통을 아름다운 예술로, 사상으로 승화시킨 유배객들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곳.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수많은 지사들의 숨결이 서려 있는 땅.

 

시베리아 횡단열차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Km, 지구 둘레의 1/4에 가까운 기찻길, 그리고 열차. 2007년 여름에 이르크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번 겨울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크츠크까지. 그땐 덤으로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브르크까지 갔었고, 이번엔 이르크츠크에서 울란바타르를 거쳐 베이징까지. 그리고 텐진까지 더 가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간다.

 

2011년 1월 3일(월) ~ 1월 17일(월)

충주 - 버스 - 강원도 동해항 - 배(1박) - 블라디보스토크 - 열차(1박) - 하바로프스크(1박) - 열차(2박) -이르크츠크(1박) - 열차((2박) - 울란바타르(2박) - 열차(1박) - 베이징(2박) - 텐진항 - 배(1박) - 인천 - 버스 - 충주.

 

 

 

 

 

 

 

2011년 1월 3일 월요일.

아침 7시 50분에 충주에서 강릉, 강릉에서 동해시까지 버스를 탔다. 강릉에서 동해까지 가는 차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동해 버스터미널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15시에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에 오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4년 전 여름에 이르크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다녀왔고, 그 나머지 구간을 타러 가는 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크츠크까지는 바닷길. 풍랑이 심하여 배가 좀 흔들린다. 멀미 기운이 있지만 소주 한잔씩 부딪치고 잠을 청한다. 잠결에도 배는 간간히 일렁거린다. 유병귀, 최광옥, 임성규, 김선창, 이호태.

 

1월 4일 화요일.

예정보다 3시간이나 늦게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였다. 바람이 맵차다. 얼어붙은 길은 미끄럽고 날은 어둡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열차에 오른다. 러시아 전통 음식 샤슬릭과 보르쉐. 오늘 밤 열차에서 일용할 양식은 보드카 한 병과 물 두 병. 역 앞 슈퍼마켓에서 구입하였다.

 

시베리아횡단철로 기점을 알리는 높다란 기념탑을 확인하고 열차에 올랐다. 곧 이어 출발! 덜컹덜컹 흔들흔들. 아! 앉으나 누우나 온몸을 사로잡는 즐거움. 깜깜한 하늘에 반짝이는 뭇별을 바라보며 4년 전 여름을 아련하게 불러낸다. 지금 저 소리와 저 흔들거림과 정확하게 딱 들어맞는다. 덜컹덜컹 흔들흔들! 그 때, 천국열차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던 그 소리, 그 흔들림.

 

1월 5일 수요일.

이른 아침에 도착한 하바로프스크에는 눈이 엄청나게 쌓여있고, 몹시 춥다. 유병귀 선생님이 가져온 온도계로 기온을 재어보니 -27℃. 호텔에 짐을 부려 놓고 컵라면으로 요기를 한 다음, 고려인 한복순 씨의 안내로 하바로프스크 시내 관광에 나선다.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아무르강과 전망대, 자연사 박물관, 성모승천성당, 중국음식점에서 점심 식사, 주청사 앞 얼음조각공원, 일제 강점기 소설가 조명희가 기거했었다는 집, 재래시장, 김유천 거리, 레닌 동상, 꺼지지 않는 불 등등. 사할린에서 강제 이주하여온 한인들이 집단 거주했었다는 집은 거의가 허물어져 있다.

 

1월 6일 목요일.

밤새 아주 살짝 가루눈이 뿌린 듯. 여전히 춥다. 엄청난 눈구덩이에 싸인 도시를 이리저리 빠져 열차 역으로 간다. 역사 앞에는 17세기 중엽에 이 지역을 처음으로 탐험했었다는 러시아 사람 하바로프의 동상이 멋진 폼으로 서 있다. 사람이 서 있는 폼이나 옷차림새, 받침돌의 모양새가 어울려 자아내는 개성적인 멋에 탄성이 터진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점잖은 모습, 경건한 분위기 일색인 우리네 동상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인다.

열차에 올라, 짐을 정리하고 컵라면으로 점심 식사. 스쳐 지나치는 차창 밖 경치에 대하여 연달아 이어지는 감탄. 같은 바곤에 타고 가는 사람들과의 만남. 우리가 주고받는 한국말 소리를 듣고 뛰쳐나와 반가워하는 박선미는 강원대학교 기계공학과 4학년 학생이란다. 50일을 예정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간 다음 북유럽 몇 나라를 혼자 다녀볼 작정으로 나섰다고 한다. 영국인 학생 피터는 캐나다 횡단 열차를 타고 오는 길에 한국에도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역사학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대학교 1학년 학생. 한국 분단 상황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한국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지식이 엿보인다. 카자흐스탄에서 군 위생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업무 차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러시아인 샤샤는 박선미 학생과 같은 꾸페에 타고 있다. 우리가 만난 다른 러시아인들과 달리 영어를 잘 한다. 최광옥 선생님이 대화 분위기를 이끌며 한참 동안 함께 어울렸다. 피터, 박선미 모두와 함께. 밖에는 자작나무 숲이 더 자주 나타나고 벌판도 더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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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바로프스크 :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약간 하류 쪽에 있는 도시로 러시아 극동 지방의 중심지. 인구 60여만 명. 17세기 중엽 러시아 탐험가 E. P. 하바로프가 여러 번 탐험했고, 1858년에 군사기지가 세워짐. 러시아가 점령하기 전에는 몽골계 원주민들이 아메리카인디언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음.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벌목을 하러 왔다가 눌러 앉은 북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함. 발해의 역사와 1930년대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

 

* 조명희(1894~1938) : 소설가. 호는 포석(抱石). 충북 진천(鎭川). 현실과 인간성의 문제를 다룬 희곡으로부터 시작하여 ‘영혼의 한쪽 기행’ 등 서정시를 쓰다가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 1927년에 대표작 ‘낙동강’을 발표. 1928년 소련으로 망명. 1937년 소련 헌병에게 끌려가 1938년 하바롭스크 감옥에서 총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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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금요일.

20여 분 동안 정차하는 모고차 역에서 잠깐 내렸다. 찬바람을 좀 쐬고, 흘렙[러시아 빵] 한 덩이를 사다가 컵라면과 함께 점심식사. 체르니예프스크 역에서 알코올 도수 8.5도인 맥주 2.5리터들이 한 병을 30루블[6~7천원?]에 사다가 저녁 새참. 저녁 식사는 식당차를 이용한다. 수수밥을 곁들인 닭고기 샤슬릭 그리고 맥주 한잔.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눈짓과 얼굴 표정, 손짓, 몸짓에 웃음으로 확인하여 소통을 하다 보니 식당 종업원이 꽤나 재미있는 사람이다. 밥을 먹고 나오면서 보드카 안주로 쓸 닭고기 샤슬릭을 배달해달라고 하니 마주 웃으면서 쾌히 승낙한다. 덕분에 훌륭한 주안상(?)을 차리니 마음이 흐뭇하고, 보드카 한 잔 한 잔이 혀에 짝짝 감긴다. 잔을 입에다 톡 털어 넣으면 보드라운 감촉으로 혀를 감싸는 액체가 몸과 마음을 달콤하게 적신다.

최광옥 선생님이 특별한 제안을 한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황당한 일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자고. 임 감독, 임 총무가 먼저 시작한다. 상등병 때 회식 자리에서 준장과 어깨동무를 해가며 취흥을 즐긴 이야기. 작대기 세 개 새까만 졸병이 별 하나짜리 장군과 어깨동무를 해가며 해롱거렸다는 건 참 황당한 일. 이튿날 선임병들에게 좀 시닫렸었다고. 면장(眠丈) 유 선생님. 말년 병장 때, 후배 병사에게 술대접을 받았는데, 그 후배의 접대 방식도 황당했지만, 더 황당한 것은 그 대접을 끝내 ‘해결’하지 못해 진짜 황당했었다는 이야기. 배꼽을 잡고 한참을 온몸으로 웃었지만, 여기에다 그 ‘술대접’ 의 내용을 자세히 옮겨 놓을 재간이 없다. 이번 기차여행을 기획하고 진행 실무를 맡은 최 선생님. 대학 시절 애틋한 짝사랑을 받았던 이야기. 김지하의 ‘황토’를 필사하여 바치기까지 했고, 그 후 여러 해가 지난 다음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마주치기까지 했던 ‘열녀’의 순애보를 최 총각은 어찌하여 받아들이지 못하고 번번이 황당해했을까? 또 한 사람은 중학교 입학시험 치르던 날,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사 주신 자장면 이야기를 한다. 자장면의 검은 빛과 냄새 때문에 끝내 젓가락을 대지 못한 촌놈의 황당함. ‥‥‥‥.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분위기는 무르익고, 기차는 덜컹거리고, ‥‥‥‥.

 

1월 8일 토요일.

새벽 잠결에도 쉬지 않고 덜컹덜컹 흔들흔들. 또 다시 컵라면과 햇반. 사진도 찍고, 메모도 하고, 책도 읽고, 누워서 눈도 껌벅인다. 참선하는 자세로 앉아 임헌영이 엮은 리영희 선생의 ‘대화’에 몰두하는 유 선생님, 박범신의 ‘촐라체’에 빠진 최 선생님, ‘녹색 평론’ 어려운 이야기를 갈피 잡느라 집중하는 임 선생님. 덩달아 남정원의 단편집 ‘분지’를 뒤적이는 동안에도 기차는 시베리아 눈밭을 달리고 또 달린다. 나타나고 또 나타나는 자작나무숲, 하얀 눈을 솜뭉치마냥 송이송이 달고 있는 소나무들, 좌~악 펼쳐지는 벌판, ‥‥‥‥. 브리야트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를 지나고, 산을 돌아 올랐다가 내려선 기차가 이번에는 바이칼 호수 옆을 달린다. 아~!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호수를 끼고 기차는 달린다. 남한 면적의 1/3만하다는 호수. 저 멀리 건너편 산이 보이는가 하면, 한쪽으로는 수평선이 아스라하다.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 가장자리엔 얼음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이고, 가운데로 먼 곳엔 물결인 듯 푸른 기운이 감돌기도 한다. 눈 덮인 벌판 끝모르게 이어지며 얼어붙은 호수가 연출하는 장관에 온몸과 온 마음을 흠뻑 적신 채 이르크츠크 역에 도착했을 땐 저녁때가 다 되어 막 어둠발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 이렇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완성’한다. 4년 전 여름에 남겨 놓았던 구간을 이렇게 달려왔다. 그 때, 이르크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동안엔 산이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벌판 한 가운데를 달리고 달렸었는데 이번엔 산과 들을 번갈아 지나쳤다. 그땐 푸른 벌판에 야생화가 피었었고, 감자밭에 해바라기가 서 있었고, 자작나무 하얀 줄기에서 파란 이파리들이 시원스레 나부끼고 있었는데 이번엔 온통 하얀 눈밭이다. 눈처럼 하얀 자작나무 껍질은 잔가지들과 어울려 바람을 휘~휘~ 스쳐 보내고, 소나무는 큼직큼직한 눈송이들을 목화솜처럼 달고 있다. 그 땐 북서쪽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아 갔다 왔는데, 이번엔 몽골로 해서 베이징으로, 텐진으로, 인천으로 갈 것이다.

 

 

 

 

 

 

 

1. 재회

 

- 1월 8일 토요일 저녁. 이르크츠크 역에서 내려 자임카로 이동하여 하늘을 보니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차갑게 반짝인다. 배는 좀 고팠지만,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바냐[러시아식 사우나]를 먼저 한다. 4년 전 여름, 자작나무 잎에 물을 축여 몸을 적시고, 달궈진 돌에 물을 끼얹어 뜨거운 증기를 낸 다음 땀을 빼고 나서 앙가라 강에 뛰어들어 몸을 식혔던 바냐. 덤벙거리다가 수증기에 화상을 입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추운 겨울 꽝꽝 얼어붙은 앙가라강물 대신 차가운 공기로, 쌓인 눈을 집어 비비는 것으로 몸을 식혔다. 상쾌하고 개운하다.

 

- 아! 식당 안으로 들어가며 마주친 사람은 그 때 그 사람, 그느므스키[우리가 붙인 이름]. 그 때, 저녁을 먹었던 식당 주인. 손님을 환영한다며 자기가 담근 보드카를 맛보이며 너스레를 떨던 그 사람. 앙가라강의 전설을 이야기해 주고, 우리가 선물하는 열쇠고리에 감격하여 원샷! 원샷! 하면서 기분을 돋우던 사람. 덕분에 기분 좋게, 흠뻑 취했었지. 어제가 러시아 정교 성탄절[1월 7일]이고, 지금은 휴일 저녁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이지만 먼 데서 온 손님들을 위해 집에서 나왔단다. 요리에 몰두하는 모습이 그렇게 진지하고 그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없다. 혹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임 선생이 가지고 온 그때 사진을 건네주니 엄청나게 좋아한다. 현지 가이드 장원석에게 알아봤을 땐 다른 데로 갔다는 얘길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인연이다. 임 선생님이, 그 때 마구 즐기던 흥겨운 장면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 주니 당장 복사해 달란다. 전혀 예상치 못했을 일이 아닌가? 식당에서 나오니 북두칠성이 머리 위에서 국자 모양을 펼치고 있다.

 

- 그 때 받아둔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결이 된 사람은 비에라. 국립언어대학교 한국어과 대학원생이었고, 방학 중 아르바이트로 우리를 안내했던 사람. 9일(일요일) 저녁 식당에서 만났다. 그들 방식대로 포옹하며 반긴다. 훨씬 세련된 얼굴과 차림새였지만 순수하고 착하고 성실한 느낌은 변함이 없다. 그간 대학원을 마치고 교수가 됐다고 한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12년 만이란다. 한참 동안을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나누었다. 임 선생님이 사진과 영상앨범 시디와 그 때 만든 영화 시디를 건네주고 또 다시 기념 촬영.

 

 

 

2. 바이칼 호수

 

그 때 여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었지만 바이칼 호수에서 유람선을 탔었다. 리스트비앙카 재래시장에서 오믈 훈제와 보드카와 맥주를 사 가지고 배 안에서 마시고 먹었다. 호수 깊은 곳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마셨고, 잠시 내려 호숫가 철길을 걸었었다. 지금, 겨울에 다시 오니 호수는 얼어붙었고, 온 천지에 눈이 쌓였다. 1월 9일 일요일 아침, 현지 가이드 장원석의 특별 안내를 받아 체른스키 산봉우리에 올랐다. 하얀 눈이 두껍게 쌓였고 몹시 추웠지만 기분이 상쾌하다. 장원석의 얘기로는 바이칼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고, 바이칼 호수를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란다. 호수는 물론 40Km가 넘는다는 건너편 눈 쌓인 산줄기까지 산뜻하게 보인다. 이렇게 날씨가 맑아 시야가 좋은 날도 그리 흔치 않다고 하니 복이 아닐 수 없다. 꼭 히말라야 산맥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3. 몽골로 가는 길.

 

체른스키에서 바라다 본 바이칼 호수를 가슴에 넘치도록 끌어안은 채 개썰매를 탔다. 여덟 마리 개가 썰매를 끌고 개몰이꾼과 앞뒤로 썰매에 앉고 서서 5Km를 달리는 스릴! 이어 리스트비앙카 재래시장과 딸찌 박물관에 들른 다음 기차에서 일용할 양식으로 물과 보드카를 샀다. 오늘 저녁은 한국식당에서. 그리고 저녁 아홉시 오십 분에 몽골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르크츠크에서 울란우데까지는 엊그제 낮에 왔던 길을 밤중에 되짚어 달린다. 어김없이 새벽이 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사진작가로 일을 하다가 은퇴했다는 미국인 딘 할아버지는 73세. 꽤 오래전, 97년도라던가? 한국에도 왔었단다. 7일 동안은 일을 하였고 3일 동안 부산, 전주 등을 여행 했었단다. 지금은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중이고 혼자 하는 80여 일 여정이란다. 우리가 15일 예정으로 함께 여행하는 중이라고 하니, 혼잣말인 듯 나직이 “Good friends!" 한다. 딸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아일랜드 할아버지. 꼭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주는 사람이다. 아일랜드에서 런던까지 비행기를 탔고, 런던에서 열차를 타고 바르샤바를 거치고 모스크바, 이르크츠크를 거처 오는 중이며, 베이징에서 도쿄로 비행기를 탈 예정이란다. 51일 여정이라던가? 둘 다 울란바타르에서 며칠 묵을 작정이란다. 딘 할아버지는 우리처럼 이틀을 묵는다고 하니 베이징 행 열차를 탈 때 다시 만날 것이다.

 

 

 

4. 시베리아와는 또 다른 몽골고원 대 평원

 

열차는 시베리아에서와 똑 같이 흔들거리고 똑 같이 덜컹거린다. 그런데 풍경은 다르다. 가끔씩 눈에 덮여 있긴 하지만, 겨울철 마른 풀밭이 한없이 이어진다. 자작나무는 물론 그 어떤 나무도 서 있지 않다. 여름엔 푸른 초원이겠지만 겨울인 지금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가끔 겔이 보이고 작은 마을도 보이지만 사람 그림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좌~악 펼쳐지는 대평원. 어떤 곳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이나 다름없는 곳도 있다. 가끔씩 말 떼가 보이고, 양 떼가 보이고, 가젤 무리가 보인다. 낙타가 몇 마리씩 나타나고, 독수리가 한 마리 혹은 몇 마리씩 날아다닌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펼쳐지는 몽골고원 대평원은 시베리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숲도, 늪도, 호수도, 다차나 마을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벌판에 가끔씩 완만하게 이어지는 구릉이 크게 너울거린다.

시베리아에서와 달리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러시아 마지막 역, 나우쉬끼 역에서 출국 심사. 여권을 검사하고, 짐을 검사한다. 마약견이 속속들이 냄새를 맡으며 지나가고 세관원이 또 한 차례 지나간다. 무려 4시간이나 걸린다. 국경을 넘어 몽골 첫 역, 수흐바타르 역. 입국 신고를 해야 한다. 승무원이 안내를 하고, 세관원이 지나가고, 입국 관리원이 지나간다. 2시간이 걸렸다. 1시간을 더 기다렸다 출발. 출국과 입국 절차에 7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러시아 관리들이 엄격하고 매서운 인상을 풍기는 반면 몽골 관리들은 우리와 비슷한 모습에 싱글싱글 웃는 낯을 보이며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베리아에서나 몽골에서나 열차가 정차하는 동안에는 화장실 문을 잠가 놓는다. 미리미리 볼일을 봐 두라는 얘길 듣긴 했지만, 갑자기 급해지는 걸 억지로 참고 참다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몽골인 승무원에게 손짓 몸짓으로 사정을 하니 역시 눈짓 손짓으로 단호하게 안 된단다. 할 수 없는 일, 억지로 여유를 만들며 견딜 수밖에. 이렇게 저렇게 끙끙거리다 보니 열차가 움직인다. 둘 중 둥글둥글하게 생긴 승무원이 쫓아와서 얼른 따라오란다. 화장실 문을 따 주는 그녀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5. 울란바타르 그리고 테를지 국립공원

 

1월 11일 화요일. 아침 여섯 시 50분 울란바타르 역에 도착했다. 몹시 춥다. -26℃. 현지 가이드 뭉크 씨를 만나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이틀 동안의 울란바타르 여정을 시작한다. 자이젠 전승기념관과 샤먼 기도처 그리고 이태준 기념관, 몽골초원에 있는 징키스칸 동상, 테를지 국립공원 안에서 승마체험, 겔에서 몽골 전통음식인 허르헉 점심, 뭉크산 하이킹, 몽골국수와 호쇼류[몽골 만두]. 이튿날엔 티벳불교 사원인 간당사와 슈흐바타르 광장, 자연사 박물관 그리고 캐시미어 직판장과 슈퍼마켓.

 

* 뭉크 : 울란바타르 현지 가이드. 한국에서 4년 동안 일하면서 한국어를 배웠음. 한국 이름은 철호. 인천 남동공단에서 그리고 울란바타르 자매 도시인 남양주에서 일하였음. 러시아와 중국, 미국, 터키 등 국제 관계, 내몽골 문제, 한국의 남북문제 등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보임. 생활 경제 원리에 대한 명쾌한 해석과 뚜렷한 주관이 엿보임.

 

* 뭉크산 : 테를지에서 점심식사 후 잠깐 올랐던 작은 산봉우리. 숙소에서 한 시간 남짓. 산줄기 한쪽에 붙어 있는 봉우리로 어떤 이름이 붙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우리가 뭉크와 같이 올랐다고 해서 ‘뭉크산’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임.

 

* 슈흐바타르(1893~1923) : 몽골 독립 영웅. 몽골 초대 국무장관. 1921년 7월 11일 슈흐바타르 장군이 독립을 선포한 장소가 1925년부터 슈흐바타르 광장. 슈흐바타르 광장은 몽골 정부청사 앞에 있다.

 

* 이태준(1883~1921) : 대암(大岩) 이태준. 세브란스병원의학교에서 의학 공부. 한일합방 후 중국으로 망명, ‘기독회의원’ 의사. 1914년 몽골 고륜으로 옮겨 ‘동의의국’ 개설. 그 때 현지 사람들로부터 ‘신인’, ‘극락에서 강림한 여래불’로 불림. 몽골 마지막 왕인 보그드칸 8세의 어의. 1919년 7월 ‘에르데닌 오치르’ 훈장 수훈. 각지 애국지사들과 함게 비밀 항일 운동.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40만 루블 독립자금 확보. 의열단 가입. 1921년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백위파 남작 ‘운게른’에 의해 1921년 교살. 1990년 한국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2000년 7월 8일 울란바타르에 기념비와 가묘 설립. 2001년 7월 19일 기념공원 준공. 2009년 말 통나무집 형태 기념관 신축.

 

* 몽골국립자연사박물관 : 울란바타르의 중심지인 수흐바타르 광장 옆에 있음. 몽골의 지형, 지리, 동식물 등의 자료 전시. 고비지역에서 발견된 두 개의 공룡화석은 세계적으로 유명. 하나는 높이 15m, 무게 4~5톤 정도의 육식공룡 타르보사우루스라이고, 다른 하나는 8m 길이의 오리주둥이를 가진 초식공룡 사우로로퍼스. 낙타 자료실이 있고, 몽골 지역에서 발견된 운석들도 전시.

 

 

 

6. 배탈

 

몽골에서 둘째 날 밤. 저녁 밥 잘 먹고, 호텔 방에서 보드카 잘 마시고 했는데, 속이 이상하다. 뭐가 잘못된 것인가? 뭔가 낌새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이럴 줄이야! 일단 큼지막한 덩이를 뒤로 내보내고 나선 괜찮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다. 아랫배 한쪽에 뭔가 독한 것이 뭉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고놈을 빼내려고 화장실에 가서 애를 쓰면 신통하게도 수제비처럼 쏙 빠져 나오긴 하는데, 고것이 참으로 못할 노릇이다. 작은 성게 송이가 빠져나오는 듯하고 뒤를 닦을 땐 밤송이를 갖다 문지르는 듯 따갑고 쓰리다. 그러고 나면 속이 편안해지긴 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아랫배에 또 다시 고놈이 뭉치고, 그러면 또 다시 화장실 문을 열고, 또 다시, ‥‥‥‥. 밤새도록 성게 송이와 밤송이에 시달리다 보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날이 밝으면 새벽 열차를 타야 할 판인데, ‥‥‥‥. 네 명을 먼저 보내 놓고, 입원을 했다가 비행기를 타야 하나 어쩌나. 그러다가 새벽을 맞고 짐을 들고 나서 보니 좀 나아진 듯하다. 비행기 타는 건 일단 없던 일로 하고 기차에 오른다.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맥주를 마시고, 보드카를 마시면서도 속과 뒤를 신경 쓰면서 하루 낮을 보내니 거의 회복, 이튿날 아침엔 정상. 이 무슨 곡절이란 말인가?

 

 

 

7. 울란바타르에서 베이징으로

 

1월 13일 목요일. 새벽 6시 10분에 울란바타르 역을 출발하여 베이징으로 향한다. 호텔에서 싸 준 아침 도시락엔 삶은 달걀 반쪽짜리 세 개, 깻잎보다 약간 두껍게 썬 햄 세 잎, 오이 몇 조각이 들어 있다. 또 다시 사방이 지평선인 벌판을 달리는 기차. 때론 겨울철 마른 초원, 때론 황무지. 말 떼, 염소 떼, 가젤 무리, 낙타 그리고 독수리 들이 가끔씩. 석탄을 캐는 노천 광산. 눈이 시리도록, 가슴이 시리도록 광활한 몽골고원 대평원!

몽골 마지막 역 자민우드에서 출국심사를 하고, 국경을 넘어 중국 첫 역인 얼리언 역에서 입국심사를 한다. 서툴지만 분명한 한국말로 질문을 하는, 몽골 제복을 입은 세관원은 어쩜 그리 이웃집 청년처럼 보이는지. 러시아에서 몽골로 넘어올 때 보다는 시간이 덜 걸렸지만, 이번엔 열차 바퀴를 갈아 끼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기중기로 열차를 한 냥씩 들어 올린 다음 바퀴를 바꾼다. 러시아와 몽골에선 폭이 넓은 광궤 철로였지만 중국에선 폭이 좁은 협궤 철로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바퀴 교체 후 얼리언 역에서 열차 문을 열어 준다. 역사 안 매점에 가서 칭따오 맥주 세 병과 빵, 과자를 열차 안 식량으로 구입한다. 이어 달리고 또 달리는 열차. 어둠이 내렸다가 새벽이 오고, 해가 뜬다. 보온을 위해 모든 창문을 닫아 건 열차 안에 볕이 비치니 덥다. 중국 땅으로 깊숙이 들어올수록 나무 하나 없는 높은 산들이 많이 나타난다. 해발 고도가 높고, 석회암 지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열차는 잦은 터널과 협곡을 지나면서 지칠 줄 모르고 달린다. 몽골고원에서와는 아주 딴판으로 마을과 도시가 자주 나타난다. 벌판마다 마을 또는 농경지다. 과수나무가 보이고, 미루나무가 보이고, 묘목 밭이 보인다. 주로 옥수수 농사를 짓는지 마른 옥수숫대를 쌓아 둔 더미가 많이 보인다. 도회지가 자주 나타난다. 오후 2시 좀 넘어 베이징 역에 도착하였다. 1월 4일 저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고 몽골고원을 거쳐 오늘 1월 14일 한낮에 베이징까지. 기나긴 기차여행은 여기서 멈춘다.

 

 

 

8. 베이징에서

 

1월 14일 금요일 오후 열차에서 내려 베이징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을, 15일 토요일엔 만리장성과 이화원을 둘러보았다. 바람이 차고 몹시 춥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치면서, 열차에 실려 길게 달려온 마음을 어루만진다. 15일 저녁엔 북경오리 맛도 보고, 양 꼬치 맛도 보고, 이과두주, 칭따오맥주 맛도 보면서 느긋한 마음. 16일 일요일, 이른 아침을 먹고 텐진까지 승합버스로 이동하여 인천행 훼리호에 승선. 17일 오후 3시 20분, 26시간 항해 끝에 인천에 도착. 인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16시 50분에 버스에 올라 19시 30분에 충주에 도착. 

 

 

 

 

 

이번 여행의 중심은 열차여행. 모든 일상을 저만치 떼어 놓은 채 지칠 줄 모르고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열차에 몸을 맡겼다. 열차에서 먹고, 자고, 창밖 풍경 감상하고, 읽고, 사람 만나고, 대화하고, 명상하고. ‥‥‥‥.

열차 안에서 만난 딘 할아버지의 나지막한 한 마디가 은은하다. "Good friends!"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여행을 함께 하다보면 다툴 일이 생기고, 언짢은 일이 생기게 마련인 법. 둘도 없는 사이였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후 오랫동안 말 한 마디 나누는 것조차 서먹해지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15일 동안 배려하고 포용하고 묻어주고 웃어 주신 네 분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전체 일정>-----------------------------

 

<1월 3일(월)>

- 15:00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1월 4일(화)>

- 24시간 만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1월 5일(수)>

- 아홉시 쯤 하바로브스크에 도착하여 아침식사 후 아무르강변, 자연사 박물관 등 시내 관광

<1월 6일(목)>

- 아침 식사 후 횡단열차 탑승

<1월 8일(토)>

- 저녁 때 이르크츠크 도착, 자임카에서 바냐 후 저녁식사

<1월 9일(일)>

- 바이칼 호수, 재래시장, 개썰매, 딸찌 박물관

- 저녁 식사 후, 울란바타르 행 열차 탑승

<1월 11일(화)>

- 새벽에 울란바타르 도착.

- 아침 식사 후 자이젠 전승기념관, 테를지 국립공원, 승마 체험, 뭉크산.

<1월 12일(수)>

- 울란바타르 간당사, 수흐바타르 광장, 자연사 박물관

<1월 13일(목)>

- 새벽에 아침 도시락 들고 베이징 행 열차 탑승. 몰골 고원

<1월 14일(금)>

- 오후 2시 지나 베이징 도착. 천안문 광장. 자금성

<1월 15일(토)>

- 만리장성. 이화원

<1월 16일(일)>

- 새벽 밥 먹고 승합차로 텐진항. 인천행 배에 올라 점심 식사.

<1월 17일(월)>

- 오후 3시 20분 인천항에 도착, 16시 50분에 충주행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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