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5. 17:38ㆍ강원
아주 먼 옛날에, 강원도 깊은 산골에 있는 작은 암자. 민가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으로 탁발이 어려워 늘 배를 곯는 두 스님 꿈속에 백발 도사가 나타났다. “저기 저 바위 위에 있는 구멍을 두 번씩만 두드려 보아라.” 끼니때마다 그렇게 하니, 딱 두 사람이 먹기에 알맞은 쌀이 나온다. 어느 날 객승이 그를 보고 욕심이 일었다. ‘200번 두드리면 200명 먹을 쌀이 나오겠지.’ 그러나 쌀 대신 피가 흘러 나왔고,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 바위 이름을 수암이라고 하는데, 벼 이삭을 뜻하는 穗(수)를 쓰기도 하고, 바위 위 구멍에 항상 물이 마르지 않기에 水(수)를 쓰기도 하며, 빼어나게 아름답다고 秀(수)를 쓰기도 한다. 그냥 쌀바위라고도 부르며, 절 이름을 쌀바위절, 곧 禾巖寺(화암사)라고 고쳤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 가운데 가장 남쪽 봉우리인 신선봉(해발 1,204m)이 있고, 산기슭에 화암사(禾巖寺)라는 절이 있다. 절집 마당에서 보면, 푸른 소나무 숲 위로 허연 바위가 솟아 있는 것이 바라보인다. 쌀바위다. 커다란 바위 위에 얹혀 있는 또 다른 바위에, 둘레가 5m쯤 되는 물웅덩이가 있고,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아, 금강산. 예전 같으면 멀어서 못 간다지만, 지금은 막혀서 못 가는 곳. 한동안 길이 열렸을 적에, 한 번 기회가 왔었지만, 히말라야 일정과 겹쳐 못 갔었던 곳. 본래 빼어난 경치로 이름이 난데다가 이따금 분단의 아픔을 툭툭 건드리기에 온 세상의 이목을 끄는 곳. 그럴 때마다 새롭게 그리움이 쌓이는 곳. 언젠가 길이 다시 열리리라는 믿음으로, 꼭 가 보겠노라 다짐을 두고 있는 곳.
그 금강산엔 지금 갈 수가 없고, 2019년 9월 15일, 지난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화암사둘레길을 걸었다. ‘일만 이천 봉’ 중 제일봉인 성인봉 아래 있는 화암사를 한 바퀴 도는 길이다. 둘레길이라고는 하나 산길이고, 어린 금강송들이 나서서 손을 맞이한다. 물러가는 가을장마가 기어코 비를 뿌리고, 비안개가 퍼지니 꼭 동양화 속을 걷는 기분이다. 쌀바위, 시루떡바위, 성인대(신선대) 등 바위들이 저마다 한 멋 하는데, 건너편 울산바위는 안개에 묻혀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멀리 울산에서 무거운 몸을 끌고 오느라고 때를 놓쳐 ‘일만 이천 봉’에 끼지 못하고, 저기 코앞에서 주저앉은 바위. 얼마나 아쉬윘을까. 여기는 금강산, 저 건너 저기는 설악산이다.
- 4Km 남짓 가볍게 걷고 나서, 고성-속초-강릉으로 이어지는 바닷가 어디, 맘 닿는 곳에 들러, 싱싱한 해산물과 함께 바다의 정취를 즐길 수가 있는, 괜찮은 여행지로 추천한다.
- 주차장-쌀바위-떡바위-신선대-화암사-주차장
- 신선대(성인대) 앞에는, 한 나그네가 모닥불에 달궈진 조약돌을 호랑이 입에 던져 넣고 위기를 모면했다는 전설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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