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10. 00:04ㆍ충청
2008년 4월 9일 수요일 흐린 후 비
18대국회의의원을 뽑는 날.
투표를 마친 사람들 아홉이 마즈막고개에서 만났다.
유, 최, 신, 임, 이, 김, 차, 임, 이.
금봉산[남산] 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걷는다.
산수유나무가 노란 미소로 반기며, 조용하게 맞이하고, 조용하게 보내고, 다음 나무가 또 맞이한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겹쳐지면, 조금 전 산수유는 노란 연기로 피어오른다.
숲 속 곳곳에서 생강나무가 또 다른 노란빛으로 방긋방긋한다.
진달래는 있는 듯 없는 듯, 수줍은 듯 다소곳하다.
파란 잎줄기 끝에 노란 꽃을 길게 달고 있는 것들은 괴불이란다.
자주색 제비꽃이,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마른 풀잎 사이에서 봄을 얘기한다.
검은 가지들은 파랗게, 노랗게 새싹을 틔우고 있다.
풀도 나무도 봄을 맞아 눈을 뜨고 하품을 하며 일어서고 있다.
산에도 봄빛, 사람들 마음에도 봄빛, 온 누리가 봄빛이다.
봄, 봄, 봄, 봄나들이 발걸음이 즐겁도다.
멀지 않은 곳에 월악산 영봉이 우뚝하다.
만수봉, 포암산이 이어지고, 신선봉, 조령산, 주흘산이 보인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충주호 푸른 물결 사이사이에 봉긋봉긋 떠 있다.
성재에 성황당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고 있다.
미신이냐 정성이냐 하는 얘기에 관심 없다는 듯 타박타박 걷는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있는 얘기 없는 얘기에 웃고, 떠들고, 침묵하며 걷는다.
재오개 느티나무 아래 바위가 낯익다.
두어 번, 저 쪽 월악산 영봉을 바라보며 한잔 쭈~욱 기울이며 쉬었던 바위.
그 앞 사과 과수원 한 쪽에 목련꽃이 하얗고, 홍매화가 붉다.
꽃그늘 아래에서 잔을 따른다.
술잔에 매화 꽃잎을 띄운다.
캬~!
굽이돌아 도선동 마을이 보이는 길모퉁이에서 충주호수 물가로 내려간다.
김밥, 빵, 인절미, 돼지김치찌개, 라면, ‥‥‥, 아껴오던 복분자술.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수다, 끊일 줄 모르는 웃음소리.
하 하 하 ‥‥‥.
거기에 빗방울이 끼어든다.
바람은 아까부터 기웃기웃한다.
발티재.
예전에 재오개 쪽, 살미면 사람들이 충주장을 보러 넘나들던 고개.
2004년 1월 도보사랑이 울진으로 걸어갈 때, 처음으로 넘었던 고개.
그 땐 두터운 눈길이었고, 추웠고, 눈발이 휘날렸었던 고개.
고개 밑 폐 가옥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인데, 주변 수목은 봄 채비가 한창이다.
가는 빗발은 그칠 줄 모르고, 사람들은 한 없이 행복한 발길을 뚜벅인다.
살구꽃이 하얗고, 자두나무 꽃도 하얗고, 복숭아꽃은 불그스름하다.
저기 저 벚꽃은 성질이 급하여 남 먼저 피어난 건가?
홑잎나무 잎이 삐쭉삐쭉하고, 버들가지는 연두색이 짙어간다.
우산에 떨어지는 봄비 소리에 봄 가슴을 적시며 걸어간다.
아~! 봄 길이여, 봄비여.
눈길 속에 울진으로 떠났던 자리.
몇 해 전, 충주중학교 선생님들이 남산과 계명산을 종주할 때 출발했던 자리.
남쪽나라 남해 미조항에서 봄비 맞으며 걸어와 여름비 맞으며 찾아왔던 자리.
범바위슈퍼 앞에 다시 왔다.
매섭게 추운 날씨, 두껍게 쌓인 눈길.
흩날리는 눈보라.
옛 발자국 더듬던 고개를
꽃구경하면서 넘어왔네.
여름비 맞으며 먼 길 접던 자리.
범바위가 내려다보고 있는 이 자리.
범바위슈펴 앞에 다시 왔네.
봄비 속에 우산을 쓰고 왔네.
09:10 마즈막고개 - 산수유꽃길 임도를 지나 성재 - 재오개 - 도선동 - 발티재 - 발티마을- 범바위슈퍼 앞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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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금동에서 빈대떡에 동동주를 마셨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홍어회에 막걸리를 마셨다.
연수동 우동가게에 들러 빈대떡에 막걸리 딱 한잔 하고 집에 왔다.
선거 결과는 굳이 알아보고 싶지가 않다.
꽃에 취하고 길에 취하고
산에 취하고 물에 취하고
봄비에 취하다.
술에도 취하는가?
(2008.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