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은 아무 말 없었다[계명산]

2010. 1. 1. 16:50충청

2009 12 31.

10년 만에 계명산 꼭대기에다 텐트를 쳤다.

유병귀, 최광옥 두 선생님과 함께. 눈을 치우고, 마른 억새풀을 꺾어다 깔고, 비닐을 깔고, 텐트를 치고, 깔판을 깔고, 침낭을 펴고, 배낭을 정리한 다음에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다 모닥불을 피웠다. 먼저 양미리를 구워서 건배. 그리고 돼지갈비를 호일에 싸 불에 던져 구웠다. 고구마도 굽고, 묵은 김치에 홍어도 한 첨 쌌다. 보드카는 두어 해 전에 모스크바에서 사온 것. 섭씨 영하 15 , 텐트 안 온도가 영하 11. ~, ~,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사납지만, 모닥불 주변은 잠잠하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불꽃은 활활 피어 오르고, 불잉걸은 이글이글하다. 무거워지는 어둠 속, 모닥불 가에서 자정을 넘기고 침낭 속에서 새벽을 기다린다.

 

2010 1 1.

10년 만에 계명산에서 새해 첫날 해맞이를 했다.

07:48쯤에 해가 뜬다고 했는데, 여섯 시 좀 지난 때부터 사람들이 올라온다. 우리 텐트 주변에, 모닥불 가에 - 헬기장에 가득한 사람들. 충주호 건너 편, 월악산 영봉을 포함한 산봉우리 들. 물 위에 뜬 지평선마냥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들 위로 불그스레하게 내려 앉는 하늘. 그 어느 한 곳에서 해님이 금조각 같은 모양으로 삐쭉 올라온다. 말없이, 깨끗하게, 서서히 떠오르는 해님.

 

엊저녁엔 그렇게도 춥더니, 오늘 아침엔 포근하다. 맑은 햇빛을 받으며 사뿐한 걸음으로 내려온다. 엊저녁 어둠은 무거웠고, 새해 첫 해님은 아무 말 없이 맑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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