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3. 17:01ㆍ섬
2011년 7월 30일(토).
11:00쯤 대천항. 몰려다니는 비구름 사이로 해님이 가끔씩 흐른다. 충주에서 달려온 진우 내외와 우리 둘, 서울에서 내려온 윤수 내외, 함께 어시장을 둘러보고 생우럭탕으로 점심식사.
15:20에 대천항 출발, 16:05 삽시도 도착. 예약된 민박집에 짐을 풀고 나서 간단하게 한잔. 그리고 조개잡이. 호미로 갯벌을 파헤치면 여러 종류의 조개가 나온다. 어떤 갯바위에는 하얀 굴 껍질이 빽빽하고, 어떤 바위에는 민물 다슬기처럼 생긴 것들이 새까맣다. 그저 고동이라고들 부르는데 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 물이 고여 있는 바위틈을 뒤지던 진우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면서, “야, 해삼이다.”
저물 무렵, 이마에 전등을 달고, 썰물을 따라 좀 더 멀리까지 나가 본다. 와~! 이젠 조개를 잡기 위해 모래나 자갈을 파헤칠 필요가 없다. 발등과 장딴지 사이에서 찰랑거리는 바닷물 속에 조개가 쫘~악 깔렸다. 비단조개. 뿐만이 아니다. 꽃게, 돌게, 이름 모를 크고 작은 게, ‥‥‥, 세발낙지에 작은 물고기까지. 얕은 물속에서 이리저리 살짝살짝 날아다니기도 하는 조개들, 밤잠을 자는지 손으로 잡을 때까지 도망가지 않는 작은 물고기들, 큼지막한 돌을 뒤집고 손을 넣어 훑으면 나오는 꽃게와 돌게, 세발낙지 들. 억센 집게발에 손가락이 얼얼하기도 하지만, 끝 모르게 이어지는 재미를 뿌리치기가 싫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진다.
그렇게 깊어진 한밤중, 민박집 할머니의 노랫가락에 배꼽을 잡고 뒹굴다가 그대로 꿈나라.
7월 31일(일).
엊저녁에 잡아온 조개를 삶고, 게를 찌고, 매운탕을 끓인다. 손놀림이 즐겁고, 입이 즐겁다. 마음이 뿌듯하고 흐뭇하다. 호미와 삽, 갯벌 기구를 챙기고, 버너와 냄비를 챙겨 시원한 바닷가에 터를 잡았다. 맛조개도 잡고, 라면도 끓이고, 삶은 조개도 까먹고, 막걸리도 한잔씩 한다. 가끔씩 빗발이 듣기도 하지만, 거센 바닷바람은 포근하게 몸에 와 감긴다. 바닷가 산으로 올라가 등성이 길도 걸어보고, 고개 너머 두어 군데 해수욕장에도 가본다. 깨끗하고 푸른 솔잎에 황금빛을 약간 띠는 황금곰솔은 바닷가에 딱 한 그루, 나무 울타리 안에 서 있다. 수령 40여 년이라는 표지판이 딸려 있다. 역시 바닷가에 있는 신비의 샘은 가득 밀려온 밀물에 묻혀 있어 맛을 보지 못하고 돌아선다. 아까 라면을 끓여 먹던 곳으로 되돌아와 평상에 앉아 다시 막걸리 한잔씩. 어둑발이 내리기에 앞서 굵어지는 빗줄기에 민박집으로 쫓겨 왔다.
우산을 들고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어떤 사람이 그물에서 고기를 따고 있다. 간제미가 눈에 띈다. “간제미가 제철은 아닐 텐데요, ‥‥‥. " 몇 해 전, 충주에서 만리포까지 걸어갔을 때 입안에서 살살 녹던 그 맛을 못 잊어 말을 붙여 본다. 잘 해 주신단다. 잠시 민박집엘 다녀오니 그물 손질은 끝이 났고, 아저씨 대신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다른 손님과 이야기가 길어진다. 한참을 기다리니 미안하다며 인심을 쓰신다. 두 마리를 덤으로, 다섯 마리를 단돈 만 원에. "고맙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회를 치고, 야채와 양념에 무친 것을 입에 넣으니 아련한 그 맛이 그대로 살아난다. '역시 이 맛이야!' 주룩주룩 빗소리는 그칠 줄을 모르고, 저녁상자리는 자연스레 길어진다. 한밤중이 되어도 여전한 빗소리. 오늘 밤엔 조개 사냥 대신 간제미.
7월 31일(월)
배에 차를 실을 수 있는 표를 사느라고 한바탕 소동. 우리가 예매한 표는 13시 20분 배. 사람 표. '사람 표'에 비해 '차 표'는 인터넷 예매가 어렵다. 전화로 문의를 하면, 현지에 오면 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침 일찍 매표소에 나갔더니 손님들만 왔다 갔다 하고 직원들이 없다. 전화도 안 받는다. 얼마 후에 나갔더니 10시 30분 이후에 오란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11시 30분쯤 나가봤더니, 표가 없단다. 줄을 서 있던 손님들이 매표원의 태도에 불만을 터뜨린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를 주고받는다.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했다가, 기다려 보라고 했다가, ‥‥‥. 뭔가 미심쩍은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기다리다 보니 내 차례. 여러 손님들에게 시달려 온 매표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따라서 높아지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아침에 두 차례 왔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따졌다. 배에 실을 수 있는 차량 수가 몇 대인데, 지금까지 표가 몇 장이 팔렸으며, ‥‥‥ 하더니, 표를 끊어 준다.
표를 얻어 다행이긴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불만의 소리를 들어 보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몇몇 민박집 주인들과 뒷거래를 한다는 게 헛소문이 아닌 것 같다. 표를 구해 놓고 남는 시간 동안 대형 팬션에 딸린 식당으로 가서 맥주를 시켰다. 자연스런 화제는 매표방식에 대한 문제점. 가끔 끼어들던 주인아주머니가 어느 순간 생각 없이 꺼내는 말. "민박집 주인이 전화 한 통 해 주면 되는데." 아니, 그럼? 지극히 '우리다운 문화'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 하는 건가? "지금은 안 되고, 몇 시부터 예매가 된다.", "더 기다려 봐야 한다." 하는 말들의 의미는? 뭘 기다린다는 건지, '차근차근(?)' 따지니까 나오는, 없다던 표는 어찌된 영문인지, 허허허. 보령 시청에 민원을 넣어야 한다. 해운회사에 가서 따져야 한다. 인터넷에 올려야 한다. 오지 말아야 한다. 말이 무성하다.
삽시도. 오래 전부터 들어온 섬 이름. 강가에 조약돌 깔리듯, 물 빠진 갯벌 얕은 바닷물 속에 널려 있는 조개. 해삼도 잡고, 낙지도 잡고, 꽃게도, 돌게도 잡고, 맨손으로 물고기도 잡고. 흔한 말로 환상적인 체험이었다. '차 표'를 구하느라 겪은 한바탕 소동도 하나의 추억이 될 터. 대천 시내 입구에서 얼큰한 '홍굴이 짬봉'으로 늦은 점심. 그리고 다시 한 번, 삽시도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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