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1. 14:19ㆍ중국러시아몽골
2011.08.19.(금) 황산.
어제처럼 맑은 날씨. 황산 입구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영객송까지 가는 케이블카 앞에서 기다린 시간이 40여 분. 사람들이 말도 못하게 많다. 공휴일에는 몇 배 더 붐빈다고 한다. 연화봉에 올랐다가 내려온 다음, 옥병에서 뒷산으로 가는 고갯마루까지 그야말로 걷는 듯 서는 듯. 재어 보지는 않았지만, 뻔히 보이는 건너편 고개까지 한 시간 이상은 걸렸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서해대협곡 가파른 길에 들어서자 호젓하다. 일반 관광객들이 생략할 수밖에 없는 길인 듯. ‘황산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라는 가이드의 말에 주저 없이 동의한다. 소나무와 바위와 흐르는 안개에 대한 놀람은 이제 좀 시들해졌다. 같은 바위산이지만, ‘대협곡’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높이와 깊이가 어마어마하고 죽 이어지는 바위 바다가 앞산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사람을 사로잡는다. 오전에 걸었던 곳이 ‘앞산’ 지금 걷고 있는 곳이 ‘뒷산’이란다. 또, 산등성이 이쪽과 저쪽을 동해, 서해, 남해, 북해, 천해 등 바다라고 부르는데 조금도 이상하지가 않다. 바다에는 안개가 가득 흐르고 있다. 좀 아쉬운 것은 공사 중인 이유로 대협곡을 관통하지 못하고 길을 되짚어, 건너편으로 가서 다시 내려왔다 올라가야 한다는 것. 그러나 양쪽을 오가며 눈으로는 관통을 한 셈이라고 위안. 경치도 경치지만 ‘사람의 힘’에 다시 놀란다. 바위를 뚫어 터널을 만들고, 터널과 건너편 바위 기둥을 다리로 연결하고, ‥‥‥! 그것도 천 길 낭떠러지에 그렇게. “와~! 대단하다, 대단해.” 특히, 만리장성을 쌓고, 바위벽을 파내어 사원을 짓고, 어마어마한 수의 병마용을 만들어 무덤 속에 넣고 하는 중국 사람들의 피에 흐르는 힘..
어제 삼청산에 이어 오늘 황산, 따져보면 바위산이다. 기암괴석이라고 하지만 온종일 ‘그 바다’에 빠져 걷다보면 때때로 놀라면서도 실은 그게 그거인 셈이다. 그래도 좋다. 한 번 와 볼만은 했다는 얘기들이 오간다. “오악(五嶽)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볼 것이 없고 황산(黃山)에 오르고 나면 오악(五嶽)을 볼 게 없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산속 호텔에 도착 했을 땐 다 저녁때가 되었다. 땀에 전 몸과 옷에선 쉰내가 풀풀 난다. 방은 비좁지만 호텔이라는 명색에 맞게 식당도 있고, 매점도 있다. 노래방에선 잠깐 동안 음악이 흐르다가 멈추었고, 연회장은 아까부터 닫힌 문이 조용하다. 매점 겸 간이 주점인가? 중국어를 못 하는 나에게 한국어도 영어도 서툴면서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매점 아가씨가 예쁘고 상냥하다. 머릿속에서 쉬운 표현들을 애써 찾아가며, 되도 않는 국적불명의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웃는다. 천진난만. 스물을 갓 넘었을까 했는데, 스물여섯이란다. 저녁 식사 후, 배낭을 뒤져 안주거리를 들고 가서 작은 고량주를 시키니까 빈 접시도 내주면서 최대한 도와주려고 친절을 베푼다. 덕분에 깊은 산속 초저녁 시간이 즐겁다.
8월 20일(토) 황산 일출
부윰한 새벽. 선선한 바람이 생각보다 차지 않다. 4시 50분쯤 나섰는데, 명당(?)마다 작은 봉우리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그득하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한참을 기다리는데, 최광옥 선생님이 “어! 저기.” 한다. 언제나처럼 빨갛게, 삐쭉 솟아오르는 해님! 잠깐 동안에 둥근 덩어리를 갖추고 두둥실 떠오르더니 빛줄기를 쫙 뻗친다. 바다에서와 다른 것은 물론이고, 계명산이나, 히말라야나, 일본알프스, 킬리만자로에서와도 또 다른 분위기. 어렴풋 삐죽삐죽하던 바위와 산봉우리들이 서서히 뚜렷해지면서 환해지는 새벽. 또 다른 신선함.
이틀, 아니 사흘 동안 삼청산과 황산 트레킹. 안내판에서 말하는 황산오절(黃山五節)에서 ‘동설(冬雪)’을 빼고 말하는 황산사절(黃山四節) 가운데 온천(溫泉)을 빼고 3절을 체험했다. 기송(奇松), 괴석(怪石), 운해(雲海). 애초 일정에 있었지만, 어떤 사정으로 빠진 온천에 대해선 미련이 없다. 더구나 여름철에. 3, 4, 5, ‥‥‥. 숫자를 늘려가는 것도 사람들의 취향일 수 있겠지만, 황산에선 3절만 해도 좋다. 굳이 4절을 찾는다면 나는 온천 대신 일출을 말하겠다.
황산은 예로부터 명승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등소평이 다녀간 다음 그의 지시로 지금처럼 개발되었다고 한다. 또, 등소평은 공사를 지시하면서 세 가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공사 품질, 철저한 환경과 위생, 지역경제 개발. 이 세 가지가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네 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다는데도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붐비고, 그런데도 나름대로 깨끗한 환경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본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 설치된 철제 사다리나 나무 계단 등에 비해 여기에 설치된 돌계단 또는 잔도가 환경을 덜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황산시 사람들 대부분이 관광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지금으로선 등소평의 뜻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게 아니가 한다. 천하절색 양귀비와 현종이 만난 이후 당나라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고사를 떠올리면서 인간 세상에서의 만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든 사람과 자연의 만남이든 꼭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만남에 대하여. 크든 작든. 등소평과 황산의 만남.
* 황산(黃山) :
중국 안후이성 동쪽. 중국 10대 관광지중 하나. 1990년 12월에 유네스코에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
* 황산 3대 주봉 : 연화봉 (蓮華峰1864m) 광명정 (光明頂1860m) 천도봉 ( 天都峰1810m)
* 황산의 5절 : 기송(奇松) 괴석 (怪石) 운해(雲海) 온천(溫泉) 동설(冬雪)
* 중국의 5악 :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嵩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