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6. 19:54ㆍ해외
2. 키나발루
1월 9일.
08:20쯤 관문이 열렸다.
키나발루 산에 오르는 관문은 두 곳.
우리는 오늘 이곳 메실라우게이트에서 올라갔다가 내일 팀폰게이트로 빠져나올 것이다.
출발 지점이 해발 2,000미터, 밀림 속으로 나 있는 길이기에 햇볕에 그을리거나 더위에 허덕일 걱정은 없다. 한국 날씨로 치면, 걷기에 딱 좋은 초가을 날씨. 그야말로 호젓한 숲속 트레킹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 희귀한 열대 수목과 식충 식물과 같은 신기한 꽃, 나무에 기생하는 난, 폭포. 고산병 예방을 염원하는 호흡과 보폭과 속도와 휴식. 오로지 즐거운 마음을 안고 걷는 길.
점심 도시락은 한식. 김치와 고추장, 나머지 야채, 계란 후라이까지 몽땅 섞어 뚜껑을 닫고 마구 흔들고 나니 너무나도 훌륭한 '키나마루 비빔밥'이 만들어진다. 식사 후 충분한 휴식. 여기가 티가트로, 해발 2,500미터, 이제 고소에 대한 걱정들도 슬슬. 막 출발하는데 빗방울이 한두 개씩 듣더니 금방 장맛비 모드로 변한다. 오다 그치다 하는 비가 그런대로 정겹다. 문제는 고소에 대한 적응. 킬리만자로에서의 악몽을 떠올리며 한 발짝 한 발짝을 심호흡과 함께 한다. 흐~흡, 휴~! 흐~흡, 휴~! 절대 무리하지 말고, 자주 쉬며, 서두르지 말고, 그렇게 뚜벅 뚜벅.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그 속을 그렇게, 그렇게.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지경에 빠지기 직전에 라바라타 산장에 도착했다. 해발 3,272미터. 다섯 시가 훌쩍 넘었다. 빗물이 뚝뚝 떨러지는 비옷을 벗어 털어 걸어 놓고 심호흡으로 몸과 마음을 한참 동안 진정시킨 다음 따뜻한 차 한 잔. 그리고 저녁 식사. 내일 새벽 2:30 등정 예정. 그래서 취침․소등 시간은 저녁 8시. 이곳의 규칙이란다. 줄기찬 장맛비 소리는 잠을 재우는지 깨우는지. 아무려나 마음은 아늑하고 몸은 편안하다.
1월 10일 새벽.
비 때문에 정상엘 못 갈 거라는 얘기도 들리고, 하여간 간단한 요기와 단단한 채비를 하고 대기. 식당 안엔 말레이시아 말,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등, 별의 별 말들이 말 꽃을 피우고 있다. 예정 보다 좀 늦은 2:50분 쯤 용감하게 빗속을 뚫는다. 이마에는 랜턴. 비옷을 때리는 빗소리는 이제 걱정보다는 다정한 벗으로 다가온다. 문제는 고소. 심호흡, 천천히, 쉬고 또 쉬고, 오로지 이 방법. 흐~흡, 휴~! 흐~흡, 휴~! 정상 코 밑에서 번호표를 확인한다. 하루 허가 인원 140명에 대하여 일일이 정상을 밟았는지를 확인하여 확인증을 발행해 준다는 것이다. 물론 정상길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드디어 정상. 사진을 찍으라는 듯 비가 참아준다. 심호흡을 고르면서 찰칵. 이렇게 키나발루 정상에 섰다! 해발 4,095.2미터, 동남아 최고봉이라는 키나발루 정상, Low's Peak에 이렇게 섰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 다시 번호표를 검사한다.
보르네오 섬 북부 키나발루 산.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우기라는 곳.
2012년 1월 10일 새벽
우기라면 그에 맞는 비가 내려야지.
어제부터, 아니 그제 저녁부터
정겨운 ‘장맛비’로 다가와
키나발루 정상을 안내하는 비가
펄럭이는 비옷을 다정스레 타닥거린다.
동남아 최고봉
키나발루 정상
Low's Peak에 오르는 길에
흩뿌리는
비!
동남아에 우뚝 솟은
키나발루 산에
비를 맞으며
비옷을 펄럭이며
비옷을 때리는 빗소리를 즐기며
바위산 봉우리
Low's Peak
우뚝한 봉우리에
이렇게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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