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아리랑[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2008. 2. 27. 11:17해외

 

네팔아리랑

―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




1. 히말라야


2006년 1월 5일. 맑은 공기 속에 퍼지는 아침 햇살과 양 볼과 몸통을 어루만져주는 상큼한 바람결을 즐기며 집을 나선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방학을 맞아 한낮에야 일어나던 녀석들이 눈을 비비며 보내는 배웅 인사에, 아주 짤막하게, 코끝이 시큰하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 ‘언젠가 가 봐야지’ 하는 막연한 그리움이 마음 한 구석에 늘 있었다. 붓다가 도를 깨우친 곳도 히말라야 어느 산자락이라고 들었다. 붓다는 석가모니의 다른 이름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정신세계를 사로잡아오고 있는 가르침들이 어찌 한 개인의 출중함에서만 비롯되었으랴.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스러움, 사랑과 미움, 인간의 삶을 이루고 있는 온갖 집착과 번민을 아우르는 절절한 설법들이 어찌 석가모니 한 사람만의 고행에서 얻어질 수 있었으랴. 거대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대자연 히말라야 자락 골짜기 골짜기에 수천 년 동안 쌓이고 쌓인, 숱한 사람들의 숨결이 석가모니의 눈과 귀를 통해 정리된 것이리라.


나는 지금 그 히말라야 한 자락을 걸어보고자 길을 떠나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도 싶다.



2. 비행기를 타고


작년 10월, 같은 학교 김영식 선생님께서 기획하여 조직한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 일원이 되었다. 탐사대는 학생 4명과 교사 12명, 대학교수 2명, 그리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충북산악연맹 회원들로 구성되었고, 한국방송공사 프로듀서 1명이 함께 하였다. 총 27명. 목적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지역 트레킹과 오지학교 방문이다.


1월 5일 17:35 인천공항을 떠났다. 타이베이 공항에서 한 시간 쉬었다가 밤중에 태국 방콕 공항에 도착하여 11시간 정도 기다린 후 카투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탄다. 방콕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대원들이 주고받는 재담들, 터지는 웃음소리들은 단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타이항공 기내식 향이 꽤나 진하다.



3. 카투만두에는 바람이 없다?


1월 6일 한낮에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한다. 안나푸르나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보우드넛(BODHNATH) 사원을 둘러본다. 카투만두 중심가 동쪽에 있는 사원으로 세계 최대라고 하는 불탑이 있는데, 탑 이름이 보우드넛(BODHNATH)이다. 탑 주위에는 티벳 사람들의 집단촌이 형성되어 있고, 인도나 티벳에서 온 순례행렬, 우리들과 같이 이곳저곳에서 온 관광객들, 일과 시간 짬짬이 탑을 도는 주민들의 구도 행렬로 북새통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룸메이트 임선생님과 함께 구멍가게 같이 생긴 곳에서 ‘찌아’라고 하는 네팔 전통차를 마시고, 거리를 걸어 본다. 비로 길바닥을 쓸고, 쓰레기를 태우기도 하는 청소부들, 버스 승강장이나 육교 같은 데에 자리를 펴는 노점상들, 일터로 향하는 바쁜 발길들에서 제법 활기를 느낀다.


아침 식사 후에 교외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과 함께 종이접기도 하고, 학용품과 옷가지를 나누어 주고, 기념 촬영도 한다. 아주 좁은 운동장과 낡은 교실과 교재들이 네팔왕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머릿속이 몹시 혼란스럽다. 거리를 이동할 때 사탕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아이들의 남루한 차림과 길가 여염집들에 마구 널려진 살림살이들. 입에 발린 소리로 “불쌍하다”, “우리나라 60년대 모습이다” 마구 말해도 되는 것인가? “사탕을 주는 것은 그들의 자립심을 더욱 약화시키고, 계속해서 거지 본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이 있어야 사람이지”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말해 버려도 되는 것인가? 상대방의 처지는 아예 외면한 채, 오로지 ‘나의 잣대’로만 재어 말해도 되는 것인가? 어설픈 우월의식이 아닐까?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보다는 각자에게 깃들여 있는 영혼을 얼마만큼 순수하게 간직하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 아닐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을 싣고 버스는 덜컹거린다.


오후에는 화장터와 왕궁과 재래시장을 둘러본다. 화장터는 강 상류에 있다. 건기를 맞아 바닥이 많이 드러난 강가에는 장작더미를 만들고 있는 모습, 불이 한참 타고 있는 모습 들이 보인다. 이들의 전통적인 장례의식들이 거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루 종일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하늘을 덮는다는 이곳의 본 이름은 파슈파티나드(PASHUPATINATH). 시바신을 위해 지어졌고, 네팔 힌두인들의 최고 성지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시바신에게 가까이 가려고 이곳에 와서 경건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돈 많은 인도인들도 있다고 한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 것인가?


구 왕궁 앞 광장을 듀버 스퀘어(DURBAR SQUARE) 또는 바산타풀 또는 하누만도카라고 한다. 살아 있는 여신 꾸마리를 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었지만 역시나 볼 수가 없다. 시간이 아니다.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어센바자르(ASAN BAZAR)와 타멜(THAMEL)은 각각, 남대문 시장과 이태원에 비유되고 있는 곳이다. 사람도 많고, 파는 물건도 다양해서 볼거리가 많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공기도 탁하고 해서 대충 돌아본다.


카투만두. 북쪽에 있는 히말라야산맥과 남쪽에 있는 마하바라트산맥 사이에 있는 분지로 해발 1,300m라고 한다. 동서 약 20Km, 남북 약 35Km 가량 된단다. 오늘 새벽에 호텔 주변을 돌 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도시 전체가 부옇다. 이렇게 공기가 맑지 못한 것은 카투만두가 분지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들을 한다, 분지이기 때문에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서.


과연 그런가? 모르겠다. 다만, 좀 다른 바람을 생각한다. 30여 종족과 이보다 더 많다고 하는 신(神)들이 일으키는 바람을 생각한다. 북쪽에서 티벳과 미얀마 사람들이 넘어오면서 일으켰던 바람, 남쪽 인도 아리안들이 침입하면서 일으킨 바람을 생각한다. 이것은 흘러간 바람일 수도 있다. 오늘날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하여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발길들이 일으키는 바람을 생각한다. 독재 왕정에 항거하는 민주화 세력과 산간에 근거하는 반군들이 일으키는 바람도 생각한다. 이것들은 지금 불고 있는 바람이랄 수 있겠다. 그것이 어떤 바람일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4. 세속에서 비속으로


1월 8일 아침, 포카라까지 국내선 비행기를 탄다. 정원 35명인 비행기에 우리 일행이 27명이니 전세기를 탄 기분이다. 포카라에서 페디까지는 전용 버스로 이동한다. 지금부터가 트레킹이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를 거쳐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까지 갔다 올 것이다. 이걸 가장 많이 기대하고 왔다.


먼저, 출발이 좋다. 사실, 엊저녁에 어떤 번민이 있었다. 나중에는 선물을 살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무언가를 샀다. 어떤 걸 살까? 아니, 사야 되나 말아야 되나? 얼마를 달라는데, 얼마로 하자. 꽤 많은 고민을 하다 선택한 물건과 가격이 영 바보짓을 한 기분이었다. 남들은 지혜롭게, 슬기롭게 잘들 해나가던데. ‘나는 바보야’ 아주 형편없는 문제로 번민을 하다 보니 정말 바보 같았다. 그런데 그게 세속에서 비속으로 가는 통과의례였구나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시작하니 머릿속이 맑아진다. 출발에 앞서 맛본 쾌변의 시원함도 한 몫 거든다.


급한 경사를 오르면서 건너편 산비탈에 펼쳐지는 계단식 논이 먼저 눈길을 끈다. 학생 시절에 사회책에서 보던 걸 현지에 와서 보고 있는 것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한 덩어리의 세상일들이 머릿속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가는 펼쳐지는 산세와 맑은 바람에 밀려 슬며시 흘러 나간다. 이런 흐름은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그러면서 내 머리와 가슴이 씻어질 것이다.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남봉의 하얀 봉우리가 저 만치에 서서 이러는 나를,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포타나에서 산속 첫 잠을 잔다. 저녁으로 나온 닭도리탕은 한국 어느 식당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맛이 있다. 덴지라는 요리사(우리 탐사대 주방장)의 솜씨는 귀가 닳도록 들어온 터였지만 정말 좋다.



5. 쏟아지는 별빛과 장엄한 해맞이


새벽녘에 소변을 보러 나왔다가 쏟아지는 별빛을 본다. 저기 저 북두칠성은 어렸을 적 고향에서 보던 것과 똑 같다. 아직 전기가 없었던 내 고향 매산에서 쏟아지던 별빛이 지금 네팔 포타나에 와 있는 내 머리 위에서 또 쏟아지고 있다.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서서, 부셔져 내리는 보석 가루 물줄기에 온몸을 적신다.


별이 총총 새벽하늘에

저기, 저기 북두칠성이 내 고향이네.


롯지 옆 언덕에서 기가 막히는 해맞이를 한다. 룸메이트 임선생님과 함께 가는데 방송공사 김 피디가 어울린다. 넓고 깊은 골짜기 저~편 산줄기 어디선가 해가 솟을 것이다. 한참을 기다린다. 일행의 출발에 지장이 있겠다 싶어 포기를 하고 돌아서는데 김 피디가 막 부른다. “아~!” 조용하게 토해 본다.  “와~!” 깊게 놀란다. 히말라야에 와서 기분 좋은 일출을 맞고 또다시 배낭을 멘다.



6. 레샨 삐리리


1월9일 저녁은 란드륵 롯지에서 먹는다. 포타나에서 긴 내리막과 짧은 오르막, 산허리를 돌고 돌아 롯지에 도착해서 양말을 빨았다. 한가롭게 모여 앉아 포타나에서 배우기 시작한 네팔 민요 레샨 삐리리를 함께 부른다.


레샨 삐리리 레샨 삐리리

우레라 자운끼 다나마 번장 레샨 삐리리

에크나래 번드 두이나레 번드 밀거라이 다께꼬

밀거라이 머이레 다께꼬 호이네 마야라이 다께꼬

레샨 삐리리 레샨 삐리리

우레라 자운끼 다나마 번장 레샨 삐리리


레샨 삐리리 레샨 삐리리

우레라 자운끼 다나마 번장 레샨 삐리리

꾸꾸 랄라이 꾸띠마 꾸띠 비라 레라이 슈-리

딤로암로 마야쁘리디 도바도마 꾸-리

레샨 삐리리 레샨 삐리리

우레라 자운끼 다나마 번장 레샨 삐리리


한참 노래로 흥을 돋우다가 청주에서 오신 윤선생님과 마을로 들어가 본다. 가파른 경사면에 붙어 있는 마을길을 오르락내리락 기웃거리다가 구멍가게 같은 데서 럭시를 시켜 둘이 마신다. 이들은 안주라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 그들이 먹고 있는 옥수수(네팔 말로는 먹거이) 튀긴 것을 안주로 삼으면서 주인 부부와 두 아이가 함께 어울린다. 남 바손티 파우델 부부에게는 딸이 셋 있는데 둘째 딸은 포카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단다. 네팔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 가만히 들어 보면 중학교 때쯤 배운 단어들이 많은데, 막상 말을 하려면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돌아오면서 단어를 생각해 보고, 문장을 꾸며 보고 하다 보면 우습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그들과 대화를 하려면 손짓, 몸짓에 얼굴 표정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뜻이 통하게 되면 마주 보면서 서로 만족스럽게 웃는다. 한계가 있었지만 꽤 많은 얘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고 하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자기들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는 그들이 아주 천진스럽고 티 없어 보인다.



7. 따또바니


1월 10일, 란드륵에서 출발하여 지누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옆 골짜기를 한 참 내려가 온천욕을 한다. 따또바니. 네팔 말로 ‘따또’는 ‘뜨겁다’, ‘바니’는 ‘물’이다. 골짜기에는 저 위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기세 좋은 물줄기가 있고, 그 옆에 노천 온천이 있다. 길옆에 “hot spring”이라고 쓴 이정표를 따라 내려 왔다. “아·!” 온 몸이 살살 녹는다. 이 깊은 산속에서 온천욕이라니. 푹 잠겨 있다 나오니 날아갈 듯하다.


다시 급경사를 걸어올라 촘롱에 있는 롯지에서 잠을 잔다. 걸어오면서, 배낭여행을 하는 대학생들을 비롯하여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우리나라 산에서 가끔 외국인을 만나는 것 같다는 말에 웃으면서 동의를 한다. 이러한 트레킹을 통하여 견문을 넓히고, 마음을 넓히고, 생각을 맑게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 우리나라 사회도 그만큼 맑아지고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저녁 식사 전에 윤선생님, 임선생님과 또 마을 나들이를 한다. 이 마을은 란드륵보다 더 크고, 급경사 돌계단도 더 길다. 또 해발 높이가 2,000이 넘다 보니 빨리 걸으면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고소가 실감난다. 두려움에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이번엔 마을 구판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럭시를 한 잔씩 한다. 자연스럽게 거기에 모인 마을 사람 몇과 대화가 이루어진다. 서로의 나이를 묻고, 알아맞혀 보라고 하는 대목에선 은근한 장난기까지 돈다. 암 바하드르 구릉 씨는 예순일곱 살이며, 마차푸차례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에서 오래 살았었고, 아들 람 카지 구릉이 지금 거기에서 롯지를 운영하고 있단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고 했더니 즉각 써 준다.


1월 11일 수요일 : 촘롱-시누와-뱀부-도반-히말리야

1월 12일 목요일 : 히말리야-데우랄리-MBC



8.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1월 13일 아침에 MBC를 출발하여 ABC에 오른다. MBC는 마챠프차레 베이스캠프의 영문 약자이고, ABC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약자이다. 해발 8091m인 안나푸르나 제1봉에서 동쪽으로 제3봉, 4봉, 2봉이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있고, 그 남쪽에 안나푸르나 남봉이 있다. 1월 8일 페디에서 걸어오면서 계속 보아 왔던 것은 남봉(7,219m)과 마차프차레(6,993m)이다. 안나푸르나 하얀 봉우리는 말이 없다. 그저 그렇게 서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하얀 봉우리를 보며 걷고 또 걸어 왔다.


오르락내리락 굽이굽이를 도네.

안나푸르나 하얀 봉우리 말없이 섰네.


ABC(4,130m)에서 한 시간 가량을 보냈다, 모두들 어쩔 줄을 모른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꼴들이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 듯싶다. 이리 서 보고, 저리 찍고,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하얀 눈!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 ‘제공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무엇이 풍요하다는 것인지, 무엇을 제공한다는 것인지 따지지 말자. 이미 많은 것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무언지 말로 다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9. 명상의 길


1월 14일 토요일. 이른 아침 뱀부-시누와 숲 속 길이 좋다. 저 밑 골짜기에 기운차게 흐르는 물소리와 아침 인사를 나누는 산새들 소리가 맑게 어우러진다. 저 나무 꼭대기에는 머리가 하얗고 꼬리가 긴 원숭이가 아침 햇빛을 맞고 있다. 푸드덕,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자리를 옮기는 앵무새 무리 또한 아침 햇살을 가른다. 저만치 앞에서 포터들이 부르는 노래는 비음을 깔고 흐르는 듯하고, 가끔 풀피리 소리가 섞여 들린다. 길 가까운 숲 속에선 나무를 하는지, 소먹이 풀을 뜯는지, 서로 주고받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청아한 곡조를 이루어 화답한다. 그윽한 숲 속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교향악이다. 그 속에 타박타박 걸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이 좋다.



10. 촘롱에서 학교 방문


한낮이 되어 촘롱 그 롯지에 다시 왔다. 오는 길에 암 구릉 씨를 찾아 MBC에 있는 그의 아들이 보내는 답장 편지를 전달해 준다. 10일날 럭시를 마셨던 구판장 앞에 서성이는 한 청년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집에서 구릉 씨는 나를 아주 반갑게 맞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아들 람 카지 구릉의 롯지에서 묵지 않았다는 것에 매우 서운해 한다. 우리의 숙소는 이미 한국을 떠나올 때에 정해져 있었다고 그날 말해 줬었는데, 언어 사용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가까스로 이해를 시키고 나오는 나를 구릉 씨는 맑은 웃음으로 배웅한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학교를 방문한다. 촘롱학교운영위원장이 대회장이 되어 방문 의식을 마치고, 박병규 학생의 시범에 따라 남학생들은 태권도 기본 동작을 하였고, 여학생들은 여선생님들과 함께 종이접기를 한다. 이어 함께 하는 놀이로 꼬리잡기, 돼지씨름, 닭싸움을 한다. 아이들 놀이는 어느 나라나 비슷한가 보다. 물론 방식의 차이는 약간 있었지만 쉽게 어울린다. 이어서 학용품과 의약품, 옷가지를 전달한다.


저녁 식사 후,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이 롯지로 와서 민속놀이를 보여 준다.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한 답례가 되는 셈인데,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가 고조된다. 9일 란드륵 롯지에서도 보았고, 카투마두 식당에서도 보아 온 일이지만, 네팔 사람들은 노래와 춤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배우와 관객의 구분이 크게 없는 모든 소리와 동작에서 어떤 가식도, 일부러 함도 발견할 수가 없다. 한없이 맑은 눈망울에 나타나 있듯이 삶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역만리 떨어져 서로 다른 기후 풍토 속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살고 있지만, 같은 인간이다. 다 같이 생로병사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다. 마주 보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그걸 말해 준다.


“본래 자연 상태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고, 선량했던 인간은 사회 제도나 문화에 의해 부자연스럽고, 불행한 상태에 빠졌다.” ― 루소



11. 창조를 위한 파괴


1월 15일. 실질적으로 트레킹이 끝나는 날이다. 촘롱-지누-뉴브리지-큐미-시우알리를 거쳐 비렌티디에 왔다. 특별 메뉴로 닭백숙에 사과브랜디 럭시다. 기분 좋게 먹고 마신다. 그런데 좀 과했나 보다. 자리를 옮겨 개울 건너 가게에 가서 2차를 하고 오다가 넘어졌다. 16일 아침 일어나 보니 왼 쪽 팔과 옆구리가 결린다. 숨을 크게 쉬어도, 기침을 크게 하여도 옆구리가 울려 아프다. 내색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데, 몇몇이 눈치 있다는 듯 은근슬쩍 위로의 말을 건넨다. 저녁 식사 전의 일이지만 지갑도 잃어버렸다. 신분증과 운전면허증, 신용카드를 재발급 받아야 한다. 20여 년 정들었던 지갑이다.


시바신은 파괴의 신이다. 힌두교 3대 신 중 브라흐마는 세계를 창조하고, 비슈느는 이를 유지하며, 시바는 파괴한다고 한다. 네팔 여자들은 비슈느신을 좋아하고, 남자들은 시바신을 좋아한다는 말도 들었다. 파멸로 이르는 파괴가 아니라 창조를 위한 파괴이다.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이니 때때로 파괴와 재창조가 필요하리라.


트레킹 시작 전 날 번민 아닌 번민을 하였고, 첫걸음을 띠면서 마음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었다. 끝내는 날에 또 한 바탕의 소동을 겪었다. 아! 내 히말라야 첫 트레킹에 대한 시바신의 장난인가?



12. 감사하다는 말


9일 동안 트레킹을 하면서 양치질과 발 씻는 것 외에 몸을 닦지 않았다. 물론, 고양이 세수도 간간이 했고, 옷도 두 번 갈아입었고, 양말도 매일 갈아 신었다. 따또바니에서 노천 온천도 한번 즐겼지만,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지 않았다. 냄새가 많이 날 것이고, 때가 북북 밀릴 것이다. 그러나 개운하다. 머리와 가슴을 많이 씻었다. 걸으면서, 보면서 씻고 씻었다. 떠나오기 전 한 방송 프로 진행자가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느냐고 물어 온 일이 있다. 참된 배움은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데에 있다고 본다. 거대한 히말라야. 산과 골짜기와 맑은 바람, 한 없이 좋은 자연 환경을 보았다. 아주 깨끗한 곳을 걷고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다.


“감사합니다!”


히말라야 산에 감사하고, 이번 길을 기획하고 이끌어 주신 김영식 선생님 그리고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우리들의 편의를 위해 애써 주신 핀조 씨와 파쌍 씨, 덴조 씨를 비롯한 네팔 여러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날씨를 보여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던네밧!



13. 진도아리랑 곡조에 맞춰서 불러본 노래, 네팔아리랑.


(후렴)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흥~~~ 아라리가 났네.


걸어 보세 걸어나 보세.

네팔이라 히말라야를 걸어나 보세.


동이 튼다 먼동이 튼다.

포타나 롯지에서 해맞이 한다.


배낭을 메세 배낭을 메세.

이제 서서히 배낭을 메어나 보세.


오르락내리락 굽이굽이를 도네.

안나푸르나 하얀 봉우리 말없이 섰네.


별이 총총 밤하늘에

저기저기 북두칠성이 내 고향이네.


불이 붙는 네팔리 럭시

집 나온 이 내 가슴이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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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일정>


2006 01. 05(목) 11:00 수련원 출발 / 17:30 인천 공항 출발-타이베이 공항 1시간-방콕 공항

      01. 06(금) 12:45 카투만두 트리부번 공항-안나푸루나 호텔 / 보드너트 사원

          07(토) 안나푸르나 호텔-학교 방문-화장터-왕궁-재래시장-타멜거리-만찬

      01. 08(일) 카투만두-(국내항공)-포카라-(버스)-페디-트레킹시작-담푸스(점심)-포타나(롯지 숙박)

          09(월) 포타나-톨카(점심)-란드륵(롯지 숙박)

          10(화) 란드륵-뉴브리지-지누(점심/따또빠니)-촘롱(롯지 숙박)

          11(수) 촘롱-뱀부(점심)-도반-히말리야(롯지 숙박)

          12(목) 히말리야-데와랄리-MBC(점심/휴식/숙박)

          13(금) MBC-ABC-MBC-히말리야(점심)-도반-데우랄리-뱀부(롯지 숙박)

          14(토) 뱀부-촘롱(점심/학교 방문/숙박)

          15(일) 촘롱-뉴브릿지-샤우리바잘(점심)-비렌단티(롯지 숙박)

          16(월) 비렌단티-나야폴-(버스)-포카라(점심/찬드라 방문/휴식/페와호수/숙박)

          17(화) 포카라-버스-(점심)-카투만두(휴식 및 만찬)- 안나푸르나 호텔

                <스와얌브나트(SWAYMBHUNATH)>

      10. 18(수) 11:00 호텔 - 트리부번 공항-방콕(숙박)

          19(목) 왕궁-에머릴드사원-수상시장-방콕공항 23:30 출발

          20(금) 06:30 인천공항 도착-11:00 충주 도착-점심식사 후 해산


*트레킹을 끝내고 포카라에서 잠시 휴식과 시내 산책, 페와호 뱃놀이를 했고, 일부는 찬드라 구릉 씨를 방문했다.

*찬드라 쿠마리 구릉 씨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었다. 93년, 한국말이 서툴고 행색이 초라하다는 이유로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2000년 3월 우연히 발견된 후,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서 귀국하였다. 식당에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게 발단이었고, 손발이 묶이고 강제 투약을 당하는 등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과 학대를 받았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에서 “찬드라 참회 모금방”을 열어 그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인 바 있고, 참회의 발길이 여럿 있었다. 1월 16일 포카라에서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때는 모든 악몽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스와얌브나트(SWAYMBHUNATH) 카투만두 중심가 서쪽 언덕 위에 흰 탑(스투파).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외국인들에게 멍키템풀로 통함. 카투만두가 호수였을 때 이 곳을 찾은 만쥬수리 신이 호수의 물을 뺄 때 가장 먼저 빛을 발한 곳. 1월 17일 오후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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