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를 넘다[마나슬루라운드트레킹]

2008. 2. 27. 11:21해외

히말라야를 넘다[마나슬루라운드트레킹]

― 2008.01.02~01.22 ―




― 2008년 1월 14일, 히말라야 마나슬루 지역에 있는 라르케패스(해발 5,214 미터)를 넘다. ―


1월 5일 이른 아침에 마나슬루라운드트레킹을 시작한다. 간밤엔 아르밧가자르에서 야영을 하였고, 해발 8,163 미터인 마나슬루 산자락을 근 한 바퀴 돌아 걷는 동안 주로 텐트 안에서 잠을 잘 것이다.



1. 감사하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


꼭 이태 만에 다시 찾은 네팔, 히말라야의 자연과 사람들을 맞아 가슴 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집적대는 인간의 문명이 하찮아 보일 정도로 거대한 자연, 히말라야. 그 자락에 붙어 산의 일부인 양, 나무처럼 수풀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누가 저들의 삶을 원시적이다, 불쌍하다 말할 것인가!


아르밧가자르로 가는 차창 밖으로, 잘게 부순 돌을 차에 싣는 사람들을 본다. 부녀자에 어린아이, 심지어 만삭에 가까운 임산부도 있다. 맨발인 사람도 있다. 모두가 맨손으로 들것에 자갈을 담아 나른다. 머리와 얼굴과 손발, 온몸에 돌가루와 흙먼지가 앉아 새까맣다. 그러나 낯빛엔 고단한 기색이 전혀 없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저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가슴속에나 더러 있을 것 같다. 아주 열심히 일하는 진지한 표정, 지금 이 순간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오로지 몰두하는 저 모습에 이러니저러니 말을 갖다 붙인다는 것이 가소롭다.


행복이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리라. 남이 느껴주는 것이 아니리라. 남의 삶에 대하여 내가, 행복하다 불행하다 말하고 느껴줄 수 없으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이의 처지와 개성, 다양한 모습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존재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이리라. 각기 다른 얼굴과 개성을 가진 스물일곱 일행에 대하여, 충주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지들 모두에게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사흘 동안의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2.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히말라야,

아르밧가잘에서 사마가온을 거쳐 라르케패스로 이어지는 길.

부디반다끼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수백 미터 깊이의 협곡을 따라

이쪽저쪽 벼랑에 붙어 걸어가는 길에

해가 뜨고 달이 진다.


물소리 우렁차게 그침이 없고,

짐 실어 나르는 당나귀 풍경이 뎅거덩거린다.


사람들은

가파른 산비탈 여기저기에 계단식 논밭을 일구어 놓고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내왕을 한다.


만년설을 뒤집어 쓴 봉우리들은 언뜻언뜻 멀리서 다가오고

폭포는 산비알에서 길게 떨어진다.


나마스테!

오가며 줄기차게 주고받는 인사말로 서로의 얼굴에 웃음을 띠우는데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구름다리에서 사람들을 마구 흔들어댄다.



3. 히말라야의 폭포


‘히말’은 ‘눈이 있는 곳’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높은 봉우리들을 에베르스트히말, 안나프르나히말, 마차프레히말, 가네히말, 마나슬루히말 등으로 부르고 있다. 히말라야 계곡들엔 높은 봉우리들이 이고 있는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다. 물빛이 부옇게 보이는 것은 흐르는 동안 끼어 든 석회성분이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린 지금, 마나슬루산군에 있는 부디반다끼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수백 미터, 아니 수천 미터라고 하면 과장일까? 거대한 산속에 깊은 골짜기 양 옆 깎아지른 듯 하늘 높이 솟아오른 산비탈 곳곳에는 하얗게 떨어지는 폭포가 심심찮게 보인다. 내가 지금까지 국내에서 보아 온 모든 폭포의 길이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길 것만 같은 폭포들이 꺼릴 것 없이 물줄기를 부수어 떨어트리고 있다.


이곳에 있는 폭포들은 골짜기에 은밀하게 숨어 있지 않다. 훤히 드러나는 산비탈에서 온몸을 아낌없이 내보이며 떨어지고 있다. 이곳 사람들이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들을 숨김없이 내보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바로 저런 게 아닌가? 사람도 자연도 숨김이 없다. 가식이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도다.



4. 산불


걷고 또 걸어가는 길, 멀고 가까운 산허리에 가끔씩 산불이 타고 있다. 대낮에, 멀리서 가까이서 타오르는 연기가 자주 보인다. 집 주변이고 산기슭이고 염소들이 떼를 지어 풀과 나뭇잎을 뜯어 먹고 있는데, 오래된 억센 잎보다는 새로 돋는 연한 잎이 먹기에 좋단다. 그래서 사람들이, 새잎이 쉽게 돋아나도록, 오래된 잎을 일부러 태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산불이 크게, 세차게 번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겨울철이라고는 하나 숲은 파랗고, 바위도 많고 하니 산불은 사람이나 염소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타고 스스로 꺼진다. 가끔 꺼진 것 같던 불씨가 되살아나고, 불티가 바람에 날려 다른 곳에 번지기도 하지만 역시 크게 타오르는 일은 없다. 밤이 되면 빨간 불꽃이나 반딧불이 같이 깜빡이는 불씨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놀라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알아서 꺼질 것이니까. 이 또한 산과 인간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아닐런가.



5. 노동요


우리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이나 장을 보러 오르내리는 지 심심찮게 만나는 사람들, 소먹이 풀을 뜯는 사람들, 당나귀를 모는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소리. 갈 길을 가면서, 할 일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저 소리. 아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저 소리. 저게 바로 노동요의 원형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가 옛 소리를 살려 내겠노라며 복원하여 가르치고, 배우면서 부르는 소리에선 가끔,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낄 때가 있다. 곡조와 노랫말을 살려내는 일은 쉽지만, 그 곡과 소리가 저절로 튀어 나오게끔 하는 상황과 처지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건가?


아주 자연스러운 소리, 요란하지 않고 수수하고 소박한 저 소리가 내 마음을 이끈다. 흉내 낼 수 없고, 글로 적어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듣기에 좋고, 편안한 저 소리. 저 소리 속에도 남모를 사연이 얽혀 있겠지.



6. 자연과 사람과 문명


아르밧가자르, 리딩, 마차콜라, 뎅, 자갓, 남릉, 사마가온, 삼도, 다람살라(해발 4,600 미터).


라르케패스(해발 5,214 미터)로 올라가면서 밤잠을 잔 곳들. 그 중간 중간 점심을 먹는 곳들에도 한두 채씩의 집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절벽에 가까운 비탈에도 계단식 농토를 만들고,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식구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집은 거의가 오로지 돌만으로 벽을 쌓고, 구들장 같은 돌로 지붕을 이어 놓았다. 어떤 데는 도끼로 자르고 켠 통나무로 지붕을 얹어 놓았다. 부엌과 침실과 거실의 구분은 있는 듯 없는 듯하고, 부엌 바닥에 작은 솥이나 냄비나 주전자 등을 얹기에 알맞은 크기의 화덕이나 아궁이를 만들어 놓았고, 나무로 불을 피위 취사를 한다. 불을 피울 때,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실내는 연기로 자욱하지만 사람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빨간 불꽃이 피어오르고, 어두컴컴한 연기가 코와 눈을 자극하지만, 그곳에서 어린이와 강아지가 엉기어 기고, 뒹굴고, 손으로 밥을 먹는다. 낯선 손이 찾아들어도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응대를 한다.


어떤 집은 사람들이 먹고 자는 집과 소나 염소들의 우리가 죽 이어져 하나처럼 보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일을 하거나 쉬는 사이사이에 소나 염소가 왔다 갔다 하고, 어린 아이와 개가 어울려 노닌다.


1월 8일, 자갓에서 뎅까지 걸어가면서 물레방아를 자주 만난다. 위에서 아래로 돌아가는, 우리 옛 물레방아와는 다르게 이 곳 물레방아는 옆으로 돌아가고 있다. 옆으로 돌아가는 물레방아 바로 위에 우리네 연자방아 같은 돌방아가 맷돌처럼 돌아가면서 곡식을 빻고 있다. 콩, 밀, 기장, 옥수수 등을 섞어 가루로 내어 아침에 물에 타서 먹는다고 한다.


10일 오후, 사마가온 마을 입구에서, 여러 가지 짐을 지고 마을로 들어가는 주민들을 만난다. 서로 통하지도 않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마구 웃는다. 낯선 이들에 대한 어떤 경계도 없이 임의롭게 다가오는 모습이 좋다. 다만, 여인네들은 어른이고 아이고 간에 사진기만 들이대면 얼굴을 돌리고 피한다. 사진을 찍으면 혼이 빠져 나간다고 하여 사진 찍기를 꺼리던 우리네 옛 어른들이 생각난다. 낯선 문명의 도구에 대한 경계인가?


우리들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이나 볼일이 있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때가 되면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다 불을 피우고 밥을 해 먹는다. 밥을 먹고 나면 흐르는 물에 푸성귀를 수세미 삼아 설거지를 한다. 모래나 흙을 세제로 쓰기도 한다. 이들의 식생활에서 자연을 훼손한다든지 오염을 시킨다든지 하는 걸 찾아 볼 수가 없다. 아니, 자연의 일부로서 아주 자연스러울 뿐이다.


이러한 이들의 생활에도 문명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을 본다. 계곡의 물을 이용하여 작은 발전기를 돌리거나 태양열을 이용하여 전기를 쓰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극히 일부이지만, 공장에서 만든 수세미와 세제로 설거지를 한다. 주로 외국에서 오는 트레킹이나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장소에는 음료수나 술이나 과자 등을 갖추어 놓은 작은 상점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이 스며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리라.


사람이 만들어가는 문명도 따지고 보면 커다란 자연 현상의 일부가 아닌가? 다만,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이기심에 사로잡혀 모든 존재의 바탕인 환경을 어지럽히고 섭리를 거스르다가 인간에게 재앙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자연을 보호하자고 외치고 있는 건 아닌가. 고도로 발달해가는 문명생활의 편리함 속에서 무언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낄 때, 원초적인 본연에 대한 그리움이 우러나는 것은 아닌가? 어떻게 보호하고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 것인가? 어떤 걸 보존하고,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 것인가?



7. 마을과 골짜기의 분위기는 티벳 불교


룽다와 타르초는 처음부터 흔하여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그러던 것이 자갓을 지나면서부터인가 구들장 같이 생긴 돌 판에 경전을 새겨 마을 입구를 비롯하여 곳곳에 모아 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마니스톤이라고 했다. 도반을 지나, 뎅, 남릉, 사마가온, 삼도로 오면서는 마니스톤이 긴 벽을 이루고 있다. 마니월이라고 불렀다. 또, 스투파라고 하는 탑이 여기저기 서 있다. 특히, 마을로 들어갈 때에는 어귀에 서있는 스투파를 통과하게끔 되어 있다. 이 때 마니차를 돌리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물레방아를 이용하여 마니차를 돌리는 것도 보인다. 로, 사마가온과 같이 규모가 큰 마을에는 곰파라고 불리는 티벳 불교 사원이 번듯하게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차림새도 확 다르다. 티벳과의 국경이 가까운 곳, 티벳에서 넘어와 정착한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네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마니스톤이나 마니월을 지날 때, 손을 뻗어 경전을 적어 놓은 돌을 만진 다음에 자기 이마나 가슴에 갔다 대면서 주문을 외는지 기도를 하는 지 그 태도가 자못 진지하다. 마니차를 돌릴 때도 마찬가지다. 마니차는 반드시 시계방향으로 돌려야 하고, 마니월은 반드시 그 왼편으로 지나가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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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니차 : 원통형으로 된 마니차에 경전을 적은 책을 넣고 돌리면서 “옴 마니 반메 홈”을 암송하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단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말도 있다.


* 스투파 : 석가모니가 죽은 뒤 화장하여 그 유골을 8 명의 영주가 나누어 각자의 집에 모시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며, 이후 여러 가지 형태의 스투파가 곳곳에 세워졌다. 부처의 마음, 부처의 말씀, 부처의 이미지 등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 옴마니반메홈 : 옴은 우주, 마니는 지혜, 반메는 자비, 홈은 마음을 뜻함. 전체적으로, “우주의 지혜와 자비가 우리의 마음속에 퍼지다.”는 의미.


* 룽다와 타르쵸 : 룽다는 장대에, 타르쵸는 만국기처럼 줄에 매여져 있음. 다섯 가지 색을 가진 천에 경전을 적어 놓았음. 파랑[하늘], 노랑[땅], 빨강[불], 하양[구름], 초록[대양]. “자비로운 존재에 대한 종교적 성찰”, “경문의 내용이 바람을 타고 우주만물에 그 뜻[부처님의 뜻]이 퍼진다.”는 의미를 가짐.



8. 고산병


해발 고도가 올라갈면서 고산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증세도 다양해진다. 셋째 날부터인가 소화불량,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사마가온과 삼도, 다람살라에서는 많은 사람들 얼굴이 퉁퉁 붓는다. 라르케패스를 넘는 동안에는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다가 부축을 받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어떤 사람은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고산지대에서 공기 중의 산소 부족으로 발생하는 병적인 증세를 고산병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보통 ‘고소’라고 불렀다. 설사, 구역질, 머리가 띵하다, 식욕이 없다, 숨이 가쁘다, 어질어질하다 등 고산병 거의 모든 증세가 이번 트레킹에서 우리 일행 누구누구를 통해 모두 나타났다. 커다란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고산병 예방책으로, 씻지 않기, 금주, 금연, 느리게 움직이기, 심호흡 등을 권한다. 비아그라를 비롯한 몇 가지 약물도 있다고 한다. 나는 ‘씻지 마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들어 철저하게 지켰다. 과연 효험이 대단하여 별 고생을 하지 않았다. 역시 지킬 건 지켜야 ‥‥‥?



9. 영혼의 숨결 영혼의 불꽃 ― 모닥불


저녁에 시간도 보내고, 추위도 쫓기 위해 모닥불을 피운다. 모닥불 가에선 이야기꽃이 피거나 노랫가락이 흐른다.


사마가온! 그 춥던 날, 냉장고 같은 텐트에 들어가기가 싫어 늦게까지 불을 피웠다. 나뭇가지 하나 남기지 않고 태우면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일상을 바라보듯 이야기한다. 낮에 걷던 이야기, 지금 떨고 있는 이야기 들을 주고받는다. 아! 혹독한 추위 속에 따뜻했던 불도 좋고, 구운 감자도 좋고, 술도 좋고, 이야기도 좋다. 수를 놓은 듯, 갈수록 또렷해지고 많아지는 별, 어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 차가운 공기를 밀어내는 불기운에 따스하게 상기되는 두 볼, 주고받는 언어의 벽을 넘어 오가는 마음과 마음의 흐름. 지독하게 추웠던 만큼 한없이, 한없이 좋았던 사마가온의 모닥불이여!


이번 트레킹의 절정인 라르케패스를 넘어온 감격이 불꽃에 아롱지던 빙탕!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이야기 속에 번득이는 경륜이 이어진다. 장갑 속에 있는 손이 시려 떨어져 나가는 듯하고, 바람에 몸이 날려갈 것 같던 히말라야의 긴 고갯길, 하늘의 햇볕과 하얀 눈에 반사되는 햇볕이 모두의 얼굴을 검게 그을리던 라르케패스, 그 고개를 넘어온 감격을 되살려 태우던 빙탕의 모닥불이여! 무거운 짐을 지고 그 험한 고개를 넘어 온 포터들과 줄기차게 걷고 또 걷는 사람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우리 민요 한 곡조를 조용하게 불러 본다. 옆에서 도와 부른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있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마나슬루라는 말은 ‘영혼이 머무는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단다. 만년설 하얀 빛깔 속에 깃들여 있는 영혼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구름을 만들어내는 건지 구름 속에 자주 싸이는 봉우리 ― 마나슬루. 히말라야의 한 고갯길, 라르케패스를 넘기 전, 가혹하게 추웠던 사마가온에서의 모닥불을 영혼의 숨결로 기억한다. 고생, 고생 라르케패스를 넘고 나서 빙탕에서 피운 모닥불을 영혼의 불꽃으로 기억한다.


도반에서 점심을 먹고 뎅으로 향할 때, 긴 폭포수에 걸렸던 무지개와 다람살라 못미처에서 본, 마나술루 흰 봉우리 위 흰 구름에 서렸던 무지개는 영혼의 미소였던가?



10. 아름다운 초저녁 황홀한 배설


검은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초승반달이 훤하게 떠 있다. 가까운 사방은 검은 산에 갇혀 어둡고, 어둠 사이사이에 달빛과 별빛이 섞여 비친다. 검은 산 위 멀리엔 하얀 설산이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난다. 라르케패스를 넘어와 야영을 하고 있는 빙탕, 분지와도 같은 작은 벌판. 산 쪽으로 가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곳. 어둠과 달빛과 별빛과 먼 설산의 흰빛이 있고,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는 작은 벌판에 앉아 큰 볼일을 본다. 아! 이럴 수가‥‥‥. 시원하다, 흐뭇하다, 황홀하다! 해발 3,600 미터, 히말라야 기슭에 만들어진 멋들어진 작은 벌판에 앉아서 쑥쑥 뽑아내는 이 맛! 부드럽게 나온다. 시원시원하다. 길게 뽑아내고 난 뒷맛이 흐뭇하고 속이 편안하다.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고개를 넘기 전, 엊저녁 다람살라에서 신호가 왔었다. 춥기도 하고 어쩐지 어설프기도 해서 핑계를 지어내어 참았다. 뱃속에 놓아둔 상태로 히말라야 산맥을 넘자고, 고개를 넘은 다음에 편안하게 모시자고. 그래 지금 이렇게 잘 모시고 있다. 이 아름다운 초저녁에,



11. 그윽한 전나무 숲길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고개 중의 하나, 해발 52,14 미터. 라르케패스를 무사히 그러나 고생스럽게 넘긴 사람들의 얼굴에 여유와 홀가분한 빛이 역력하고, 가슴속 뿌듯함이 애써 감춰지지 않는다. 흙과 돌과 바위덩이에 덮여 있는 커다란 빙하도 굳이 숨으려 하지 않는다. 포터들은 그간 짐을 담아 지고 온 독고 몇 개를 모닥불에 태운다. 15일 아침 빙탕에서.


15일 아침 빙탕 ― 16일 아침 틸리체 ― 따라빠니 ― 탈 ― 16일 저녁 자가트― 17일 낮 불불레(숙박)


발걸음이 가볍다. 어쩌다 오르막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줄곧 내려가는 길이다. 작은 개울을 건너고, 나무로 된 다리도 건너고.


― 그윽한 전나무 숲이 좋다. 두서너 아름, 저건 너덧, 아니면 대여섯 아름? 큼직큼직한 나무들이 죽죽 뻗어 있다. 숲이 뜸하면 마나슬루 봉우리가 깨끗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하얀 설산이 뚜렷하고 하늘은 파랗다. 이따금 팥알만한 빨간 열매를 꽃처럼 달고 있는 나무들도 떼 지어 나타난다. 여기저기엔 시커먼 바위산이 쌀가루를 뒤집어쓴 듯 서 있고, 그침 없이 흘러가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홀가분한 발걸음, 타박타박 나그네. ― 15일 아침  나절이다.



12. 럭시원정대의 사연


네팔 전통 술로 치는 것이 창과 퉁바와 럭시다. 창은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한 것으로 15일, 틸리체에서 처음으로 맛을 볼 수 있었고, 퉁바는 발효시킨 기장을 통에다 담아 뜨거운 물을 붓고, 빨대를 꽂아 빨아먹는 독특한 술로 카트만두에서 먹어봤다. 럭시는 창이나 퉁바를 증류시켜 만든 것으로 네팔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술이다. 또한, 네팔에서 모든 술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대부분 물을 탄 것들이기에 알코올 농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맛도 제 맛이 아니다. 그런데도 줄기차게들 찾는다.


여행에서 객고를 푸는 방법으로 술만 한 게 있으랴! 고산병 예방을 위해 가급적 음주를 삼가라고 했지만, 한두 잔은 어쩔 수가 없다. 다만, 조심하는 마음만은 변치 않으면서.


1월 5일 밤엔 리딩 언덕에서 야영을 한다. 건너편 산허리에 길게 떨어지는 폭포가 술을 부른다. 천막 옆 개울물에 손발을 씻고, 가파른 계단식 논두렁에 앉아 한국에서 가지고 온 플라스틱 소주병을 딴다. 캬~! 저 건너 폭포수를 바라보며 잔을 기울이니 시원하고 산뜻한 기운이 입 안에서부터 온몸으로 번진다. 조금 더 내려와 민가 작은 상점을 찾아 럭시를 한잔씩 한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 주인댁 딸이 영어를 제법 한다, 최랑과 꽤 구체적이고 격식 있는 대화까지 나누고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문하였더니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는지 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와 우리를 둘러선다. 네팔 민요 레샨삐리리 몇 구절을 부르니 모두들 합창을 하고 춤을 춘다. 노인 한 분과 몇몇 아이들과 청년 몇은 신명이 보통이 아니다. 털끝만치의 가식이나 부자연스러움이 없는 소리와 동작이다. 세상에 저들만큼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신명 많은 종족이 또 있을까? 또 다른 네팔 민요가 저들의 입에서 나와 몸을 흔들어 대고, 우린 응답으로 아리랑을 불러 주고, 가르쳐 준다. 이게 럭시원정대란 이름을 얻게 되는 첫 사건이 된 셈이다.


6일 점심을 먹은 도반엔 민가가 두서넛 된다. 맨 윗집으로 슬그머니 들어서니 주인 내외가 부엌바닥으로 안내한다. 럭시를 만들어 놓고 낯 선 이방인들을 상대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필림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주인댁 아들이 휴일을 맞아 집에 와 있다. 우리는 그 덕분에 닭고기볶음 몇 조각을 덤으로 얻어먹고, 오늘 내일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얻는다. 입을 싹 닦고 내려와 일행들 틈에 끼어 점심으로 라면을 먹는다.


7일 저녁엔 자갓에서 야영을 한다. 동시에 도착한 최랑과 강가에서 소주 한잔을 먼저 한다. 역시 입을 싹 닦고, 천막 주변에서 이리저리 어울린다. 눈치 있는 몇 사람이 싱긋 웃어준다.


8일 저녁에 야영을 한 뎅. 대여섯 될까 하는 민가 중 뒤쪽에 있는 집을 용케 찾아든다. 부엌 겸 살림 공간은 어두컴컴하여 한참만에야 살림살이들을 분간한다. 그 집에도 역시 럭시가 있다. 주인댁이 저녁밥을 짓기 위해 피우는 화덕 불빛에 의지하여 럭시를 한잔씩 한다. 어린 아기가 강아지와 함께 이리저리 기어 다니다가 가끔씩 뒤척이는 우리 몸에 부딪친다. 여기선 럭시를 주전자에 담아 불에 데워서 내 놓는다. 우리네 정종마냥.


9일 저녁 남릉에선 럭시 대신 중국에서 수입했다는 고량주를 마신다. 말린 야크고기를 요리한 안주를 곁들여서 몇 잔을 거푸 한다. 제법 춥고 긴 밤을 견디는데 분명 도움이 됐으리라.


자갓에서부터 뎅, 남릉을 거쳐 10일 저녁 사마가온으로 이어지는 길은 더더욱 오지인 분위기이다. 티벳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다고 가이드 핀조가 말한다. 나마스테! 하는 네팔 인사말 말고 따시델라! 하는 티벳 인사말을 하나 더 배운다. 사마가온은 제법 큰 마을이다. 아마 면소재지쯤 될 거라고 역시 핀조가 말한다. 저녁 어둠 속에 몇 집 문을 두드리나 럭시는 없단다. 뜻밖이라 여기면서도 럭시 사냥을 그치지 않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가? 포터들이 잠자리를 얻어 묵는 집을 만나니 그곳에 럭시가 있다. 이것 말고도 사마가온에선 이틀을 추운 텐트에서 묵으면서 네팔위스키와 소주 등을 마신다. 차가운 별빛과 함께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12일 저녁 삼도에도 민가가 제법 많다. 저녁 식사 전에, 은밀하게 한 집을 찾아냈다. 럭시 한잔씩을 넘기면서, 식사 후 초저녁 시간을 예약해 놓는다. 저녁을 먹고 잠깐 쉰 다음에 다시 와선 럭시 대신 중국산 배갈을 마신다. 역시 부엌과 침실과 살림 공간이 한 통으로 되어 있는, 나무 타는 연기가 자욱한 방 안 땅바닥에 둘러앉아서 염소 스쿠티 요리를 안주로 씹는다. 스쿠티는 네팔 사람들이 염소나 소, 야크 등의 고기를 화덕 위 천장에 매달아 연기를 쐬며 말려 둔 고기를 말한다.


이미 럭시원정대, 럭시원정대장이란 말은 인사말 되었다. 그저 웃으면서, 싱거운 농으로 받아넘길 뿐이다. 허나, 그게 탈이 되어 전체 일정에 폐가 되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는 한 가지 생각만은 철저히 지키고, 마음속 암시를 되풀이하는 노력에 소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라르케패스를 목전에 둔 다람살라에선 잊기로 했다. 물론 원정할 대상도 없었지만, 카고 속에 남아 있을 소주도 생각 않기로 한다. 전원이 5,200여 미터 라르케패스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기를 오로지 기원하면서. 하늘엔 별들이 말없이 반짝인다.



13. 희비와 애증을 한 방에


스무날 동안 복작이며 걷는 동안 큰 소리로 떠들면서 함께 웃는 소리는 분명 한 마음이었다. 거의를 수용하고 인정하고 격려하는 마음씀씀이들에서 서로가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 허나, 둘만 모여도 다른 얼굴, 다른 성격인데, 스물일곱임에랴. 때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일들도 있었으리라. 아주 작은 한 마디 말이 커다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게 세상 이치라면 남모를 맘고생을 안고 걷는 경우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패스를 넘고 내려오는 길은 아무리 말을 해도, 누구나 홀가분해 보인다. 고생하며 넘어오는 동안 그 만큼 속이 넓어지고 찌꺼기들이 거센 바람에 날려 간 탓이리라.


그 홀가분한 기분, 패스를 넘은 감격의 여운이 내려오는 나날 밤에 노랫가락으로 되살아난다. 모닥불 가에서 텐트 안에서, 롯지에서 한 목소리로 불러대는 신명나는 소리에서 그간 쌓였던 앙금들이 한방에 날아가는 것을 본다.


스물여섯 대원 여러분! 사랑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혹, 저 때문에 불편한 게 있었다면 용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14. 포카라에서 1월달 비를 맞다


1월 18일 포카라에 왔다. 어제 17일 낮, 불불레에서, 열사흘 동안의 트레킹을 끝내고, 오늘 오전 내내 버스를 타고 왔다. 2년 전에 왔었던 곳인지라 마음속에 여유가 생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넷이 짝이 되어 택시를 타고 재래시장을 찾았다. 만바자르 시장. 활기가 넘친다. 네팔 제2의 도시답게 북적인다. 여러 가지 과일, 생활용품 들을 파는 노점상들 사이, 사람 물결 사이를 거닐다가 기념품으로 암염을 산다. 한 식당에 들러 지금까지 못 먹어 본 네팔음식 ― 촐라바투라, 마살라도사, 져민을 시켜먹고, 폐화호 근처, 숙소가 있는 곳으로 다시 택시를 탄다.


아무래도 한잔 하는 게 정석이다. 좀 색다른 걸 찾아 헤매다가 중국음식점으로 들어선다. 팔보채와 오리요리, 또 다른 요리를 차례로 시키면서 배갈 큰 병 둘을 넷이서 먹으니 기분 좋게 취한다. 오랜 동안 산속 트레킹을 끝내고 도회지로 나와 거니는 기분이 홀가분하고 좋을 수밖에 없다. 가볍게 한잔 더 하고 거리로 나오는데 비가 내린다. 건기와 우기의 구분이 뚜렷한 네팔에서 건기인 지금, 예사로운 비가 아니다. 더구나 라르케패스를 넘어 빙탕에서 자고 틸리체로 내려올 때, 엉뚱하게도, 비를 맞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기분이 붕붕 뜨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흥얼거려 본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 포카라에 내려와 거니는 나에게 마나슬루가 내미는 이별의 악수인가?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사랑하는 가족들, 고마운 사람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순수한 영혼을 간직하고 있는 마음들. 투두둑 투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몸속으로 스민다. 먼저 들어와 흐르고 있는 술과 어울려 섞인다. 내 작은 마음을 싣고 흐른다. 이게 행복인가? 즐거움인가? 한없이, 한없이 좋다. 아, 산속에서 내려온 나의 몸과 마음을 적셔 주는 비, 포카라의 비여! 잠깐 내렸지만, 커다란 축복이다.



15. 학교 방문


11일 오후에 사마가온에서 초등학교를 방문했고, 21일 오후에 카투만두 근교에 있는 바니빌라스 학교를 방문했다. 학용품과 옷을 전달하고 아이들과 함께 그림 그리기 수업을 하고, 제기차기, 풍선 터뜨리기 등 게임도 하였다. 컴퓨터와 현미경, 녹음기도 전달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라지만, 기꺼이 실천하고 진정어린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답다. 보다 나은 방법으로 봉사하고자 고민하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실천하려 노력하고, 보다 순수한 의지를 지켜나가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16.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19일 저녁에 다시 카트만두에 왔다. 이틀 저녁을 호텔에 묵으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20일 오전엔 여섯이 짝을 이루어 박타풀엘 다녀왔고, 나머지 시간에는 탐멜거리, 재래시장을 수없이 오가면서 네팔사람들의 생활에 푹 빠져 본다.


박타풀[박타푸르]은 카트만두, 파탄과 함께 고대 말라왕조의 세 왕국 중 하나였으며, 18세기 초에 지어진 목조 건물들이 화재 한 번 안 나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작은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고, 왕궁과 주변 건축물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목조 건물에 새겨진 기기묘묘한 문양들이 인상적이었고, 국립 예술관[National Art Gallery]에는 여러 종류의 만다라가 주를 이루면서 몇 가지 다른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옛날의 그 건물 그 거리에서 지금도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으며, 골목마다 상점이 즐비하다.


탐멜거리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상인들은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손님을 부르고, 물건을 소개하고, 흥정을 하고, ‥‥‥. 재미있는 것은, 물건 값을 물으면 터무니없이 높게 불러 놓고, 비싸다고 하면 바로, 얼마면 좋겠냐고 되묻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처음 부른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재래시장에도 활기가 넘친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자주 불이 나가지만, 촛불이나 남포등을 밝혀 놓고 정해진 시간까지 장사를 한다. 여유가 있는 상점에선 발전기를 이용하여 전등을 켜고 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범벅되어 넘실대는 카트만두, 신호등이 몇 있긴 하지만,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도로를 횡단하는 사람들, 자동차나 사람이나 양보 없이 먼저 들이대는 쪽이 우선권이 있는 교통질서, 여전히 뿌연 하늘, 쓰레기가 넘쳐나는 거리. 아무도 불편해 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아무도 급히 서두르지 않는다. 그저 자기 할 일을 하고, 남을 간섭하지 않는다. 카트만두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면서 네팔과 네팔 사람들, 카트만두와 카트만두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한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트레킹 뒤풀이의 흥이 이어지는 것인가, 간간이 마셔 댄 술기운이 움직이는 것인가? 알 길 없는 네팔이여, 카트만두여, 나그네 발길이여!

 

 

<전체 일정/2008년 1월> ----------------------------------------------------

 


2일  11:00 인천공항 출발 - 중국 광주.

     광주에서 카트만두로 가다가 기체 결함으로 광주로 회항하여 숙박

3일  10:00 쯤 광주공항 출발, 카트만두 도착하여 치킨 치즐러로 점심 식사.

4일  카트만두서 버스로 아르밧가자르 로 이동하여 야영


5일  [트레킹 시작] 아르밧가자르 - 아르켓바자르 - 소티콜라 - 리딩

6일  리딩 - 라푸베시 - 마차콜라 (* 따또바니 / 49제 축제 구경)

7일  마차콜라 - 도반 - 자갓

8일  자갓 - 에크레바티(구명가게에서 맥주 한 잔) - 필림 - 춤쳇 - 뎅

9일  뎅 - 프록부리지 - 남릉

10일  남릉 - 로 - 사마가온(냉장고 텐트)

11일  사마가온에서 휴식과 학교 방문(* 오전에 앞산 등반 / 5 명 )

12일  사마가온 - 삼도

13일  삼도 - 다람살라

14일  다람살라(해발 4,600 미터)-라르케패스(해발 5,214 미터)-빙탕(해발 3,600 미터)

15일  빙탕 - 카르체 - 틸리체

16일  틸리체 - 따라빠니 - 탈 - 자갓

17일  자갓 - 바흐단디 - 불불레 [트레킹 끝]


18일  불불레 - 포카라 [버스로 이동] 포카라 자유 관광(*재래시장)

19일  포카라 - 카트만두 [버스]

20일  자유 관광(*박타풀/탑멜거리)

21일  휴식/자유 관광/학교 방문

      밤 11:00 카트만두 공항 출발

22일  12:15 인천공항 도착

      버스(15:30) - 충주(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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