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다

2008. 2. 27. 11:19중국러시아몽골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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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베리아횡단열차


“어느 별에서 왔는고?”

“지구에서 왔나이다.”

“아, 그래? 그럼, 시베리아횡단열차는 타 봤는고?”

“아, 아니요.”

“에잉~? 앞으로 누가 묻거든 지구에서 왔다는 소리는 하지 말지어다.”


어떤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을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란다.


2007년 8월 1일 오후, 동시베리아의 중심도시 이르크츠크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오른다. 모스크바까지 5,185Km 87 시간 반. 8월 5일 새벽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낮 동안 모스크바 시내를 관광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기 위해 다시 열차에 오른다. 650Km 7시간 40분. 8월 6일 낮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 관광을 하고, 다시 모스크바까지 열차를 탄다. 8시간.


이르크츠크, 크리스노마르스크, 이진스크, 타이가, 지마, 노보시리스크, 옴스크, 튜멘, 예카테린부르크, 폐름, 글라포프, 이제프르스크, 카잔, 쿠랄, ‥‥‥, 모스크바.


5~30분 동안씩 정차하는 역 이름들. 제대로 발음하기가 어려운 러시아 말. 혀가 이리저리 고생을 하지만 정확하게 흉내 내기가 어렵다. 우리말로 옮겨 적은 것들도 정확한 표기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길게 정차하는 역에선 열차에서 잠깐 내려 바람을 쐰다. 찐 감자, 빵, 삶은 달걀, 과일, 맥주, 보드카, 기념품 등을 살 수 있고,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2. 끊임없이 펼쳐지는 평원


도대체 시베리아에는 산이 없다. 먼 지평선까지 허허벌판이다. 여름철 벌판은 푸른 초원이고 푸른 숲이다. 이름모를 들꽃들이 한철을 살아가고 있으며, 넓디넓은 밀밭도 있다. 늪지대도 있고, 폭 넓게 흐르는 강도 있다. 크고 작은 물가에는 버드나무가 숲을 이룬다. 아! 저기 노랗게 펼쳐지는 저건 어마어마한 해바라기 밭이 아닌가? 한도 끝도 없는 망망한 대평원! 간혹, 낮고 길게 이어지는 언덕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먼 하늘과 만나기도 한다. 돋아오는 햇발은 힘차게 뻗치고, 노을은 붉게 물든다. 바람도 줄기줄기 지나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고, 안개가 느릿느릿 흐르기도 한다. 하늘은 푸른빛이고, 구름은 모양과 색깔을 제멋대로 한다. 귀로만 듣던 자작나무숲은 사라지기가 무섭게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난다. 소나무 숲도 심심찮게 보이고, 마가목 붉은 열매는 푸른 잎 사이사이에서 방긋방긋 인사를 한다.


목재로 지은 농가 마을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감자밭이 딸려 있다. 감자 밭에는 하얀 감자 꽃이 피어 있고, 해바라기가 우리네 고추밭에 옥수수 심기듯 군데군데 노란 얼굴을 하고 서 있다. 통나무를 켜고 엮어서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나무로 집을 짓고, 마당 대신 채소밭을 가꾸고, 감자밭을 일궈 놓은 저것들이 ‘다차’란다. 소비에트 시절에, 갓 결혼한 부부들에게 집과 땅을 주어 농사를 짓게 했던 것인데, 지금은 주말 농장 또는 별장이 되어 여름철과 겨울철 휴양 장소가 되고 있단다.


철도가 생긴 후 들어선 도시들엔 거대한 건물들이 있고, 공장이 있고, 번화한 곳엔 자동차 행렬이 이어진다. 조그마한 마을이나 도시의 오래된 집들은 거의가 나무로 되어 있는데, 새로 들어서는 건물들은 콘크리트로 지은 것들이 많다.



3. 몸짓으로 말하고 눈치로 알아듣는다.


네 명이 함께 쓰는 ‘꾸페’ 안에는 의자 겸 침대가 넷이 있는데, 둘은 아래에, 둘은 위에 있다. 2층으로 된 것이다. 하나의 바곤(Wagon)에는 9 개의 꾸페가 있다. 1 개는 차장 2 명이 함께 쓰고, 8 개의 꾸페에 32 명의 승객이 타고 간다. 바곤 양 끝에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에는 수도가 하나씩 있다. 수도는 밑에서 위로 눌어야 물이 나오고, 물받이에는 물을 막아 고이게 하는 마개가 없어 불편하다. 바곤은 복도식 아파트처럼 되어 있다. 하나의 열차에 바곤이 15 개에서 30 개 정도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탄 열차는 15 개인가 16 개인가로 되어있다.


때가 되면 먹는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컵라면, 햇반 등으로 끼니를 때운다. 뜨거운 물은 바곤마다 한 군데, 차장실 앞에서 항상 끓고 있다. 반찬은 고추장, 깻잎, 포장 김치 정도. 정차하는 역에서 빵도 사 먹는다. 우리식 컵라면은 열차 안에서도 구입을 할 수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의 제품으로 겉봉에 한글표기도 있다. 열차 중간에 있는 식당도 이용해 본다. 더 중요한 건 저녁 때 보드카를 한 잔씩 하는 것. 맥주 맛도 괜찮다. 여름철, 위도가 높아질수록 어둔 밤의 길이는 줄어든다. 밝은 낮의 길이가 17 시간 정도 되던가? 6~7월 동안엔 백야(白夜)라고. 지금은 8월.


열차 안에는 거의가 러시아 사람들이다. 러시아말은 알파벳부터 영어와 많이 다르다. 영어의 H는 러시아어에서 N, N은 I, C는 S, ‥‥‥. 영어에 없는 알파벳도 몇 있고, 발음도 까다로워 따라하기가 아주 힘들다. 반면에 영어를 할 줄 아는 러시아 사람들은 만나기가 어렵다. 최랑의 영어도 그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다행이 같은 바곤 안에 영어를 할 줄 아는, 레나라는 러시아 대학생이 있어 많은 도움을 받는다. 레나와 최랑의 영어가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연결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개별적으로는 몸짓과 손짓과 표정으로 짐작하고, 알아차리고, 웃음으로 확인한다. 임랑은 열심히 여행러시아어 책자를 뒤적이며 여러 대화를 시도한다. 덕분에 간단한 러시아 말을 몇 개 배우지만 돌아서면 또 묻고, 또 묻는다. 우리 꾸페에 함께 타고 있는 러시아 여성은 이름이 리에나이고 초등학교 선생님, 모스크바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간단다. 레나는 대학 입학 기념으로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는 중이고, 그들과 같은 꾸페에 타고 있는 루다는 컴퓨터 엔지니어링이 직업이란다. 말 때문에 난리를 떨다 보니 리에나와 레나 일행은 똑같이 치타역에서부터 타고 왔다는 게 밝혀졌고, 그들은 자주 왕래하면서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3. 밤중에 우랄산맥을 넘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분수령 우랄산맥. 횡단열차가 넘어가는 지점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말한다, 해발 400미터 정도라고. 산맥을 통과하는 열차 안에서 어김없이 보드카 잔을 든다. 지난 해 여름 어느 달밤, 관음리에서 미륵리로 넘는 하늘재에서 들었던 소주잔을 떠올리면서. “캬~!” 그리고 객쩍게 떠들어 본다. “지금 열차로 넘는 우랄 산맥, 언젠가 걸어서 넘어보자.”



4. 덜커덩거리는 천국열차


횡단열차는 꽤나 덜커덩거린다. 소음이 심하고 흔들거림이 심하다. 일행 중 몇몇은 지루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다고 투덜댄다. 그러나 처음부터 ‘오랜 시간, 긴 거리 열차’에 매력을 두고, 시베리아 너른 벌판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은 아예 싹도 없다. 오히려 평화스러움을 만끽한다. 일상에서 멀리 떠나 있고, 그리고 그리던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고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나는 지금 시베리아라는 천국을 달리고 있다. 좌~악 펼쳐지는 평원과 초원과 자작나무숲은 하늘나라의 정원이고, 유난히 덜커덩거리는 소음은 하늘나라의 음악이고, 마구 흔들거리는 것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려는 하느님의 베푸심이다. 근심과 걱정이 없는 세상, 즐거움과 평화스러움이 넘치는 세상, 곧 천국이요 하늘나라가 아닌가? 시베리아횡단열차는 하늘나라열차이다.



5. 여행이라는 길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목적과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함께 패를 이루기도 하고, 혼자 가기도 하고, 여럿이 가면서 혼자만의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각자가 추구하고,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들을 서로 나누는 재미도 있다. 이 열차가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나면 사람들은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흩어져서 각자의 길을 갈 것이고, 또 다른 만남 또 다른 헤어짐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길. 여행이란 그렇게 길을 가는 것. 인생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시베리아에 너른 벌판이 있다고 해서 왔다. 길고 긴 철도가 있다고 해서 왔다. 왔더니 정말로 벌판이 있고, 철도가 있더라.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 끝없이 달리는 열차 안에서 끝없는 하늘을 바라본다.



<시베리아횡단열차>

☞ 동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 모스크바까지 9,288Km

☞ 지구 둘레 1/4 육박 59 개 역이 있고, 시간대 7 번 바뀜.

☞ 군사 경제적 이유와 부동항 연결, 시베리아 모피 등 특산물 조달할 목적으로 건설.

☞ 1891 시베리아 철도위원회 설립

☞ 1903 첼리야빈스크-블라디보스토크 연결

☞ 1916 완공(25년). 철도 주변에 대도시 건설되고 도서관, 극장 등이 들어서면서 문화대변혁이 일어남.

☞ 룩소 2인 1실 / 꾸페 4인 1실 / 쁘리치까르타 6인 1실 / 시드 6인실(지정석 없음)

☞ 시속 70~80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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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블라디보스토크


7월 30일,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으로 갔다. 불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프리모르스키주]의 중심도시. 이르크츠크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버스를 타고 샤마라해수욕장으로 간다. 길가에 노선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우리 시골 옛 풍경 그대로이고, 꽃과 감자, 채소 무더기를 차려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도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가 타고 가는 차 안 앞쪽에 “금연”이라고 쓴 글씨가 있고, 길가 중고차 시장에 “자동문”, “○○통운” 등 한글을 달고 있는 차들이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니는 승용차는 대부분 일제 중고차이고, 승합차나 버스는 거의가 한국에서 중고를 수입한다고 한다. 처음으로 먹는 러시아 음식 ‘샤슬릭’은 돼지고기를 독특한 양념에 재워 훈제한 것으로 맛이 좋다. 8월 9일, 돌아오는 길에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해물탕을 먹고, 전망대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내려다본다.



7. 지구의 자궁 바이칼


7월 31일, 이츠크츠크 교외, 앙가라강 가에 있는 욜라츠카[통나무집]에서 눈을 뜬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는 숲은 시원시원하다. 산책길에, 무엇인가를 줍는 아주머니를 만난다. “무엇인가요?” 우리말로 묻고, 손짓과 표정으로 묻는다. “르므스키” “예?” 손바닥을 펼치면서, “르므스키”. ‥‥‥. “르-므-스-키” ‘옳거니, 버섯을 러시아말로 르므스키라고 하는구나.’ 했는데, 우리가 싸리버섯, 능이버섯 하는 식으로 르므스키라는 버섯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첫 대면하는 앙가라강은 바다처럼 넓고 크다. 가득하게 흐르는 강물에서 깊은 힘을 느낀다. 바이칼호수에서 흘러나오는 강이다.


시베리아 한 복판,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는 바이칼호수는 지구 위에서 가장 큰 담수호이다. 세계 담수호 수량의 20%를 차지하며, 그 양은 북미 대륙에 있는 오대호 수량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다고 한다. 길이 636Km, 최대 너비 79Km, 호안선 총 길이 약 2,200Km, 면적 31,500Km2, 최대 수심 1742Km, 저수량 22,000Km2.


까마득하게 먼 옛날에, 바이칼호수 지역에 12 개 연방으로 된 환국(桓國)이 3,301년 동안 번성했다. 환국 말기에 날씨가 추워지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인구 이동이 있었다. 서쪽으로 간 슈메르인, 동쪽으로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를 지나간 아메리칸 인디언, 남쪽으로 내려와 부여―고구려(백제, 신라)―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한민족(韓民族) 등.


배할, 배달, 붉은, 안, 불간, ‥‥‥. ‘배달민족’ ‘배달’의 어원을 이야기 할 때, 나오는 말들이 모두 ‘바이칼’의 발음에서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바이칼은 우리 민족뿐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발원지이며, 세계 각 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민족들의 발상지인 것이다.[*바이칼=바이(아름답다, 넉넉하다)+칼(호수, 하천)]


바이칼호수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지구 곳곳으로, 여러 민족으로 갈라졌다는 얘기다. 슈메르, 훈족(흉노), 돌궐(투르크), 위그르, 거란, 몽골, 인디언, 한민족, ‥‥‥. 지금도 1,8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중 75%는 바이칼에만 있는 종들이라고 한다. 바이칼은 ‘시베리아의 자궁’을 넘어 ‘지구의 자궁’이다.



8. 바냐 그느므스키 앙가라강


오전에 넓은 숲 속 여기 저기 노천에 또는 목조 건물 안에 옛 생활도구들을 전시해 놓은 리스비안카 박물관을 둘러보고, 오후에 바이칼호수로 간다.


재래시장에 들러서, 바이칼호수에서 잡히는 오믈이라는 생선 훈제와 보드카, 맥주를 산다. 그리고 바이칼호수 유람선을 탄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씨, 유람선 천막 안에서 한 바탕 주연이라! 빗물처럼 번지는 가슴속 그 무엇을 어떻게 말로 하며, 누가 알 수 있으랴. 배는 한참을 달리다가 호숫가에서 잠시 쉰다. 내려서, 호수 옆을 끼고 가는 철길을 걸어본다. 내일 저녁에 횡단열차를 탈 터인데, 바이칼호수 옆 철길을 두 발로 걷는 감회가 보슬비에 젖는다.


저녁을 먹기 전에 앙가라 강가에서, ‘바냐’라는 러시아식 사우나를 한다. 옷을 벗고 흰 천으로 몸을 감은 다음, 잎이 붙어있는 자작나무 가지 묶음에 물을 축여 몸을 적신다. 통나무로 만든 바가지에 물을 떠서 벽장같이 생긴 곳에서 달구어진 돌무더기에 뿌린다. 뿜어져 나오는 증기에 온몸을 쐬어 땀을 낸다. 마지막으로 앙가라강에 뛰어들어 몸을 식힌다.


아뿔싸! “아빠, 너무 덤벙거리지 마세요.” 집을 떠나올 때 이런 말을 들었건만, 돌무더기에 물을 뿌릴 때, 기어코 덤벙거리니 왼쪽 어깨에 화상을 입는다. 앙가라강 찬물에 한참을 잠겨 보고, 가이드 베라가 갖다 주는 약도 바르고 하나 당분간은 훈장을 달고 다닐 수밖에. 천성이라는 건가?


저녁을 먹는 식당 주인의 너스레가 일품이다. 베라가 통역을 한다. “나의 집을 방문해 주신 손님 여러분에게 내가 직접 담근 보드카를 대접하겠다.” “우리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다” “고맙다, 멋있다.” 칭찬하는 말로 응대를 하니, 분위기가 고조된다. “다같이 원샷!” “원샷!” ‥‥‥. 덕분에 원 없이 취한다. 그느므스키(?)는 이어서 앙가라강의 전설을 이야기한다.


― 바이칼 노인에게 앙가라라는 딸이 있었다. 앙가라는 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니세이라는 청년에게 반하여 시집을 간다. 성난 노인은 도망가는 앙가라에게 돌을 던진다. 그 바위가 바이칼호수에 있는 샤먼바위인데, 예전 사람들이 죄인을 잡아 이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가 이튿날까지 죽지 않으면 풀어주었다.


앙가라강은 바이칼호에서 흘러나가는 유일한 강으로 예니세이강에 합쳐진다.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예니세이강은 시베리아를 동서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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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배지에서 예술의 꽃을 피우다[이르크츠크 발콘스키의 집]


8월 1일, 저녁 때 횡단열차를 타기로 하고, 낮 동안 이르크츠크 시내를 둘러본다. 발콘스키의 집, 즈나민스카이야 성당, 재래시장, 이르크츠크 주 청사 앞에 있는 ‘꺼지지 않는 불’, 레닌동상, 고풍스런 여러 성당들, 알렉산드르 3세 공원, 백화점, 슈퍼마켓 등등.


1812년, 나롤레옹 군대는 모스크바까지 쳐들어왔으나 추위와 배고픔과 전염병에 시달리게 된다. 러시아 정규군은 나폴레옹 군대를 뒤쫓아 프랑스 파리를 점령한다. 젊은 장교들은 서유럽의 발달된 경제와 문화, 자유를 맛보고 층격을 받는다. 러시아로 돌라온 이들은 러시아 정치체제를 개혁하고자 한다. 입헌군주제와 농노해방 등을 목표로 한 혁명은 1825년 12월 14일, 니콜라이 1세 즉위식을 거사 날짜로 잡는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한다. 그리하여 주동자 5 명은 사형, 나머지는 시베리아로 유배된다. 12월을 러시아말로 ‘데카브리’라고 하며, 12월에 봉기한 이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한다. 이 때 러시아의 수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의 특권과 보장된 입신출세를 버리고 인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 데카브리스트, 귀족신분과 재산을 포기하고, 고향을 포기하고, 우랄산맥을 넘는 험한 길, 혹한의 유형지 시베리아까지 따라온 11 명의 부인들. 데카브리스트 중 하나인 발콘스키의 집은 이르크츠크 인텔리들이 모여서 시낭송, 정치토론, 연극, 음악회를 하는 등 학문과 문화, 예술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르크츠크 지역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덕분에 이르크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또, 1825년 당시 그들의 실패는 100년 후 공산 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대의 실현을 위한 혁명에 실패하였으나, 유배된 땅에서 고통과 좌절의 한을 극복하고, 문화와 예술을 가꾸고,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일구어 아름다운 도시의 기틀을 마련한 데카브리스트. 그들의 본거지가 되었다는 발콘스키의 집 박물관에서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를 생각한다.



10. 새벽에 도착하여 저녁에 또 열차를


8월 5일 새벽 4시 모스크바. 열차에서 내려 사우나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칼로멘코야 공원을 산책한다. 예수승천성당, 재래시장, 모스크바국립대학, 전승기념관, 붉은광장, 레닌묘, 둠백화점, 예수구원성당, 대형 할인마트 등을 둘러보고, 저녁을 먹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를 탄다.



11. 물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8월 6일 이른 아침, 새벽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한다. 제정 러시아 때,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대제의 이름을 따서 ‘페테르부르크’, 1914년 독일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페트로그라드’로 개칭, 1924년 레닌이 죽자 스탈린이 레닌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을 붙였고, 1991년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았으며, ‘페테르부르크’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1918년 레닌이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겨가기 전까지 200여 년 동안 러시아의 중심도시였고, 현재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네바강 하구에 있는 101 개의 섬과 강 양안에 계획적으로 건설되었다. 네바강과 지류들, 운하를 건너는 다리가 500여 개나 되며, 자동차와 함께 유람선이 도시 곳곳을 누비고 있다. 가히 물의 도시답다.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 이야기, 니콜라이1세 이야기, 시베리아를 정복한 예카테리나2세 이야기, 이삭성당, 피의 구원성당, 푸쉬킨시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과 푸쉬킨 모교인 귀족학교, 표트르대제의 여름궁전 페테르고프, 발틱해변과 공원 등등. 가이드의 해박한 지식과 유창한 설명을 따라 긴 낮을 보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17년 혁명 후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겨가면서 개발이 중단되었던 까닭으로 중세의 모습을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12. 다시 모스크바로


8월 7일 아침에 모스크바로 다시 와서, 8일 오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 모스크바 시내를 관광한다. 크레믈린궁과 바실리 성당, 유람선, 아르발트거리, 톨스토이의 집, 레닌언덕, 유리 가가린 동상, 노보데비치수녀원과 백조의 호수, ‥‥‥. 이런 것들에 얽혀 있는 숱한 사연들. ‥‥‥.



13. 인간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부활』『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인생이란 무엇인가』. 세계적인 대문호라고 일컬어지는 톨스토이가 19년 동안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모스크바에 머물렀을 때 살던 집, 톨스토이박물관에서 인간 톨스토이를 만난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많이 읽지도 못했고, 잘 알지도 못한 터라 속으로 주눅이 드는 걸 눌러 참으면서, 가이드를 따라 톨스토이가 살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유물들을 보고, 그의 삶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작가로서의 명성과 작품에 대한 찬사보다는 인간 톨스토이를 생각한다.


교회의 부정을 비판하고, 성직자들의 비리를 지적하다가 교회로부터 파문당하는 톨스토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위한다는 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권력과 부에 영합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건, 어느 종교에서건 있는 일이런가? 카톨릭 교회 문 앞에서 유색인이라고 박대를 당하는 간디가 생각나고, 호국불교, 구국기도회 등의 미명으로 권력에 빌붙는 일부 성직자들, 세속적인 이득을 위해 정치권에 영합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활보하는 세태를 떠올리면서 파문당하는 톨스토이에게 응원을 보낸다.


귀족으로서의 권위의식을 버리고, 농노들의 삶에 애정을 품고, 그들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자 했고, 실천했던 톨스토이의 따뜻한 인간미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꽉 메운다. 런던에서 구입한 자전거를 사치로 여겨 팔아버렸다는 이야기, 그 자전거를 구입한 어느 부호가 자전거의 사연을 알고 다시 톨스토이에게 선물했다는 극적인 이야기, 아내와의 갈등 속에서도 농노들과의 만남을 그만 둘 수 없어 그들의 출입통로를 따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 재산 문제에 대해서는 아내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냉정하게 선을 긋고 집을 떠나는 톨스토이, 우랄산맥 어느 시골 역사에서 죽어가면서, 먼 길을 달려온 아내에게 끝내 임종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인간 톨스토이의 단호함에 잠시 생각을 멈춰 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14. 러시아의 혼, 꺼지지 않는 불


이르크츠크에서도, 모스크바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을 본다. 2차 대전 때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이름 없는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불.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가스관을 연결해 놨으며, 이러한 불은 러시아 모든 도시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단다. 이게 바로 러시아의 정신이 아닐까? 냉전 시대 크레믈린의 침묵보다도 더 무서운, 러시아의 자연과 사람들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러시아의 혼.



15.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아르발트 거리에 있는 ‘빅토르 최의 벽’]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를 누비고, 온통 푸른 숲을 끼고 도는 모스크바강. 유람선에 앉아 잠시 쉰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한잔 하니 금상첨화렷다.


배에서 내려 아르발트 거리를 거닌다. 젊은이들의 거리라고 하는데, 충주로 치면 현대 타운 부근 차 없는 거리와 같다.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아침 하늘이 맑았기에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어쩌다 나타나는 짧은 처마 밑에서 비를 긋다가 이내 포장마차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씩 한다. 커피 값은 탁자 위에 그냥 놓고 나온다. 러시아 사람들은 돈을 주고받을 때, 직접 받지 않는다고 한다. 돈을 바닥에 놓으면 그걸 집어다가 확인하는 것이 러시아의 오랜 풍습이라는 것.


빗줄기가 약한 틈을 타 거리로 나온다. 푸쉬킨 생가를 지나 얼마를 걸으니 ‘빅토르 최의 벽’이 나타난다. 강제 이주된 고려인 3세로서 시인이자 가수, 영화배우였던 빅토로 최가 무명 시절에 노래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는 ‘자유를 노래하는 사상가’ ‘젊은이들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소련 정부의 탄압이 뒤따랐고, 1980년에 한국공연을 두 달 앞둔 어느 날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 벽에는 러시아 문자로 된 낙서가 빽빽하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 당신은 천사다.” “당신을 사랑하는 데는 말이 필요 없다.” ‥‥‥.



16.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 ― 숲과 동상과 성당


모스크바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이르크츠크에도 숲이 많다. 동상이 많다. 성당도 많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고, 보이는 것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유물이고, 유적이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들이 널려 있고, 문학가, 예술가, 정치가, 학자, 군인들의 동상이 곳곳에 서 있다.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나무와 공원의 숲, 카쟌성당, 바실리 성당, 예수승천성당, 예수구원 성당, 피의 구원사원(성당), 이삭성당, 노보데비치수녀원, 레닌 동상, 톨스토이 동상, 체호프 동상, 피터 대제 동상, 푸쉬킨 동상, 차이코프스키 동상, 유리 가가린 동상, ‥‥‥.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전과, 성당들과 벽화들 그리고 조각들. 아름다운 언어로, 곡으로, 그림으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던 예술가들의 동상. 광활한 땅덩이에 펼쳐 있는 울창한 숲과, 인간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해 놓은 유물들이 어울리면서 넘쳐난다. 그들이 간직하여 전하는 사연들은 구구절절 그침이 없고, 인간의 삶이 가꾸어 낸 지혜가 언뜻언뜻 남실댄다. 그렇게 우러나오는 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의 경계는 어디인가?



17. 자신감과 대범함에 담긴 저력[청와대보다 넓게 열린 크레믈린궁]


크레믈린궁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검색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출입문에 설치된 검색장치를 통과하고 나면 자유롭게 궁전 안을 돌아다닐 수가 있다. 군데군데 경비병들이 서 있지만, 무단 횡단 저지 등 질서 유지 활동만을 하고 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저 건물 안에서 푸틴 대통령이 업무를 보고 있으며, 관광객들은 궁 안에 있는 성당, 정원 등을 얼마든지 오갈 수 있다. 다만, 많은 인파 속에서 일행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대통령 집무실 코앞까지 개방하여 관광객들이 들끓게 하는 나라. 보이지 않는 경계를 단단히 하고 있겠지만, 관광객들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이 또한 러시아의 자신감과 대범함이 아닌가.



18. 무궁무진한 이야기들


이번 여행의 핵심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 보는 것이었고, 일단 꿈은 이루어졌다. 열차이야기에 더하여, 이르크츠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푸쉬킨시, 발틱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다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마냥. 역사와 지리와 종교와 문학, 미술, 음악을 망라하는, 유학생 가이드들의 안내와 설명은 깊이가 있으면서도 명료해서 좋았다. 횡단열차를 타 보는 것에 얹어진 덤이었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꺼번에 다 풀어놓기엔 양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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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행을 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장기간 집을 떠나도록 허용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교통편과 숙식 예약 등, 낯선 나라에서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케이뚜리스트 직원들과 현지 가이드들에게 감사한다. 열차 안에서, 언어소통의 불편함 속에서도 많은 정보를 주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 준 레나, 루다, 리에나 그리고 아홉 살 꼬마 마샤에게도 감사한다. 충주에서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은 도보사랑, 미사모 여러분께 감사한다. 초면임에도 오랜 지기처럼 대해 주고, 많은 경험을 나누어 준, 최랑의 친구 윤사장님, 충주에서부터 함께한 전, 유, 최, 임, 김, 김, 여섯 분들께 감사한다. 특히, 앙가라 강가 바냐에서 화상을 입었을 때, 빗속을 뛰어다니면서 얼음을 구해오고, 약을 사오고 하면서 크게 걱정해 준 가이드 베라에게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했기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이르크츠크 국립언어대학교 한국어 강사로서 휴가를 이용하여 아르바이트를 나왔다고 했는데, 한국어 실력이 끝없이 발전하고, 모든 일들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끝으로,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하고, 이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스빠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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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일정>

7월 30일 : 인천→블라디보스토크→이르크츠크(비행기)

7월 31일~8월 1일 : 바이칼호수와 이르크츠크 관광

8월 1일 저녁~8월 5일 새벽 : 시베리아 횡단열차/이르크츠크→모스크바(87.5 시간)

8월 5일 낮 : 모스크바 시내 관광

8월 5일 저녁~8월 6일 새벽 :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열차(7시간 40분)

8월 6일 낮 :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푸쉬킨 시 관광

8월 6일 저녁~8월 7일 새벽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열차(8시간)

8월 7일 : 모스크바 시내 관광

8월 8일 낮 : 모스크바 시내 관광

8월 8일 저녁~8월 9일 아침 : 모스크바→블라디보스크/비행기(9시간)

8월 9일 : 블라디보스토크 전망대 관광 후 인천행 비행기(2시간)/인천→충주(공항버스/3시간)

(2007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