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우리 땅인가

2009. 6. 4. 12:18중국러시아몽골

압록강마라톤대회를 마친 후, 백두산에 올랐다. 백두산은 화산 부식토가 흰 빛을 띠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한다. 산문과 이정표, 기념품에도 모두 長白山이라고 쓰여 있다. 해발 높이 2,744m. 백두산 천지 해발 높이는 2200m, 유역면적 10Km2,둘레 13Km, 평균수심 204m, 최대 수심 373m이고, 둘레에는 16 개 봉우리가 있다.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모두 네 개가 있다. 동파, 서파, 남파, 북파. 동파는 북한, 서파와 남파와 북파는 중국. 파는 언덕이라는 뜻. 무지하게 넓고 평평한 언덕 위에 천지(天池) 호수가 담긴 산 덩어리가 솟아 있다. 서파 산문 가까이에 오니 비가 뿌린다. 산문에서 천지 코 밑까지 버스로 이동. 비가 오락가락, 잔득 흐려지는 날씨. 얼마쯤 오르니 차창 밖으로 난쟁이 야생화처럼 좍 깔린 꽃이 보인다. 백두산철쭉이란다. 나무 크기가 한 뼘도 안 돼 보이고, 꽃 크기도 작고, 빛깔도 흰색에 가깝다. 가파른 길, 가파른 오르막 앞에서 차는 멈추고, 1,200여 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 천지를 보았다. 6월 1일인데 천지는 겨울이다. 거친 바람에 몸을 가누면서 천지를 바라보고 사진도 찍고, 돌아서서 넓고 넓은 만주벌판도 바라보고, ‥‥‥. 한참을 서성이는데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천지를 뒤덮기 시작한다. 가시지 않은 아쉬움을 안고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싸락눈이 거센 바람에 날린다. 주차장 옆 건물 안에서 고량주 한 잔 털어 넘기고, 버스 안에서 히터를 틀어 몸을 녹인다. 백두산은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천지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데, 오늘은 참으로 운이 좋은 날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와 금강대협곡을 둘러보고 산문을 나오니 또 비가 내린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 화산이 폭발했을 때 용암이 흐르던 자리가 오랜 비바람에 씻겨 이루어진 것으로, 미국의 그랜드캐년과 같은 지형이라고 한다. 협곡의 폭은 평균 120m, 평균 깊이 80m, 길이 10Km 정도라고 한다. 깊은 골짜기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윗부분 곳곳이 녹슨 쇳물이 칠해진 것처럼 보인다. 땅이 물러 언제 꺼질지 모르기에 가장자리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 골짜기 벽에서 가끔씩 누런 먼지 같은 게 일어난다. 바람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누군가 옆에서, 유황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압록강 줄기를 따라 백두산으로 오가는 길은 남의 나라 땅 같지가 않다. 단둥, 통화, 집안 등등, 멀리는 부여, 고구려의 옛 자취, 가까이로는 식민지시대 독립투사들의 발자취. 지금도 남아 있는 조선족들의 삶, 그리고 한국 관광객들의 잦은 발길. 이따금 만나는 한글 간판과 한국말. 그래 그런지 산 빛과 물빛, 옥수수가 대부분인 농작물들이 낯설지가 않다. 펼쳐지는 밭마다 옥수수 어린 싹이 삐죽삐죽하다.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동북3성이라고 하는데, 작물의 95%가 옥수수란다. 가끔 모내기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모두가 손으로 모를 심는다. 뙈기논이라고 할 만큼 작고 적다. 집집마다 옥수수 저장고가 한 채씩 딸려 있다. 옥수수를 수확하면 식구들이 먹을 만큼 거기에 저장을 하고 나머지는 팔아서 쌀과 생활용품을 사고, 아이들 학비를 마련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옥수수 대부분을 수출하는데, 한국으로도 많이 간단다.

 

 

단둥에서 백두산 천지를 오가는 길에 졸본성과 광개토대왕릉을 보았다. 고구려 첫 번째 수도였던 졸본성은, 주몽이 북부여에서 내려와 터를 잡았다는 곳. 환인에서 잠깐 쉬면서 바라보니, 바위 절벽으로 둘러싸인 것이, 기가 막히게 절묘한 천연요새임 직하다. 광개토대왕릉은 고구려 두 번째 수도였던 집안현에 있다. 2일 아침, 식전 산책길에, 길가는 사람에게 필담으로 물어서 뛰듯이 걸어가 보았다. 중국의 동북공정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사람들이 고구려 역사에 관심을 많이 두고, 옛 고구려 땅이었던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관광 경기의 활기가 느껴진다. 오래 전부터 우리들의 귀에 익은 강 이름, 통화에서 본 비류수를 집안에 와서 다시 본다.

 

 

집안시내를 벗어나 압록강 가를 달리면서 보니 북한 땅 만포시가 지척으로 건너다보인다. 단동과 신의주 쪽은 들판이 참으로 넓은데 여기는 거의가 산지이다. 그 쪽은 하류이고 여기는 상류, 하지만 물은 거기나 여기나 깊어 보인다. 하류 쪽 강폭이 훨씬 넓은 건 당연한 이치이고, 섬도 여럿이다. 압록강에는 103 개의 섬이 있는데, 일흔 몇 개가 북한 영토라고 한다. 단둥에서 보이는 섬들 모두가 기름져 보이고,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다른 곳 섬들도 마찬가지겠지. 단동에 있는 호장산성 바로 밑에서는 북한 영토인 섬과 중국 땅 사이를 흐르는 물 너비가 단 한 발짝 밖에 안 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이름이 일보과(一步). 정말로 한 발짝 내디디면 건너갈 수 있는 것을 보면서도 갈 수가 없다. 발을 내딛어 건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실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행동을 막는다.

 

 

마라톤대회 전 날에는 단동에서 압록강 유람선을 탔다. 다리 아래위쪽을 돌아오는 동안 건너편 강가에 나와 있는 신의주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물놀이하는 아이들, 고기 잡는 사람들, 나무 그늘에 앉아 쉬는 사람들, 트럭에 물건을 싣고 내리는 사람들, 국경 경계를 하는 군인들, 빨래하는 사람들, ‥‥‥. 그리고 건물 벽에 큼직하게 서 놓은 붉은 색 구호들. 펄쩍 내리 뛰면 닿을 수 있는 곳을 그저 바라만 보고 온다. ‥‥‥.

 

 

호장산성 성루에 북한상점이 있다. 평양에서 왔다는 아가씨가 물건을 파는데, 부산 아시안게임에 응원단으로 왔었단다. 농담도 잘 받아 넘기고 명랑하다. 장사를 거들겠다며 옆에 서서 손님들을 부르고, 물건을 사라고 소리를 높이니 재미있다고 웃어댄다. 들쭉술 한 병을 샀다. 단동시내에도 북한식당이 여럿 있다. 평양식당, 옥류관, 평양고려식당, 삼천리식당 등. 종업원들 모두가 북한에서 온 아가씨들인데 다들 미인이다. 출신 성분과 능력, 미모 등을 따져 선발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묻는 말에 웃으면서 친절하다. 북쪽 사투리 억양이 묻어난다. 마라톤을 마치고 나서, 점심 식사 전에, 삼천리식당에서 냉면 한 그릇을 사먹었다. 면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하다. 국물 맛도 남쪽과 좀 다른 것이 꽤 맛있다. 지금도 입맛이 다셔진다.

 

 

먼 옛날에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는지 모르겠으되, 참으로 묘한 생각이 든다. 고구려가 망하는 과정, 신라가 한반도의 유일 정권이 되는 과정, 고려가 남쪽으로 움츠려들던 것, 근현대에 와서 간도가 중국 땅이 되는 사건, 식민지시대가 끝나고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 등등. 잘못된 역사인식인지 건전하지 못한 시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자꾸만 답답해진다. 내가 정권을 갖기 위해서는, 내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방 땅 얼마쯤과 무지렁이 백성 얼마쯤은 버려도 된다? 아니 기꺼이 버린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위정자들은 그렇게 해오고 있지 않은가? 바깥으로는 한 없이 비굴하고, 돌아서 내 백성들은 한 없이 어리석게 여기면서 놀려대고 눌러내는 사람들. 지금 대한민국에서 두어 차례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세력은 언제고 그런 사람들이 갖고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옛날에 그런 사람들이 정권을 얻는 대가로, 유지하는 대가로 남에게 넘겨준 땅을 오늘날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백두산을 찾고, 만주를 찾아 여행을 하고, 답사를 다니고 있지 않은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민족을 말하고, 통일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벽을 더욱 높이고 굳히고 있다. 손 안에 들어온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민족이라는 말, 통일이라는 말까지도 정권을 얻고,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집안에서 단둥으로 달리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산과 들과 비 내리는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 내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단동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덤으로 다녀온 백두산 길. 왕복 이틀 동안 버스 길. 가로수는 주로 아카시나무다. 지금 하얀 꽃이 한창이다. 신기하게도 보라색 아카시 꽃도 있다. 나무 아랫부분에 하얗게 무언가 칠해져 있는 가로수가 많다. 횟가루라고 한다. 병충해를 방지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로등이 없는 곳에서 자동차불빛을 반사하여 길을 안내하는 구실도 한단다. 부여와 고구려의 땅이었던 곳, 남의 나라 땅을 찾아와서 옛날이야기와 오늘 우리들의 현실을 넘나드는 상념에 갈피 잡지 못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