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김천-상주]

2008. 2. 27. 11:26동서남북

이젠 꽃샘추위 같은 건 없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고 있지만 덥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고 노래한 오월이 내일부터다. 연한 초록, 저 산 빛을 ‘유록(幼綠)’이라고 하면 어떨까? 어린이 이전의 아기와 같은 ‥‥‥.’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 어린 녹색은 시나브로 신록(新錄)이 되어 싱그러움을 갖춰 간다. 어제 오늘 한결 더워진 날씨에 푸른 잎이 쑥쑥 자라나는 게 보이는 것 같다. 세상의 어떤 말이나 물감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저 색과 빛! 자연의 신비인가?


도암리 느티나무 아래서 잠깐 쉬었다가 구례리를 지나 여남재를 넘는다. 여남재는 김천과 상주의 경계가 되는 고개다. 김천 시내를 벗어나자 국도 확·포장을 위해 닦아 놓은 흙길이 여남재까지 이어지고, 고개 너머 옥산리에서 상주대학교 앞까지 둑방길이 이어진다. 병성천.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3번 국도를 저만치 두고 걸어가는 흙길이 여유롭고 한적하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 제법 자란 풀잎, 이름 모를 들꽃, 산과 들에 가득한 햇빛! 여뀌, 미나리가 자라고 있는 하천 바닥에는 맑은 물이 요리조리 흐르고 있다. 한낮 볕 아래서 움직이니 땀이 나게 마련이나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바람은 또 강둑에 푸른 물결을 일으켜 눈을 즐겁게 한다. 자연의 품에 던져진 몸이 싫도록 호사를 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공성면 소재지 옥산리로 향하는데 한 청년이 자전거를 끌고 간다. 행색이 심상찮아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니 부산까지 간단다. 서울서 부산까지 자전거라. 그 뜻과 기상이 기특하다.


인생이라는 길. 뭔지 모르지만 걸어야만 하는 길. 저도 모르게 걷고 있는 길. 뭔가?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알 듯 말 듯한 길. 그냥 걸어가는길. 걸으면서 사랑을 배운다. 그런데 그 사랑을 살고 있나?


경상북도 김천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고 한다. 황악산과 고성산과 금오산이 삼산(三山)이요, 직지천과 감천이 이수(二水)다. 그만큼 좋은 땅이라는 게지. 좋은 땅 좋은 물로 빚어 여름을 잘 나게 해 주는 과하주가 좋다는데 맛볼 쾌를 잡지 못했다. 기회가 있겠지.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란다. 누에고치, 쌀, 곶감. 원래는 곶감이 아니라 목화였는데 광복 후 곶감으로 바뀌었다고. 그래 그런지 감나무와 뽕나무가 많이 보인다.


김천 버스터미널(07:40)―어모면 남산리―도암리―구례리―여남재―상주시 공성면 거창리―옥산리(면소재지/점심)―초오리―청리면 하초리―수상리―양촌동―가장동(상주대학교)―신봉동―상주터미널(16:40 )

(200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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