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11:27ㆍ동서남북
2006년 5월 31일. 지방선거를 하는 날이다. 상주 터미널 옆 식당에서 닭곰탕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의기양양 걸음을 뗀다. 양력으로는 5월 마지막 날이고, 음력으로는 5월 5일이다. 천중절(天中節), 단오(端午). 날씨도 덥고,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를 주로 걸어야 하는 일정인지라 상쾌한 맛이 좀 덜하지만, 첫 출연하는 신종선 선생님 ― 신랑(辛郞)이라고 할까? ― 의 의욕에 찬 발길이 분위기를 돋운다. 신종선 유병귀 최광옥 임성규 이호태.
남해에서 충주까지 걷는 길. 오늘 주흘산 밑 문경까지 가고 나면 하루 걸음으로 충주. 가슴이 가볍게 설렌다. 예상했던 대로 자동차가 많이 다니고 햇볕이 뜨겁지만 눈에 들어오는 산천의 푸른빛과 언뜻언뜻 불어오는 바람결 덕에 몸과 맘이 즐겁다.
공검면 공갈못터. 노래비가 서 있고, 연잎이 많이 떠 있는 좁은 못이 보인다.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연못이 저만큼만 남았다는 얘긴가? 상주 ― 함창. 몇 시간을 걸어도 계속 펼쳐지는 들판이 참으로 넓다. 물 좋고 땅이 기름진 이 곳에 그 옛날 작은 마을들이 여기저기에 있었을 테고, 물을 관리하는 지혜가 모였었겠지. 그렇게 어울리면서 사는 가운데 희로애락이 맺히고, 숱한 애환이 엮이고, 은근한 정과 애틋한 사랑이 싹트고 했겠지.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 줄게
이 내 품에 잠 자 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 가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 줌세.
백년언약 맺어 다오.
백년언약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 간다.
-공갈못 옛터 공갈못 노래비에 새겨져 있는 “연밥 따는 노래”
노랫가락을 더듬으면서 걷다보니 이안면으로 들어선다. 이안교[다리]를 건너다가, 흐르는 물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팔뚝만한 물고기 떼가 너무나도 여유롭게 놀고 있다. 우리가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는 저 놈들의 이름은 분명 눈치[누치]다. 수주팔봉 고향 친구들 덕분에 네 놈들 회 맛을 내가 좀 안다 이 놈들아. 눈치 놈들 몸통아리 싱싱한 거는 물론이고, 눈치 있는 개울물이 참으로 깨끗하다. 물가 풀 빛 또한 티 없이 깨끗하니 발길을 떼기가 아쉽다.
드디어 점촌. 식당에 들어 우선 시원한 냉막걸리를 청한다.
“캬~!”
이 소리가 나야 제 맛이다.
다시 문경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니, 산 밑을 흐르는 작은 개울둑이 ‘모 자라는’ 논을 끼고 나타난다. 좋다! 산도, 논도, 길도, 바람도 푸르니 정말 좋다. 불정을 지나고 마성을 지나 또 다시 농로를 걷는 맛을 보게 되니 마냥 즐거워 다리 아픈 것 정도는 견딜 만하다.
그런데, 아, 난 아직도 나밖에 모르니 철이 없는 건가? 처음으로 함께 하는 신 선생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걸 보면서 농담에 껄껄거리기만 하고 있으니.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니 얼마나 아프고 힘이 들까. 발바닥에 불이 난 듯하단다. 그래도 웃으면서 씩씩하다. 신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멋있습니다. 오늘 걷는 길이 백 리는 넘을 겁니다.
불정동 경계에 들어오면서 주워 들고 온 붉은 깃발을 문경 터미널 정원에다 꽂아 놓는다. 며칠 뒤, 충주로 가는 길을 시작할 때까지 넌 여기 있어라.
(200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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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터미널(08:50)-죽전동-초산동-부원동-남적동-사벌면 원흥리-연봉리-공검면 공갈못 옛터-이안면 이안교(다리)-함창읍 함창중고등학교-문경시 점촌시외버스터미널 옆(중식/막걸리, 매생이전, 해물냉면)-흥덕동-공평동-유곡동-불정면-진남휴게소-마성-문경시외버스 터미널(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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