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6. 10:36ㆍ저런
‘걷는 것이 오랜 기간에 걸쳐 놀랄 만한 미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 기간은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부담을 줄이는 단계다.
가장 암울한 이 기간은 족히 보름이 걸리고, 길어야 한 달이다. 간신히 몸을 가누고, 물집과 근육통의 고통을 참아내며, 동시에 길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맹렬한 고통 때문에 머리는 최근이나 그 이전의 기억 혹은 고통에서 해방된다. 결국 말하자면, 힘든 시기인 것이다.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지만 조절할 수는 있다. 가방을 채우면서, 옷과 불필요한 물건은 포기한다. 걷기 시작한 며칠간, 머리를 꽉 채우던 걱정거리와 어려운 문제에서도 해방된다. 영혼은 평온해지고, 출발 전에 가지고 있었던 음울한 생각과 거리를 둔다.
두 번째는 꿈과 발견의 단계다.
단련되어 몸 상태는 잊게 된다. 따라서 이제는 주변 환경과 사람들과의 만남에 좀더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전화와 주변의 유혹과 실생활에서 겪는 걱정에서 멀어져 이런저런 상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곧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한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 대답은 순간적으로, 또 단계적으로 나온다. 의무에서 벗어나, 소유는 존재 앞에서 지워진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걷는 것의 비밀이 밝혀진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향해 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 도착한다는 것.
마지막 단계는 반쯤은 슬픈 길이다.
길 끝이 보이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된다. 꿈이 끝났다는 데서 오는 섭섭함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데서 오는 행복감....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계획들이 부글거리고, 수많은 결심과 밑그림을 그리는 데 앞으로 며칠, 몇 달, 몇 년을 투자할 생각을 한다. 아마도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육체적인 활동이 끝난 뒤 긴 도보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낸 충만감을 느끼며, 더 이상 현재에 경계를 짓지 말고, 오히려 미래를 향해 열어두고, 근육과 머리에 축적해둔 강인한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꿈이 끝난 뒤의 슬픔이 그런 식으로 부드럽게 옮겨가는 것일 수도 있다. 걷는 사람은 인생이라는 천연 금괴를 탐광하는 사람이 된다. 종착점에 도착하기 전의 마지막 며칠간, 나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이후에 있었다. 수첩에 글을 적으면서, 주변 풍경에 대해 별다른 기록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다른 곳에, 내 집에, 내 가족과 친구와 함께 있지만, 계속 걷고 있다.
------- 베르나르 올리비에/「나는 걷는다」제3권 <스텝에 부는 바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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