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6. 10:42ㆍ저런
<연밥 따는 노래>
- 상주 지방 특유의 무형 문화재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 공갈못을 배경으로, 연밥 따는 아가씨와 연정을 품은 남정네가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음.
- ‘모심기 노래 즉 이앙가(移秧歌)로 흔히 불리는 노동요(勞動謠).
- 구전되는 여러 가지 노랫말이 채록이 되었기 때문에, 같은 구절에 사용되는 낱말이 약간씩 다른 것도 있다.
<왜 ‘상주함창공갈못’인가?>
- 상주는, 서기 184년에 건국되어 약 60여 년간 읍성국가로 존속했던 사벌국의 고도였고, 함창은 1세기 무렵에 건국되어 약 2세기 동안 존속한 고령가야의 고도였다.
- 함창은 신라 때 고능군(古陵君)으로 하였다가 경덕왕(재위 742-764) 때에는 고령(古寧)으로 개칭, 고려 광종 15년(964년)에는 함녕(咸寧), 현종 9년(1018년)에 전국을 8팔목(八牧)으로 개편할 때 함녕은 郡이 되어 상주목(尙州牧)에 속하게 되어 함창(咸昌)으로 개칭. 이 때부터 '공갈못'은 ‘상주함창공갈못’으로 불리게 됨.
<공갈못의 역사>
-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199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의림지, 벽골제 등과 같은 시대인 삼한시대 또는 고령가야국(현재 함창읍 지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축.
- 역대 여러 차례의 보수를 하였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길이 없고, 다만 고려 명종 때 최 정빈이란 분이 고쳐 쌓았는데 못 둑의 길이가 860 보이고, 못 주위의 길이가 16,000 척. 물이 찼을 때 수심이 다섯 길. 못의 서쪽 가에 연꽃이 만발했다고 기록에 전함. - <상산지>,<함창읍지> 등
- 고종 광무년간(1897- 1906) 에 한성부윤을 지낸 총신 이채연(李采淵)의 진언에 따라 둑을 터 논을 만들었고, '공갈못'은 거의 황폐화되어 5만 7천 명 정도로 축소됨.
-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함창군이 상주군에 속하게 되면서, "공갈못"은 다시 상주 소유가 되었고, 못을 이름을 다서 공검면이 생김.
- 1959년 12월 31일에 오대저수지(공갈못 서남의 오대 수원지)가 완공되어 하여 '공갈못'의 효용가치가 없어지자 주민들 사이에는 완전 경지화 또는 다소라도 보존하자는 찬반 논란이 일어남.
- 1964, 2천여 평만 남기기로 결정.
- 1968년, 함창농지개량조합에서 '공갈 못 옛터' 비를 세워 역사적 현장임을 알리고 있음.
- 1993년, 상주군에서 군비로 넓이 3.938평의 못을 개축.
<공갈못 전설>
1. 예전에 못의 얼음 어는 것을 보고 흉년, 풍년을 예측하였다.
2. 정월 열나흘날 밤, 소들이 땀을 흘리는데 그것은 밤을 이용하여 소들이 못에 얼음을 갈기 때문이다.
3. 경주 용담의 암용(-龍)이 공갈못 수용에게 시집을 왔다.
4. 볶은 콩 서 되를 하나씩 먹으면서 말을 타고 못 가를 돌아도 콩이 모자란다.
5. 저승에 가도 공갈못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은 이승으로 되돌려 보낸다.
6. 못 둑을 쌓을 때 ‘공갈’ 이라는 아이를 묻었다는 설화에서 ‘공갈못’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7. 예전에, 홍수에 못의 둑이 끊어져 근처에 사는 마을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 아무리 튼튼히 쌓아놓아도 비가 좀 많이 오면 여지없이 무너지곤 하니 마을사람들의 큰 고통거리가 되었다. 어느 해 여름, 어떻게 하면 둑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고 마을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한 스님이 나타나더니, 그 얘기를 듣고서, “산 사람을 기둥으로 세워 못 둑을 쌓아 올리면 이후로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오.” 하고는 가버렸단다. 그런데 누가 사람 기둥이 되어 줄 것인가가 문제가 아닌가? 며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 스님이 또다시 나타나 “사람기둥으로 설 사람이 없으면 내가 서지요.” 해서 그 스님을 사람기둥으로 세워 놓고 둑을 쌓아 올렸더니 그 후로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둑이 터지지 않았다.
<노래 - 모내기 민요>
1. 공갈못 노래비에 새겨져 있는 노랫말
상주 함창 공갈못에 /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 줄게 / 이 내 품에 잠 자 주오.
잠자기는 어렵잖소. / 연밥 따기 늦어 가오.
상주 함창 공갈못에 / 연밥 따는 저 큰아기.
연밥 줄밥 내 따 줌세 / 백년언약 맺어주오.
백년언약 어렵잖소. / 연밥 따기 늦어 간다.
2. 여기저기 전해지고 있는 노랫말 몇 개
상주 함창 공갈못에 /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주마 / 우리 부모 섬겨다오.
이배미 저배미 다 심어노니 / 또한 배미가 남았구나.
지가야 무슨 반달이냐 / 초승달이 반달 되지.
이 물꼬 저 물꼬 다 헐어놓고 / 쥔네 양반 어디 갔나.
장터 안에 첩을 두고 / 첩네 방을 놀러갔소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 연적 같은 젖 좀 보소
많이야 보면 병이 난다 / 담배씨만큼만 보고 가소.
문오야 대전목 손에 들고 / 친구 집으로 놀러가니
친구야 벗님은 간 곳 없고 / 공달패만 놓였구나.
저기 가는 저 처자야 / 고추이나 잡아다오
고추농살 내가 놓게 / 새참이나 내다주소
싸립문 대청문 열어놓고 / 손님네는 어딜 갔소
무산일이 그리 많아 / 내 올 줄을 몰랐던가.
못줄 잡는 솜씨 따라 / 금년농사 달렸다네.
모심기는 농사치곤 / 칸 좀 맞춰 심어주소
이 고생 저 고생 갖은 고생 / 모질게도 사는 목숨
한도 많은 이내 팔자 / 어느 때나 면해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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