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6. 10:38ㆍ저런
홍진(紅塵)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生涯) 엇더한고.
� 사람 풍류(風流)를 미칠가 못 미칠까.
천지간(天地間) 남자(男子) 몸이 날 만한 이 하건마는,
산림(山林)에 뭇쳐 이셔 지락(至樂)을 마랄 것가.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 두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예 풍월주인(風月主人)되여셔라.
엊그제 겨울 지나 새 봄이 도라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예 퓌여 잇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이에 다를소냐.
시비(柴扉)예 거러 보고, 정자(亭子)애 안자 보니,
소요음영(逍遙吟詠)하야, 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데,
한중진미(閑中眞味)를 알 니 업시 호재로다.
이바 니웃드라, 산수(山水) 구경 가쟈스라.
답청(踏靑)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란 내일하새.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해 조수(釣水) 하새.
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듯 부러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
준중(樽中)이 뷔엿거든 날다려 알외여라.
소동(小童) 아해다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는 술을 메고
미음완보(微吟緩步)하여 시냇가의 호자 안자,
명사(明沙) 조한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를 굽어보니, 오나니 도화(桃花)ㅣ로다.
무릉(武陵)이 갓갑도다, 져 메이 � 거인고.
송간(松間) 세로(細路)에 두견화를 부치 들고,
봉두(峰頭)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려 잇네.
연하일휘(煙霞日輝)는 금수(錦繡)를 재�는 듯,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빗도 유여할샤.
공명(功名)도 날 �우고, 부귀(富貴)도 날 �우니,
청풍명월(淸風明月) 외(外)예 엇던 벗이 잇사올고.
단표누항(簞瓢陋巷)에 흣튼 혜음 아니하네.
아모타, 백년행락(百年行樂)이 이만한들 엇지하리.
속세에 묻혀 사는 사람들아, 이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가?
옛 사람의 풍류(멋)를 따르겠는가, 못 따를까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 나만한 사람이 많지마는
산림에 묻혀 있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른단 말인가
초가삼간을 맑은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주인이 되어 있도다.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드나무와 향그런 풀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서 푸르도다.
이 풍경을 조물주가)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내었는가?
조물주의 신통한 재주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숲 속에 우는 새는 봄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해 소리마다 교태를 부리는 모습이로다.
물아일체이거늘, (새와 나의)흥이야 다르겠는가
사립문 주변을 걸어보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
이리저리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보며, 산 속의 하루하루가 적적한데
한가로움 속의 참된 즐거움을 아는 이 없이 나 혼자로구나.
여보게 이웃 사람들아, 산수 구경이나 가자꾸나.
답청은 오늘하고, 냇물에 가서 목욕하는 일은 내일 하세.
아침에는 산에서 나물을 캐고, 저녁 때에는 낚시질하세.
이제 막 발효하여 익은 술을 갈포로 만든 두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세며 먹으리라.
화창한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 물결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히 담기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아이를 시켜 술집에 술이 있는지를 물어서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동이를 메고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서 시냇가에 혼자 앉아
맑은 모래 위로 흐르는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내려 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
무릉도원이 가깝구나, 저 들이 무릉도원인가?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서 진달래꽃을 붙들고
산봉우리 위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
수많은 촌락이 여기저기 널려 있네.
안개와 노을과 빛나는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구나
엊그제까지 거뭇거뭇하던 들판에 봄빛이 넘쳐 흐르는구나.
공리와 명예도 나를 꺼리고, 부귀도 나를 꺼리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외에 그 어떤 벗이 있겠는가
누추한 곳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헛된 생각을 아니 하네.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일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밥 따는 노래[공갈못] (0) | 2008.03.06 |
---|---|
여행[잘랄루딘 루미] (0) | 2008.03.06 |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 중에서 (0) | 2008.03.06 |
범바위창간호 (0) | 2008.02.29 |
俛仰亭三言詩 (0) | 2008.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