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23. 21:44ㆍ전라
덕유산 종주를 하자. 삼공리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정오에 출발한다. 국립공원사무소를 지나 좀 가니 쌓인 눈이 다져져 미끄러운 길이 이어진다. 백련사 일주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금강문 옆에 있는 샘터에서 식수를 보충한다. 절집 마당 여기저기에 단체 산행객들이 모여앉아 점심밥을 먹고 있다. 절 뒤 능선으로 올라서니 겨우살이를 여러 뭉치 달고 있는 나무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잔뜩 찌푸렸던 날씨는 점차 개이고 이내 해님이 나타난다. 향적봉은 덕유산 주봉으로 해발 1614 미터이고, 봉우리 바로 밑에 개인이 운영하는 대피소가 있다.
대피소에 짐을 풀어놓고 향적봉에 오른다. 저물어가는 햇빛 아래서, 씽씽 불어대는 바람을 맞으며 사방을 둘러본다. 야~! 눈길은 끝도 없이 멀어져 가는데, 서늘한 바람결이 얼굴을 마구 간질인다. 옆에서 저도 모르게 터지는 탄성, “이런 맛에 산에 오르는 거지!” 구불구불,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내일 걸어갈 길이고. 백두대간은 백암봉에서 지봉을 지나 민주지산 쪽으로 용틀임한다. 임랑이 하나씩 나눠준 황금빛 잔에 술을 따라 정상 표지석 옆에서 건배. 기념사진도 찍고 이리저리 거닐고 바라보며 실컷 노닐어 본다.
대피소 취사장에서 저녁 식사. 먼저, 삼공리 상가에서 사들고 온 냉동삼겹살을 구워 소주 한잔.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에 김치를 섞어 지져 놓고 햇반을 데워 먹었다.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대피소 안에 잠자리를 펴 놓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로 어두운 초저녁을 보낸다. 겨울 덕유산을 종주하러 온 사람, 일출을 찍기 위하여, 눈 덮인 덕유산 겨울풍경을 찍기 위하여 온 사람. 어떤 이는 며칠씩 묵으면서 아주 좋은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혼자서 온 사람, 둘이서 온 사람, 다섯이 일행이 된 우리들, ‥‥‥. 최랑은 새까만, 대학 후배를 만나기도, 하하. 서산에서 왔다는 사람을 보니, 몇 해 전, 충주에서 만리포까지 걸어가던 일이 생각난다. 차갑게 언 몸으로 거센 바람을 안고 걷던 일, 성연에서 잠잘 곳을 찾지 못하고 서산시내로 가서 묶었던 일, 고남저수지 옆을 지나고, 팔봉산 자락을 돌아 태안으로 해서 만리포에 닿았던 일,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것 같던 갱개미회[간재미], ‥‥‥.
새벽 세 시 좀 넘어 깬 잠이 좀처럼 다시 들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그저 눈 감고 기다리는 수밖에. 얕은 잠이 들었다 깨었다 한다. 코 고는 소리, 방귀 소리, 여기저기서 뒤척이는 소리. 여섯 시 무렵 아침밥을 먹고, 짐을 꾸려 일곱 시쯤 대피소를 나선다. 두껍게 쌓인 하얀 눈길이 이어진다. 하얀 눈밭에 우두커니 서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 9년 전에 잔가지에 서려 있던 상고대를 떠올려 보지만 오늘은 아니다. 그 때, 기가 막히게 선명한 일출을 보았었는데, 오늘은 먼 산 물결 위에 층층이 띠를 이루고 있는 엷은 구름이 좀 붉어지는 걸 볼 뿐이다. 그러나 날씨는 맑고, 사방 시야가 좋다. 가야산 석화봉이 구름 위에 뚜렷하고,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긴 능선 역시 하얀 구름바다 위로 깨끗하게 보인다. 얼마나 좋은가? 저 아래서, 머릿속으로 아무리 그려 본들 이 순간을 어이 느낄 수 있으랴. 끊임없이 나타나는, 그치지 않고 펼쳐지는 절경에 잇따라 사진기를 들어보지만 얼마만큼이나 담아낼 수 있을까.
삿갓재 대피소에서 받는 볕은 봄날이다. 대피소 바깥 식탁에서 끓인 물을 부은 컵라면이 점심이다. 유랑께서 그렇게 무서워하던 삿갓봉. 가파른 오르막,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의 길이를 조절하여 발걸음을 조절한다. 그렇게 다리 힘을 조절한다. 그렇게 세상살이를 조절한다. 삿갓봉 넘어 월성치, 먼 옛날에 신라에서 백제로, 백제에서 신라로 사신들이 넘어 다녔다는 고개. 수많은 작은 왕국들이 몇 개의 고대국가로 발전하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했을 때를 그려본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에 싸움 그칠 날이 없다. 개인과 개인의 싸움, 집단과 집단의 싸움, 국가와 국가의 싸움. 사는 게 싸움이고, 싸우는 것이 삶의 본연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세상과 싸우는 동시에 자기 자신과도 싸운다.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싸우고 또 싸운다. 학생들은 공부와 싸우고, 군인들은 적군과 싸운다. 엊그제 서울에서 경찰과 시민이 싸워 여러 명이 죽고 다쳤다고 한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싸움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공익이 아닌 것을 위해 개인들의 정당한 이익을 마구 해친다고 말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공익을 가장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싸우기 위해 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인가?
월성치에서 숨을 고르고 마지막 오르막, 남덕유산으로 오른다. 지친 다리를 마음으로 달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선 곳. 조망은 변함없이 좋다. 격려와 축하를 주고받고, 기념 술잔을 부딪친다. 영각사 쪽은 양달이다. 물기 배어나는 눈 위에서 햇빛이 반짝인다. 사다리를 타고 바위 벼랑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길쭉길쭉하게 솟아 있는 바위들이 여기저기서 멋을 부리고 있다.
덕유산 길을 걸었다. 향적봉에서 새벽길을 떠나 삿갓봉을 넘고 남덕유산을 넘어 영각사로 내려왔다. 가파른 비탈, 미끄러운 눈길과 싸우면서 걸었다. 싸우면서 한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다. 싸우면서 보고, 보면서 즐겼다.
-------------------
* 1월 21일(수) : 삼공리(12:00) - 백련사 - 향적봉(1614/대피소/15:30)
* 1월 22일(목) : 향적봉대피소(07:00) - 중봉(1594.3) - 백암봉 - 동엽령 - 무룡봉(1491.9) - 삿갈골재(대피소/11:30/점심)- 삿갓봉(1419) - 월성치 - 남덕유산(1507.4) - 영각사(16:30)
* 유병귀 최광옥 신종선 임성규 이호태
------------------------
* 덕유산 백련사(白蓮寺)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雪川面) 삼공리
-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 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그곳에서 흰 연꽃이 솟아 나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하며, 여러 차례 중건됨.
- 6·25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61년에 대웅전, 1968년에 요사를 건립. 이 무렵부터 백련암에서 백련사로 이름이 바뀜.
- 주요 건물 :대웅전, 원통전, 선수당, 문향헌 등.
- 문화재 :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43), 백련사 계단(전북지방기념물 42), 정관당 부도(靜觀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102) 등.
* 영각사(靈覺寺)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1047번지 남덕유산(南德裕山) 아래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
- 876년(신라 헌강왕 2)에 심광(深光)이 창건.
- 조선 영조 때, 장경각을 짓고 《화엄경》 판목을 새겨 봉안한 상언(尙彦)이, 절을 옮기지 않으면 수해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새겨듣는 사람이 없었고, 얼마 뒤에 큰 홍수로 절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전함.
- 1907년 화재로 소실, 강용월(姜龍月)에 의하여 곧바로 중창.
- 6·25전쟁 때 다시 소실, 1959년 법당을 중건.
- 주여 건물 : 극락전, 화엄전, 삼성각, 요사채, 석등 부재, 부도 6기.
'전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뻬드라치 (0) | 2009.08.19 |
---|---|
덕유산 사진 (0) | 2009.01.24 |
노고단 (0) | 2008.11.27 |
골짜기 너머 골짜기[피아골 ― 뱀사골] (0) | 2008.02.27 |
꽃 잔치가 한창이다[모악산] (0) | 2008.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