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에서 홍어를[두륜산]

2009. 9. 21. 00:09전라

2009년 9월 20일 일요일.

오늘, 참가하려던 마라톤대회는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취소되었고, 해남 두륜산에 왔다.

해남군 북일면과 북평면 경계가 되는 쇠노재에서 출발.

쇠노재 - 의봉 - 비암재 - 두륜봉 - 가련봉 - 노승봉 - 오소재 - 대흥사.

잡목에 묻힌 길을 지나 바윗길, 완만한 소사나무 숲길, 또 바윗길, 바위봉우리.

동쪽으로는 강진만, 남쪽 바다에는 완도와 크고 작은 섬들.

북쪽과 서쪽으로는 너른 들판에 작은 산봉우리들이 간간이 솟아 있다.

삼산천이 바다로 흐르고, 엷은 안개 속에 해남읍내가 저만치에 있고, 서남쪽 저쪽은 땅끝.

바둑판 모양으로 잘 정리된 들판 벼논은 푸릇푸릇, 누릇누릇 가을빛을 머금는다.

올라올 때 드러났던 갯벌을 두륜봉에 올라서서 보니까 바닷물이 꽉 찼다.

가을 햇빛에 안개가 엷게 섞인 허공, 바다와 섬과 들판과 마을들 ‥‥‥.

경치가 좋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인가?

조망이 좋은 바위, 막 올라온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자리를 펴면서 홍어를 내놓는다.

이럴 땐 망설이는 게 아니다.

맛 좀 봅시다.

목포에서 왔다는 사람들, 김치와 홍어와 돼지고기를 소담하게 싸서 준다.

음, 역시 ‥‥‥!

 노승봉에서 오소재까지는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 내리막길, 이어 대흥사까지는 그윽한 숲길.

북미륵암, 일지암, 대흥사를 오가는 길이 숲속에 묻혀 있다.

저쪽 강진 땅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다산이 혜장 스님을 따라 대흥사에 왔었다.

일지암에서 초의선사가 차를 달였다.

이 길이 그 때 그 길이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쫓겨난 사람과 아예 세상을 벗어나 있던 사람.

세상에서 온 사람은 세상살이의 이치를, 세상을 벗어난 사람은 세상을 넘어서는 경지를 얘기했다..

대흥사에는 또, 사명대사를 기리는 표충사(表忠祠)가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친 사명대사.

주류가 아니었던 정조 임금에게 신임을 받았던 다산 또한 비주류.

임금이 죽은 뒤에 혹독한 핍박을 받았다.

오랜 세월 유배지에서 커다란 학문을 이룩했다.

조선시대에 스님들도 주류가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이나 청허휴정 사명대사는 당시 주류들에게 멸시를 당하던 사람들이다.

올 들어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 두 분도 주류는 아니었다.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도 주류들은 그들을 마구 흔들었다.

야비하고, 무지막지한 게 세상 주류들의 속성인가?

주류들이 어질러 놓은 판을, 가끔씩 비주류들이 나서서 어떻게 해보려고 한다.

그게 세상의 이치인가?

 신종 인플루엔자에 쫓겨 찾아온 두륜산에서,

세상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생각한다.

세상을 벗어난 사람들이 세상을 위하던 일들을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핍박을 견뎌 내던 이들을 생각한다.

아까 한입 한 삼합을 떠올려 다시 한번 입맛을 다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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