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은 어디[지리산 음양수 그리고 청학동]

2010. 6. 21. 22:26경상

남해안에서 섬진강 물길을 거슬러 화개골을 거쳐 대성동 골짜기에까지 올라온 연진과 호야는 지리산에 들어온 첫 번째 인간. 세속의 번거로움을 벗고 산이 주는 평화를 누렸다. 자식을 바라는 건 본능인가? 남편인 호야는 산열매를 따러 갔고, 이웃집 검정 곰이 마실 와서 놀다가 하는 말이, 세석평전 아래에 아들딸을 낳게 해주는 신비의 샘이 있단다. 연진은 단숨에 달려가서 샘물을 실컷 마셨다. 호랑이가 산신령께 고자질을 했다. 곰은 토굴 속에 갇혔고, 호랑이는 모든 짐승의 왕이 되었고, 연진은 잔돌평전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꾸었다. 호야는 칠선봉 까마귀한테 소식을 들었으나 접근할 수가 없다. 중턱에서 날마다 목청껏 연진을 불러대던 호야, 산마루턱에 촛불을 켜놓고 속죄하던 연진. 그대로 굳어 돌이 되었다. 호야봉 그리고 촛대봉 앉은바위, 연진의 슬픈 넋이 서린 꽃잎은 해마다 붉게 핀다. 천왕봉 산신령은 연진의 정성에 노여움을 풀고 음양수를 인간에게 허락하였다.

 

충주에서 버스를 타고 거림에서 내렸다. 오솔길 따라 올라 세석평전. 몇 번을 와 봐도 가슴 설레는 곳. 수많은 사연이 서려 있는 곳. 산을 덮었다 내놨다 유유히 흐르는 건 안개인가 구름인가. 잠깐 동안 느긋하게 두어 잔 기울인다. 그리고 음양수, 바위 양 옆에서 흘러나와 하나의 샘물로 합쳐진다. 가뭄 탓인지 왼쪽, 양수는 흐르는 모습이 희미하다. 한바가지 주~욱 들이키니 뱃속까지 시원하다. 몇 발짝 아래 길가에 돌절구 확이 있다. 어렴풋 떠오르는 옛 사람들의 자취. 이 돌확은 저 아래서 지고 왔을까, 여기서 만들었을까.

 

삼선봉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 끝에 청학동. 옛날부터 사람들이 지리산 어딘가에 있을 청학동을 찾아 나섰다던데, 이상향 청학동이 어디인지는 모르는 가운데 지금 찾아가는 마을이 언제부터인가 청학동으로 불리고 있다. 무릉도원, 이어도, 유토피아, 샹그릴라, 엘도라도, 아틀란티스, ‥‥‥ 지칠 줄 모르는 그리움. 연진과 호야가 세속을 벗어나 지리산에 들어왔던 것이나 세상 어지러울 때마다 사람들이 스며들었던 것이나 모두가 그리움.

 

저쪽 어디에선가 빨지산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던데 인간으로서 이상향을 그리는 것은 죄악인가? 이상향을 찾는 몸부림은 죄악인가? 골골마다 봉봉마다 서린 사연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지리산. 거림에서 세석평전으로, 음양수로, 삼신봉으로, 청학동까지 걸으며 땀 흘리며 바라다보며 내려다보며 둘러보는 사이 온몸에 푸른 물이 듬뿍 밴다. 20100620 유병귀 최광옥 이호태 충주산과산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