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제와 함께[광교산과 수원화성]

2013. 1. 12. 12:37경기

 

“ ‥‥‥ 본래 광악산이었는데 928년에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평정하고 광악산 행궁에 머물면서 군사들을 위로하고 있을 때 정상으로 광채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이 산은 부처가 가르침을 내리는 산이라 하여 이름을 광교라 하였다는 ‥‥‥.”

 

“아주 먼 옛날 수도를 많이 한 도사가 이 산에 머무르면서 제자들을 올바르게 가르쳐 후세에 빛이 되었다고 해서 ‥‥‥.”

 

수원의 진산이라고 하는 광교산. 수원과 용인과 의왕에 걸쳐 있는 산이다. 어떤 이는 경기도의 진산이라고까지 말한다. 높지는 않지만 봉우리마다 이름이 있고, 골짜기마다 전설이 있고, 약수가 있고, 인근에 수백만 인구가 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산이다. 오늘은 충청도 충주에 있는 나를 불러들였다. 모처럼 막내둥이 근제와 함께 했다.

 

2013.01.11.(금)

광교저수지 앞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반딧불이화장실을 거쳐 산으로 들어섰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추위와 그간 몇 차례 내린 눈, 어디를 쳐다봐도 하얀 겨울이다. 산길은 수없이 오르내리는 사람들 발길로 단단하게 다져졌고 미끄럽다.

 

천년약수터에서 물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형제봉으로 간다. 형제봉에서 잠깐 내려서니 양지재, 잠깐 오르니 비로봉[종루봉]에 정자가 있다. 수원시내가 죽 내려다보인다. 토끼재로 내려갔다가 올라서니 시루봉에 광교산 푯돌이 서 있다. "582.0M" 잠깐 쉬는 동안에 근제가 손바닥에 빵부스러기를 올려놓으니 박새를 비롯한 여러 마리 새들이 번갈아 날아든다. 고놈들은 옆에 있는 나뭇가지 사이를 나닐며 놀다가 맞춤한 가지에서 자세를 잡고 손바닥으로 날아오른다. 먹이를 쪼아가지고 날아갔다가 차례가 되면 또 오곤 한다. 산새들의 노는 모양을 한가롭게 바라보다가 다시 미끄러운 눈길을 살살 긴다. 노루목을 지나 억새밭. 버스 편이 불확실한 지지대 쪽을 버리고 상광교로 내려온다. 버스에 오르기 전, 근제에게 운전을 맡긴 터라 맘 놓고 막걸리 한잔 주~욱. 그러고 보니 근제와 이런 시간을 갖는 게 꽤 오랜만이다. 아침 그 주차장에서 수원화성으로 간다.

 

 

 

 

 

* 반딧불이-천년약수-형제봉(448)-양지재-비로봉[종루봉]-토끼재-시루봉(582/광교산)-노루목-억새밭-상광교 / 수원화성

 

 

조선 정조 임금이 실학자 유형원과 정약용에게 설계를 맡겨 축조했다는 화성. 5.7Km라고 하는 성곽을 한 바퀴 돈다. 사도세자를 생각한다. 비운의 세자라고들 한다. 정신병자로 몰려 뒤주에서 죽었다고 한다. 임금인 아버지가 그리했다고 한다. 그 일을 꾸미는 데 있어 세자의 장인 홍봉한이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세자빈 혜경궁 홍씨도 또 하나의 몫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죽은 세자의 아들이 임금이 되었다. 집권 세력은 긴장을 했다. 그러나 임금이나 집권당 모두가 저간의 사정은 뻔히 알고 있는 터였을 것이다. 임금은 자신이 가진 힘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임금이 비운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가지고 축조했다는 화성 성곽을 걷는다. 정조 임금이 아버지의 능을 참배할 때 묵었었을 화성행궁이 내려다보인다.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을 생각해 본다. 수백 년, 아니 그 이상으로 뿌리가 깊을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을 생각해본다. 몇 차례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생각해 본다. 조선왕조의 백성들과 대한민국의 백성들을 생각해 본다. 민심이란 무서운 것인가, 못 믿을 것인가, 우스운 것인가.

 

 

 

 

 

 

날이 어두워진다. 1급 정교사 연수중인 난이를 만나기로 했다. 여섯 시 좀 넘어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역시 근제를 믿고 소주 딱 석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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