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8. 20:27ㆍ섬진강
봄이 오는 들판은 늘 설렘으로 다가온다.
특히 낯선 곳에서 만나는 봄 들판은 더더욱 그렇다.
해마다 만나는 봄이건만,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해마다 새로이 만나는 것이건만,
유난하게도 봄에 그렇게 설레는 것은 무엇인가?
달리는 열차 안에서, 차창 밖에 펼쳐지는 봄 풍경에 가슴이 마구 설렌다.
3월 16일 토요일, 부윰한 새벽에 충주역에서 열차에 올랐다.(06:12)
신탄진에서 전라선으로 갈아타고 순천역에 내려 한 시간 반가량 역전시장을 배회하다가
경전선 열차를 타고 하동역에서 내렸다.(13:21)
가자, 섬진강 물길을 따라 걸어보자.
이 달 3일, 섬진강꽃길마라톤대회 때 하동송림에서 하동포구를 지나 광양만이 보이는 데까지 달려갔다 달려왔었다. 오늘은 하동송림에서 섬진강을 건넌다.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이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호남, 저쪽은 영남 땅인 것이다.
길은 줄곧 강을 옆에 끼고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하얀 꽃나무들이 눈길을 당기더니 갈수록 매화꽃 천지다.
코앞에도 매화꽃, 눈을 들어도 매화꽃, 여기도 매화꽃 저기도 매화꽃.
마음은 강물에 젖고 눈은 매화꽃에 젖는다.
다음 주말부터 매화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꽃은 벌써 지천으로 피어 있다.
이 무슨 복인가.
무슨 축제건 사람들 북새통에 몸살을 앓게 마련인데,
축제에 앞서 한가롭게 꽃잎에 파묻혀 보는 복.
매화꽃은 애써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꽃송이가 크지도 않고, 향기가 진한 것도 아니다.
빛깔이 화사하거나 요염하지도 않다.
소박한 건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고,
은은한가 하면 또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꽃잎이 크지도 향이 진하지도 않지만,
화사하게 확 피어오르는 것도 아니지만,
소박한 듯, 은은한 듯, 아닌 듯, 그런 듯하다.
가만 보니 꽃잎 빛깔이 하나가 아니다.
진하게 붉은 홍매화야 눈에 확 띄는 것이기에 말할 일이 아니지만,
하얗게 보이는 꽃들도 그저 하얀 것만이 아니다.
바탕은 하얀빛깔인데 그냥 하얀 것이 있고,
알게 모르게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이 있다.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녹색이랄까 푸른빛이랄까 그런 기운을 띄는 꽃이다.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도, 봉오리를 달고 있는 어린 가지들도
함께 푸른 기운을 띄고 있어 보다 더 신선하게 와 닿는다.
홍매 청매 할 때 청매가 저렇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다.
아니, 무어 그리 시시콜콜 따지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매화꽃 숲, 끝없는 즐거움에 잠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는데 노랫가락에 마이크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잔뜩 모여 있고,
요란한 차림표를 내건 포장마차가 한 마당을 이루고 있다.
매화마을이다.
축제야 다음 주말부터라지만,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이 안 꼬일 수 있으랴.
에라, 모르겠다. 출출하기도 한데 목 좀 축이자.
요란한 음악소리에 비해 포장마차 안은 조용하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마지못해 끌리는 척, 한곳으로 들어선다.
벚굴.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 서식하는 굴이란다.
얼핏 보기에 바다에서 양식하는 굴, 석화와 비슷한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다른 것도 같다.
물속에 있을 때 보면 벚꽃처럼 보인다고 해서 벚굴이라고 한다.
광양과 하동 지역 섬진강 특산물이란다.
알이 실하다.
여기가 전라남도이니까 술은 이 지방 소주, 잎새주로.
아, 딱, 벚굴 맛이다.
다압면 소재지쯤에서 숙박을 할까 했던 마음을 바꾼다.
해도 좀 남았고, 힘도 좀 남았다.
좀 더 가자.
매화꽃은 계속 이어지고,
섬진강 푸른 물도, 하얀 백사장도,
아름다운 강변풍경도 계속 이어진다.
강 건너로 악양면이 흘러가고 성제봉이 머뭇거린다.
‘평사리 사람들’의 애환이 긴 여운을 끈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장터 사람들이 하루의 삶을 접기 시작하는 때에
화개장터에 막 들어선다.
* 3월 16일(토)
충주역(06:12) - (7:40)신탄진역(08:19) - (11:05)순천역(역전시장)(12:41) - (13:21)하동역[열차]
하동역(13:25) - 하동송림 - 섬진교 - 광양매화마을 - 다압 - (18:15)화개장터[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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