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30. 22:05ㆍ충청
일요일 아침 온몸이 찌뿌둥하고 머리가 무겁다.
그저께 장거리 심야운전부터 어제 저녁 술자리까지
한 이틀 동안 바삐 돌아다니면서 무리를 한 탓이다.
이럴 땐 산으로 간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가곡면 새밭.
잘 정비된 등산로로 들어서며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잔뜩 우거진 수풀 속에 희미하던 등산로 입구.
그 땐 비로봉까지 가는 동안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을 만났던 것 같은데
오늘은 꽤 여럿이다.
모두 합쳐 열? 역시 호젓한 길이다.
숲속에 꽁꽁 묻혀 있는 길.
아~!
소백산 비로봉에 푸른 풀밭이 좌~악 펼쳐진다.
올적마다 새로운 탄성을 불러내는 비로봉 초원.
유 선생님은 8월쯤 야생화를 말씀하셨는데
6월 30일 오늘엔 오늘의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높은 산꼭대기 너른 풀밭에서 흔들거리는 야생화 작은 꽃송이들.
몸속의 찌꺼기는 올라오면서 흘린 땀 속으로 빠져나가고
무겁던 머리는 비로봉에 펼쳐지는 풀밭에 넋을 놓는 사이에 맑아진다.
푸른 풀밭을 이리저리 누비는 바람
바람에 몸을 맡긴 풀잎들이 부대끼며 내는 저 소리
한들거리는 야생화 작은 꽃송이들
바람을 타고 유유히 비행하는 고추잠자리들
용틀임하듯 산등허리를 타고 넘는 저건 구름인가 안개인가.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간다.
풀밭을 벗어나 다시 이어지는 숲속 길.
신라가 망했을 때
경순왕은 제천 백운면 방학리에 이궁을 짓고
덕주공주는 월악산 덕주사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마의태자는 엄동설한에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금강산으로 가던 마의태자가 이곳에 올라 경주 쪽을 바라보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국망봉.
늦은맥이가 가까워지는 길에 물푸레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아~! 늦은맥이.
8년쯤 전에 2박3일 동안 일용할 양식과 텐트를 짊어지고 올라왔던 곳.
그 때 우리가 야영을 했던 자리에 통나무를 엮어 바닥을 깔아놓은 쉼터가 있다.
배낭을 벗고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른다.
고치령-마구령을 지나고 늦은목이에서 또 한 밤을 보냈던가?
늦은맥이에서 새밭으로 내려오는 길.
온 산에 내리쬐는 불볕은 숲에 가려 들어오질 못한다.
십 리가 넘는 숲속 길이 좋고, 좋고, 좋다.
매미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물소리
단순히 햇볕을 막는 정도가 아니라
산의 덩치를 느끼게 하는 숲 속
신선이 따로 있나.
여기가 바로 별천지가 아닌가.
고단하거나 고달프거든 산으로 가라.
위안을 얻고 힘을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