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28. 23:50ㆍ미얀마라오스
1월 12일.
아침 날씨가 쌀쌀하다.
트레킹을 생각하면서 여행사를 찾았다.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니, 목소리와 발음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08:45. 마우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이드와 함께 출발한다. 산길이고 고산족 마을을 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마우라이가 누나네 집에 들러 신발을 갈아 신는 사이 모닥불을 쬐고 있는 그 집 식구들과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마우라이의 자형은 석공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도로를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인 먼지 구덩이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선다.
길가에 있는 학교를 가리키면서 자기가 다닌 고등학교라고 한다. 교문에 basic education high school이라고 씌어 있다. 마우라이는 저 학교를 졸업하고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낭쉐에 대하여 물어봤다. 인구는 2,500명 정도이고, 유치원 둘, 초등학교가 넷, 중학교 넷 그리고 고등학교가 둘 있다고 한다. 이곳의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 대학은 4년제와 3년제가 있으며 마우라이는 3년제를 나왔다.
탁발하는 스님들 얘기도 나눈다. 붉은색 승복을 입은 사람들은 남자(boy), 핑크색은 여자(girl)이라고 한다. 절에서 수행을 하는 기간은 자유라며 자기는 7일 만에 뛰쳐나왔다고 한다.
고개 하나를 넘으니 산기슭에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사원이 있고 초등학교가 있다. 교실에서는 수업이 진행 중이다. 교실 한 칸에 야트막한 가리개로 공간을 나누어 세 개 반이 수업을 하고 있다. 이쪽에서는 영어 수업, 옆 칸에서는 수학 수업, 교사가 읽는 문장을 따라 읽는 아이들의 소리가 합창소리처럼 들린다.
둘이서 호젓하게 걸어가는 산길, 한국의 가을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고 날씨이다. 수확이 끝난 밭에서 생강처럼 생긴 뿌리를 하나 주워서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당연이 모를 일이지. 카레를 만드는 뿌리라고 알려준다. 뚝 잘라서 혀끝을 대어보니 정말 카레 맛이 느껴진다.
한참을 가다가 박성화 축구 감독을 아느냐고 묻는다. 축구 경기 보는 것을 좋아하며, 박지성도 홍명보도 잘 안다고 한다. 몇 구비 돌아 올라선 고갯마루에 느티나무처럼 큰 나무가 있고, 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고, 물동이 둘이 나란히 짝을 나란히 이루고 있다.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힌다.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한줄기 불어온다.
두 번째 만난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2층으로 된 개인집, 마우라이가 먼저 올라가더니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방에는 서양사람 서넛이 먼저 상 앞에 앉아 있다. 좀 기다리니 마우라이가 귤 세 개와 아보가도 반쪽을 그릇에 담아 들고 들어온다. 이게 점심인가 하면서,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보가도 위에 뿌려 먹으라고 아주 작은 레몬 반쪽이 얹혀 있다. 숟가락으로 부드러운 속살을 긁어 먹는다. 와! 맛이 기가 막히다. 고소한 것도 같고, 은은하게 감도는 그 맛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천천히 그 맛을 즐기고 있는데, 이번에는 국수를 한 그릇 들고 들어온다. 여기서 같이 먹자고 했더니 저는 부엌에서 먹겠다고 한다. 국수 맛 또한 기똥차다. 지금까지 평생 먹어본 국수 중 가장 맛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흐뭇한 기분으로 맛을 즐기고 있는데 주인 할머니가 들어오시더니, some more soup? 하신다. No, thank you. I'm full. 하니 상 위에 있는 잔에 차를 채워 주신다. ‘쩨주 덴 바대’[고맙습니다] 하니 밝게 웃으시면서 발음을 교정해 주시고는, Thank you. I'm happy. 하신다. ‘쌀로 뗏 꺼밍바대’ 하니 또 발음을 교정해 주시면서 잔잔하게 웃으신다. 언어만 다를 뿐, 꼭 어릴 적 이웃 할머니와 똑같다. 곱게 주름이 잡힌 얼굴에 정겨움이 넘친다.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시곤, 한국 사람이 좋다고 하신다. 연세가 꽤 되어 뵈는 할머니의 발음이 아주 또렷하고 또박또박하다.
느긋하고 즐겁고 흐뭇한 점심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내려가는 길.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을 느끼게 하는 날씨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는다. 인례호수가 내려다보이고, 낭쉐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저수지가 보이자 수영을 좋아하느냐고 묻고는, 저수지 물이 얕아서 수영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수영을 잘 못한다. 생각 있으면 수영을 해라. 기다려 주겠다고 하니, 웃으면서 아니라고 한다.
아, 즐거운 트레킹이었다. 미안마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일정을 마무리한다. 머우라이가, It's a nice day today하면서 정말 흡족한 낯빛을 보인다. 자기는 텔레비전에서 보는 한국 여자들이 예쁘다,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한다. 한국에 가보지 그러냐 하니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면서 돈이 없다고 하면서 낯빛이 살짝 흐려진다.
훗날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자기를 찾아달고 말하는 마우라이. 발음이 어려우면 라이라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말하는 총각. 1주일에 서너 번씩 이렇게 트레킹 안내를 한다고 한다. 8남매 중 일곱째, 위로 여섯은 시집 장가를 갔고, 자신과 누이동생이 남았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하는 번민을 엿볼 수 있었다. 맥주잔을 부딪치면서 ‘건강을 위하여’ 하는 식의 우리 풍습을 말해 주고 서로 웃기도 했지만, 힘내라는 분명한 격려 한 마디 못해준 것이 마음에 길게 남는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또 거리로 나선다. 시장 주변을 두어 차례 맴돌다 보니 가게들이 막 문을 닫는다. 엊저녁 꼬치에 맥주를 마셨던 곳은 Night market, 이곳은 Day market이라고 산길에서 라이라이가 이야기했었다. 그래, 면도 좀 하자. 문이 열린 이발소에 들어서서 면도 좀 하자고 했더니, 막 머리 깎을 준비를 하던 아저씨가 먼저 하라고 양보를 한다. 아, 이게 미얀마 인심이다. 그게 아니라고 극구 사양을 하고는 잠시 기다렸다가 면도를 한다.
트레킹도 좋았고, 라이라이와의 만남도 좋았고, 호텔 종업원의 배려로 샤워도 했고, 말끔하게 면도도 하였고, 뿌듯하고 흐뭇한 기분이 되어 양곤으로 가는 야간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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