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게 해놓고[0113]

2014. 1. 30. 00:13미얀마라오스

(1월 13일)때도 되었고, 배도 좀 고프지만 인야 호숫가에서의 미얀마 맥주 한잔을 생각하며 그냥 걷기로 한다. 좀 지친 상태로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긴 하지만, 물어물어 걷고 또 걷는다. 피곤함과 허기를 느끼지 못하는 여행이란 어딘가 싱겁지 아니한가.

 

과일가게가 보인다. 배가 더 고파진다. 냥쉐 트레킹 때 산속 마을에서 보았던 맛을 떠올리면서 아보가도 하나를 사서 먹고 간다. 이제 인야 호숫가에 가서 맥주도 한잔 하고 요기도 해야지, 하고 걸어간다.

 

저기가 양곤대학이면 이제 거의 다 온 셈이지 하는데, 아주 작은 장터처럼 보이는 곳에 원두막처럼 허술한 식당이 두엇 보인다. 가만 보니 공사판 인부들 몇이 앉아 있다. 몇 걸음 지나치다가 갑작스런 호기심이 발동하여 되돌아와 의자에 앉는다. 그들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단어는 거의 없는 셈이다. ‘밍글라바’ 하면서 인사를 하니 수줍게 웃으면서 ‘밍글라바’ 한다. 그러고는 손짓과 얼굴 표정으로 밥을 주문하여 먹는다. 만약을 생각하여 손가방 속에 넣어둔 튜브고추장을 꺼내니 재미있다는 듯 웃어댄다. 이렇게 허기는 채운 거고, 이제 인야호수 맥주가 남았다.

 

 

요기를 하고 몇 발짝 안 가니 숲 사이로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호숫가에 주점 겸 식당들이 죽 나타난다. 가장 좋은 자리를 골라 앉으면서 미얀마 맥주를 한 병 시킨다. 아, 이렇게 좋을 수가. 한 모금 한 모금 홀짝거리면서 호수를 보고 하늘을 보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한가로움을 즐긴다.

 

바로 옆 자리에 앳된 청년이 와서 앉는다. 양곤대학 동양사학과 1학년생이란다. 곧 이어 그의 친구 두 명이 더 오고, 합석을 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여 함께 앉는다. 아웅산국립묘지를 찾느라고 고생한 이야기를 하니까 씩 웃으면서 아웅산 수지를 아느냐고 한다. 미얀마 근현대사에서 아웅산 부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클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지미만 더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 여행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는 이야기, 미얀마에 대한 인상 등 잡담을 나누다가 먼저 일어선다.

 

이제 걸을 만큼 걸었으니 시내버스 체험을 해 보자. 이리저리 물어서 시내 중심부로 가는 시내버스를 찾는다. 한국에서 오셨나요? 한국 사람이면서 양곤에 살고 있다는 청년이 시내버스를 골라 태워주면서 차장에게 목적지에 잘 내려 주라는 부탁까지 해준다. 버스비는 200짯.

 

 

 

 

시내버스가 엄청나게 큰 시장통을 지나간다. 그래 장 구경 좀 하자. 내려 어슬렁거리다 보니 슐레 파고다 근처이다. 일단 물을 한 병 사들고 좀 앉아 쉴 곳을 찾다보니 가까운 곳에 잔디가 깔린 꽤 너른 공원이 있다. 그래, 앉아서 푹 쉬어보자.

 

가까이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어떤 사람은 수줍게 웃기만 하고, 어떤 사람은 몇 마디 하다가 흐려 버린다. 딱 보아 한국사람 부부가 지나간다. 전남 구례에서 왔단다. 오늘 양곤에 도착하여 방을 잡아놓고 산책 삼아 나오는 길이란다.

 

아까부터 혼자 앉아 싱글싱글 웃던 청년이 한국에서 왔느냐고 말을 걸어온다. 그예 다가와 앉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저쪽 강 건너에 살고 있으며, 전자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란다. 이 공원 이름이 마하반둘라 공원이고, 저기 보이는 건물은 네삐도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미얀마 정부청사였고, 저 옆쪽 건물은 현재 양곤 시청사라는 것을 알려 준다. 쩨주 띤 바대.

 

그는 지금 여자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결혼 상대냐고 하니까 아니란다. 왜? 현재 자기 수입이 혼자 입고 먹고 살 정도인데다가 여자 친구의 씀씀이가 너무 크다고 말하면서 웃는다. 시간이 흘러도 여자 친구는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해보라니까, 아니란다. 난 전화 안 한다면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끝내 여자 친구는 나타나지 않고,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하하. 기다리게 해놓고 오지 않는 사람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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