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서산 아라메길1-1]

2020. 5. 30. 23:19충청









아라: 바다의 옛말
메: 산의 옛말

2020년 5월 30일 토요일. 서산 아라메길 일부를 걷는다.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적 특색을 살린 서산시 둘레길이다. 운산면 용현리 강댕이 미륵불-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보원사지-개심사 삼거리-개심사-전망대-용현자연휴양림-강댕이 미륵불(1-1길).

용현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두어 발짝 거리에 있는 미륵불은 요 아래 고풍 저수지를 만들 때 옮겨 온 것이란다. 계곡으로 들어서서 다시 몇 발짝 거리에 마애삼존불이 있다. 어릴 적부터 귀에 익은 말, 백제의 미소. 아! 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 살아 계신다. 이웃집 할머니이시다. 이쪽 저쪽으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자애로운 눈길이 따라오신다. 나는 지금, 천 년 하고도 몇 백 년 더 전부터 살아계시는 할머니를 만나고 있다. 천 몇 백 년 전에 이곳 강댕이 마을에 사셨던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장인의 손길은 예술이나 기교의 경지를 벗어나 있다. 인간의 혼이나 넋을 초월한 것이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 오랜 세월 이런 놀람들이 쌓이고 쌓이는 동안 다듬어졌을 말, 백제의 미소. 백제의 미소를 머릿속에 그대로 둔 채 발길을 옮긴다.

오늘이 윤사월 초파일.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보원사 절터 한쪽에선 조촐한 법회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한 달 연기된 석가탄신 기념식일 것이다. 너른 잔디밭 가에 서 있는 오층석탑과 사리탑을 둘러보고 산길을 걷는다. 푸른 숲속 산길은 언제나 좋은 길이다.

산 너머 개심사에선 점심 공양이 막 끝나는 중이다. 왕벚꽃, 청벚꽃 시기는 지났지만, 많지 않은 절집들과 사이사이에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상왕산 개심사. 가야산의 백제 때 이름이 상왕산이고, 지금 저쪽 봉우리 이름이 상왕봉(산)이다. 옛 절터가 100여 곳 된다는 가야산은 백제 때부터 불교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전망대에 올라 땀을 닦고, 용현 자연휴양림 골짜기로 내려온다. 시원한 그늘 속이지만 햇볕은 뜨거운 날씨.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시국이지만, 휴일을 맞아 휴양림 계곡을 찾은 사람들이 꽤 많다. 다시 강댕이 마을, 시원한 그늘에 앉아 어죽 한 그릇 하고 간다.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백제 유물. 높이 2.8m 본존불 양옆에 보살입상과 반가상이 있다. 법화경에 나오는 수기삼존불을 나타낸 것으로 당시 백제 사회에 법화경 사상이 유행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한다. 1959년 4월 발견, 1962년 12월 국보 제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