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애기나리[늦은맥이-국망봉]
2020. 6. 6. 23:54ㆍ충청
- 금강애기나리를 만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야생화 작은 꽃들을 사진기에 담느라고 몸을 숙이곤 하는 사람이 알려주는 꽃 이름, 금강애기나리. 모기만하다고 하면 허풍일까. 애써 찾기 전에는 눈에 뜨이기조차 어려울 작은 꽃이다. 처음 알게 되었고, 처음 만난 귀하신 몸이다. 주근깨투성이에 별 모양을 한, 정말로 모기처럼 작은 꽃. 아, 전혀 뜻밖의 행운이다. 아니, 행운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어쩐지 속되다는 느낌이 든다. 소백산 늦은맥이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길이다.
온 천지에 푸르름이 짙어가고, 이리저리 푸른 바람이 돌아다니는 계절. 2020년 6월 6일 토요일. 소백산을 걷는다. 새밭(을전)-늦은맥이-상월봉-국망봉(1,420.8)-새밭.
새밭에서 늦은맥이로 오르는 길은 어느 여름이건 그윽한 숲속이고, 물소리가 시원하고, 새소리 맑기 그지없는 길이다. 저도 모르게 숲이 되고, 바람이 되어 저도 모르는 몸짓으로 흘러가는 길이다.
늦은맥이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물푸레나무 숲은 언제 보아도 예쁘고, 시원하고, 눈길을 끌고, 마음을 끈다. 철쭉나무 우거진 속을 뚫고 가는 길 또한 그만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기운찬 바람결에 온몸을 고스란히 내맡겨 살랑살랑, 때로는 파도처럼 흔들리는 풀잎 바다. 흔들리는 풀잎에 섞여 조용한 색깔, 조용한 웃음으로 함께 흔들리는 뭇 야생화 작은 송이들. 도대체 내려가기 싫은 길이다. 풀솜대, 은방울꽃, 큰앵초, 광대수염, 쥐오줌풀, 박쥐나물, 수리취, 참취,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온갖 풀과 풀꽃이 어우러지는 푸른 바다. 천상 화원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높은 산 위에서 맑은 바람이 가꾸는 천상 화원이요, 천상 초원이다.
유럽 알프스 너른 풀밭에 수도 없이 피어 있는 야생화에 넋을 잃었던 적 이후, 곰배령이나 금대봉, 소백산 비로봉 등을 두고 천상 화원이라 하는 말을 우습게 여기곤 했었지. 되지 못한 생각이었다. 아, 오늘 여기, 천상 화원, 천상 초원이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우연찮게 만난 금강애기나리를 보고 또 보면서, 이 꽃 저 꽃 이름을 묻고, 놀라고, 또 살피면서 넋을 잃고, 두리번두리번.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감동한다. 오늘 이렇게 보이는 만큼 놀란 가슴은 도대체 언제쯤 가라앉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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