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을 만나다[아산 봉수산]

2020. 9. 12. 23:15충청



2020년 9월 12일 토요일 이른 9시 40분. 아산시 송악면 지풍골. 봉곡사 주차장에서 하늘 본다. 예보와는 달리 쉽게 그칠 비가 아니다. 그래, 절집부터 보자.

봉곡사로 가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속으로 나 있다.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서서 제멋을 부리는 소나무들. 아니, 소나무는 그냥 거기에 서 있는 거고, 내가 내멋대로 느끼는 건가. 모르겠다. 봉곡사 만공탑 앞에서 길을 정한다.

그리 험하지 않은 산길. 그래도 빗길이라 조심조심. 빗물에도 젖고, 땀에도 젖는다. 산등성이에 베틀바위가 있고, 전설이 있다. 전쟁이 끝나고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베를 짜며 남편을 기다리다가 머리가 하얗게 센 아내는 베틀과 함께 바위가 되었다. 옛날에, 전쟁이 나면 사람들이 숨어들어 베를 짰다고 한다. 우산도 비옷도 없이 흠뻑 젖은 사람이 나타난다. 버섯이 나올 때군요. 많이 땄어요? 아니, 없어요.

봉수산(536).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봉수산(鳳首山)이란다. 표지석 앞에서, 임존선이 있는 그 봉수산이 아닌가 했으나 아니다. 따져보니 서로 멀지 않은 곳이다. 되짚어 내려오기로 했고, 그렇게 내려오는 것이려니 하고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보니 길이 이상하다. 이 길이 아닌데. 다시 올라가긴 그렇고. 사방을 둘러본다. 방향은 뻔하다. 저리로 가서 저쪽으로 가면 될 거야. 아주 잠깐 헤맨 다음 봉수사 이정표를 만나고, 편한 길을 걷는다. 봉곡사도 봉수사도 주소는 송악면 유곡리다. 봉수사가 있는 이쪽은 느릅실, 저쪽은 지풍골이다. 유곡리의 유는 느릅나무를 뜻하는 한자에서 왔을 테지.

느릅실에서 지풍골로 가는 길이 좋다. 골짜기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길가에 흐르는 실개천이 좋고, 골과 골 사이에 조붓하고 긴 들판이 좋다. 작은 들판 가득 고개 숙인 벼가 익어가는 풍경이 좋고, 실개천들을 모아 들판을 흐르는 시냇물이 좋고, 시냇물과 나란히 흐르는 길이 좋다. 산기슭 쪽으로 곳곳에 마을들이 있고, 그렇게 어우러지는 세상이 구수하다.

비는 계속 내린다. 뜨겁지 않고, 가을비가 주는 분위기가 있다. 생각지 않은 길에서 생각지 못한 풍경을 만나고, 덤으로 부족하지 않게 걷는다. 길을 잃은 게 아니다. 새로운 길을 만난 것이다.

지풍골 주차장-봉곡사-베틀바위-봉수산(536)-봉수사(느릅실)-지풍골/11Km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