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곱건만

2020. 10. 31. 23:40충청





하늘은 맑건만 문기는 하늘을 맑게 바라볼 수가 없다. 고깃간 주인이 잘못 거슬러 준 돈을 되돌려 주지 못하였고, 친구의 꼬임에 휘둘리며 괴로워한다. 끝내 맘속 부담을 떨치지 못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삼촌에게 그동안의 잘못을 고백하였고, 그제야 문기의 마음은 가벼워진다. 현덕의 소설 '하늘은 맑건만'에 나오는 얘기다. 1930년대 후반에 나온 소설이다.

충주에서 원주로 가는 19번 국도 양옆으로 펼쳐지는 산을 물들인 단풍 빛깔이, 가을 하늘 맑은 빛에 앞서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방이 온통 곱게 타오른다. 가슴이 벌렁거릴 일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을 지그시 누르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밤 잠결에 못된 꿈이 섞이긴 했었지. 요즘 까닭 없이 화를 낼 일이 있었던가. 마음을 더듬고 더듬는다.

2020년 10월 31일 토요일. 원주 봉화산둘레길을 걸어보자고 했다. 주차 예정지 입구가 공사판이다. 차근차근 살핀다고는 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옅은 안개나 눈을 부시는 햇빛은 핑계고, 백미러나 후방카메라를 믿었다는것도 핑계다. 전혀 생각도 못한 높이에 있는 컨테이너 모서리에 자동차 뒤쪽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이런.

가장 가까운 자동차 유리 전문 업체를 찾았다. 상태를 보더니, 정비 공장으로로 가야 한단다. 며칠 걸릴 거라면서 충주까지 가는 동안 버틸 수 있도록 응급조치를 해준다. 사례를 거듭 사양하는 젊은이들. 끝내 이기지 못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맑지 못하다. 억지로라도, 막 던지는 식이라도, 보답을 했어야 하는 건데. 아니, 순수한 마음을 해치면 안 되는 거지. 아니야, 쩨쩨한 합리화야. 뭔가 작은 선물을 택배로 보낼까? 전화나 메시지라도? 오히려 방해가 될까?

충주에 왔다. 토요일. 자동차 정비 공장이 어디에 있더라. 어디로 가야 할까. 먼저 찾은 공장에서 친절한 안내를 받았고, 월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다. 나오면서 보니, 이웃한 공장이 보인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보니, 훨씬 믿음이 간다.

공장에서 나와 탄금대 자전거길로 간다. 탄금대 무술공원에서 목행까지 이어지는 강변길. 둑에서 강가 숲으로 내려서서 가는 길도 있고, 반대편 늪을 한 바퀴 도는 길도 있다. 탄금대자전거도로, 중원문화순례길, 남한강자전거길, 탄금호둘레길. 여러 이름이 있고, 이쪽도, 저쪽도 저마다 분위기가 있다. 하얗게 모여 손짓하듯 흔들리는 물억새, 떨어져 흩날리는 낙엽, 발길에 밟히고, 눈길에 밟히는 가을. 가을볕을 받아내는 물빛, 물가 숲이 머금은 빛, 가을 바람이 던져주는 빛, 그런 빛깔들을 받는 가슴에 이는 빛. 시월의 마지막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