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도 보고 뽕도 따고[원남저수지둘레길]
2020. 11. 7. 23:32ㆍ충청
2020년 11월 7일 토요일. 이웃에 사는 이 선생과 함께 음성읍 삼생리 사향산 기슭에 있는 박 선생 농장을 찾았다. 어린 호두나무들, 추수를 끝낸 들깨밭, 남새밭, 당귀, 더덕 등. 닭장과 토끼장. 왕딸기나무와 메리골드 등 꽃단장을 한 진입로. 컨테이너로 꾸민 농막과 간단한 가재도구들. 커다란 느티나무를 닮은 밤나무, 농장을 둘러싼 숲에 내려앉는 가을빛, 서늘한 산 공기. 세상 이야기, 사는 이야기, 종교 이야기, 인생철학. 양념으로 섞이는 허풍과 농담. 한동안의 자리를 털고 원남저수지로 간다.
삼생리(농장)-삼용리-조촌리까지는 마을길, 자동차 도로, 둑방길을 번갈아 걷는다. 추수를 마무리짓는 손길도 있고, 휴일을 맞아 가족이나 친지들이 어울리는 풍경도 있고, 나그네 발길도 있다. 단양 장씨, 광주 반씨, 전주 최씨 집성촌엔 조상을 기리는 표시들이 있고, 마을마다 정자가 있고, 쉼터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앉아 물을 마시기도 하고, 박 선생 지인을 만나 차를 나누기도 한다. 높지 않은 산들과 조붓한 들판들과 여기저기 마을들이 넉넉하고 평화롭게 펼쳐지는 길. 냇물은 흘러 흘러 저수지로 향하고, 억새는 햇빛을 받아 맑고 하얀 머리를 하늘거린다.
조촌리에 원남저수지가 있다. 캠핑장 옆으로 둘레길을 시작한다. 와! 길이 좋다. 임도처럼 닦인 길. 구불구불 물가로 이어지는 길. 산과 물 사이를 가늘게 구불거리는 길. 점점 넓어지는 저수지. 바다처럼 넓은 물빛. 잔물결에 부서져 반짝이는 햇빛. 절정을 지나고서도 빨갛게, 아주 진한 빛깔로 핏물을 뚝뚝 듣는 단풍나무. 저수지를 빙 둘러싼 산이 예쁘다. 산속에 물이 고였고, 물가에 산이 솟았다. 산에도 물에도 시나브로 가을빛이 짙어간다. 농막에서 하던 이야기가 이어지고, 침묵하는 발길도 이어진다. 걷고 걷는 동안 좋다, 좋다, 짤막하게 토하며 온몸으로 확인한다. 원남저수지 둘레길은 참으로 좋은 길이다. 날씨 또한 얼마나 좋은가.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미루고 미루던 농장 방문. 아주 좋은 걸음을 하다. 삼생리(사향산 기슭 농장)-삼용리-조촌리-원남저수지 둘레 한 바퀴 / 20.31Km
'충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이 흐르는 쪽으로[함박산-소속리산] (0) | 2020.12.05 |
---|---|
아무 생각 없이[통동리 저수지 둘레길] (0) | 2020.11.28 |
단풍은 곱건만 (0) | 2020.10.31 |
의림지 뒷산[제천 용두산] (0) | 2020.10.10 |
그림 속에서 나온 노인들[옥천 도덕봉-덕의봉] (0) | 2020.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