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5. 22:26ㆍ충청
무섭게 번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전국적으로 방역 단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내가 사는 충주와 이웃 제천에서도 연일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여행과 김장 모임에서 시작된 전염이란다. 지난 한 주일 동안 두 지역 초중고교 모두가 등교를 중지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였고, 제천은 며칠 더 연장되었다는 소식이다. 가슴 졸이던 대입 수학능력 평가는 다행스럽게도 별 탈 없이 끝이 났지만, 이 난리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
이 와중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을 전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없는 죄도 만들어내고, 있는 죄도 없애고, 마음대로 법 기술을 부리는 검찰은 마땅히 개혁이 필요한 노릇이지만, 그게 영 만만치가 않은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의 푸념과 원성이 힘없이 사그라지곤 하는 현실. 달걀로 바위 치는 식의 시도가 몇 번 있었던가. 번번이 역시나.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고 봐야겠다. 이번에 모처럼 기회가 왔다고,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지만, 역시 검찰답게 거칠게 저항하는 형세로 보인다. 오랜 세월, 언론을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가 망라되어 굳을 대로 굳어 버린, 무소불위, 막강한 권력의 카르텔을 어찌할 것인가.
아니, 골치 썩이지 말자고 할 땐 언제고, 뭔 얘긴가. 그래, 함박산으로 해서 소속리산. 2020년 12월 5일 토요일.
음성군 삼생리에서 걸음을 뗀다. 군자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등산로'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희미한 산길을 더듬는다.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뒤 산등성이에서 제대로 된 길을 만났고, 함박산까지 왕복 4Km쯤을 다녀온다. 저 아래, 통동저수지에 길쭉하게 고인 물이 하늘빛을 담아내는 걸 보았다. 소속리산을 향한다. 무심코 가다가 산비탈을 헤맨다. 어렵게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으로 내려선다. 이리저리 오가며 방향을 가늠한다. 건물 밖으로 빨래를 널러 나오는, 봉사자인 듯한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꽃동네타워를 지나 산등성이를 향하여 간다. 정육면체 위에 공을 얹어놓은 모양의 석물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불가의 부도처럼 보이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그게 그거다. 고 김수환 추기경 이름도 보인다. 부도 숲 도로를 지나서 다시, 잠깐을 헤매다가 소속리산으로 가는 산등성이 편한 길을 찾아 걷는다. 좋다. 소속리산에서 칠장산 쪽으로 한남금북정맥을 밟다가 백야리 상촌으로 내려선 다음, 동음리를 향하여 고갯길을 오른다. 한강과 금강의 분수령, 백야고개다. 고개를 넘어서 얼마큼 내려와서 갈림길을 만난다.
어디로 가야 할까. 왼쪽 길로 들어서다가 보니, 길 아래 도랑물은 오른쪽으로 흐른다. 그렇지. 오른쪽 길로 간다. 낮은 곳으로.
함박산이나 소속리산이나 높지 않은 산이고, 너른 들판과 혁신도시와 금왕읍이 가깝지만, 백야리-동음리-삼생리 쪽은 오지라고 해야 할 산촌 분위기다. 재미있는 산 이름과 한강과 금강의 분수령. 산촌 마을들을 잇는 길에 퍼지는 초겨울 공기와 따사로운 햇빛. 물 흐르듯 가는 나그네.
삼생보건진료소-덕생교회/박서장군묘소 입구/함박산 등산로 입구-군자리 고개-함박산-꽃동네 사랑의 연수원-꽃동네타워-소속리산-한남금북정맥-상촌(백야리/한강 수계)-백야고개-승주골(동음리/금강 수계)-바깥섬이(동음리)-덕생교회-삼생보건진료소 / 22.10Km.
함박산(339.8): 충북 음성. 쪽박산이라고도 한다. 아득한 옛날,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산봉우리가 함지박만큼 남았었단다. 부산, 양산, 밀양, 경주, 평택, 부천 등 곳곳에 비슷한 전설을 가진 함박산들이 있다. 원주 미륵산 꼭대기에서, 배를 타고 바위에다 미륵불을 새기다가 물이 빠지는 바람에 미완성에 그쳤다는 마애불을 보면서, 노아의 방주를 생각한 적이 있다. 괴산군 감물면 배너미 마을에서는 장연면 방곡으로 넘어가는 배너미 고개로 배가 넘어 다녔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곳곳에 있는 무너미 고개를 넘기도, 듣기도 하였다. 정말로, 정말로 비가 엄청나게도 온다면? 천지개벽 이후, 아득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금 우리들의 상식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오랜 세월 바람결을 타고 사람들의 귓전을 건드리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산이 울었다. 바위가 피를 흘렸다. 샘에서 술이 나왔다. 전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 때로는 신앙이 된다.
소속리산(431.8): 충북 음성. 백두대간 속리산 천황봉에서 갈라진 한남금북정맥에 솟아 있으며, 산세가 속리산을 닮았다고 한다.
한남금북정맥: 속리산 천황봉에서 안성 칠장산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줄기. 한강 남쪽 금강 북쪽. 칠장산에서 김포 문수산까지 벋어가는 한남정맥과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가는 금북정맥으로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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