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할아버지[세종시 오봉산-고복저수지]
2020. 12. 19. 23:31ㆍ충청
바깥 날씨 춥다고 문 닫고 들어앉아 웅크리고 있으랴.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선다. 그래, 거기로 가자.
오봉산 하면 청평사를 품고 있는 춘천 오봉산(청평산)이 먼저 떠오르고, 조선왕조 궁궐의 오봉산일월도가 생각난다. 다섯 봉우리가 어울려 한 경치를 이루기에 생긴 이름이겠지. 대구, 인천, 경주, 보성, 양산 등 곳곳에 오봉산이 있다. 오늘은, 세종시 오봉산이다. 조치원읍 봉산리에서 오봉산을 넘고, 연서면 고복저수지 둘레를 한 바퀴 돌고, 성제리, 월하리를 지나 다시 봉산리 거기까지 17.78Km.
아침 10시, 봉산1리 마을회관 앞. 공기가 차다. 두어 발짝 거리에 연기 봉산동 향나무가 있다. 강화 최씨 종가 터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321호. 수령 440년 이상, 크기 3.2m, 가슴 높이 둘레 2.8m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반송처럼 가지를 사방으로, 넓게 벋었다. 강화 최씨 종가 안채 터와 행랑채 터를 알리는 푯돌이 있고, 작은 연못 자리와 유허비, 돌탑이 있다. 푯돌에 새겨진 숫자를 보면, 종가 건물은 1552년부터 2014년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는 얘기다.
다시 두어 발짝. 오봉산 등산로 입구에 작은 주차장 둘이 있고, 강화 최씨 숭모단이 있고, 묘역이 있고, 성씨 내력을 알리는 비석이 있다. 맨발 등산로가 있고, 다섯 봉우리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고, 정자가 있고, 심심찮게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방역 마스크 차림이다. 해발 높이(262)에 어울리는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산책길이라 여겨도 되겠다. 산을 넘어 고복저수지까지 5Km쯤? 발걸음이 가볍다.
고복저수지로 알고 왔는데, 아까부터 용암저수지 이정표가 보인다. 그게 그거겠지. 내려와서 보니 그게 그거다. 고복리에 둑방이 있고, 용암리까지 길쭉하게 물이 찬 저수지. 한쪽엔 나무 데크 길이 있고, 한쪽엔 없다. 저수지 풍경이 겨울 풍경이다. 물빛이 차갑게 맑고, 찬 공기에 씻긴 햇빛이 반짝인다. 군데군데 겨울 철새들이 떠 있고, 잎 떨군 나무들이 한 분위기 끼어든다. 저수지 둘레 중간 곳곳에 휴식 공간이 있고, 정자가 있고, 안내문이 있고, 표어가 있고, 음식점과 찻집들이 있다. 데크 길도 좋고, 자동차 도로도 좋다. 그렇게 저수지 둘레 한 바퀴. 급할 게 없는 나그네 걸음이 즐겁다.
산길도 좋고, 물가 길도 좋고, 마을길도 좋다. 오송 대장간? 허름한 담벼락 앞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할아버지. 그냥 지나치다가 걸음을 되돌린다. 안녕하세요? 그럼, 내가 하지. 5대째야. 내 나이 일흔인데, 열세 살, 국민학교 졸업하고부터 했으니께. 아니야, 공주. 정부청사 짓는다고 해서 이리(월하리)로 쫓겨왔지. 12년 됐나. 예전만 못한 게 당연한 일이지. 그러니 어떡혀. 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는데. 이제 그만이지 뭐. 누가 (이어서) 또 하겠어. 예,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봉산1리 마을회관 앞. 괴산 친구에게서 전화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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