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1. 23:41ㆍ충청
매월당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자 21세에 승려가 되어 전국을 떠돌다가 만수산 무량사에서 여생을 보냈다. 법명은 설잠(雪岑). 부여 무량사에 그의 부도와 시비와 영정이 있다.
2023년 4월 21일 금요일.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만수산을 걷다. 산등성이 너머는 보령시 성주면이다.
무량사 일주문 앞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일주문 안으로 들어섰다. 극락교 건너 왼쪽에 매월당 시비와 부도가 있고,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장군봉 갈림길에서 숨을 고르고, 조루봉을 지나고, 전망대에 올라 땀을 씻고, 비로봉에서 태조암 쪽으로 길을 잡아 내려오다.
버려진 것인가. 태조암엔 인적이 없다. 빛바랜 절집과 어지러이 흩어진 검불들과 마른 풀밭이 된 마당. 마당가에 황매화 한 무더기 피었고, 그 뒤에 자목련 한 그루가 꽃을 피웠다. 연둣빛 번지는 산속 맑은 햇살 아래 고요한 태조암.
이제 길은 마찻길처럼 널찍하다. 느티나무가 많고, 탱자나무 하얀 꽃이 예쁘고, 애기단풍 어린 잎들이 예쁘다. 갓피어나는 어린 연두 산빛이 예쁘다. 옆길로 150m 거리에 있는 도솔암 닫힌 대문 또한 조용하다.
만수천을 따라 극락교 쪽으로 걷는다. 내가 걷는 길은 만수천 개울가로 난 오솔길이고, 개울 건너에 무량사가 있다. 개울의 서쪽이다. 이쪽, 개울 동쪽에 있는 평지가 꽤 넓다. 절터라고 한다. 2003년 학술조사 과정에서 건물터와 주춧돌, 기와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고, 서쪽에 있는 지금의 무량사 못지않은 절집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무량사구지(無量寺舊址)' 안내판에 적혀 있다.
천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다. 이리저리, 느릿느릿, 둘러보고, 바라보고, 들여다본다. 극락전과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 마당, 오층석탑, 석등, 동종, 김시습 영각과 초상 등등. 김시습 초상화를 카메라에 담으려다 보니, '촬영 금지' 문구가 보인다. 그래, 참자.
무량사: 신라 때 창건, 고려 때 중창, 임진왜란 때 불에 탔고, 인조 때 다시 지었다. 2층 극락전을 중심 불전으로 하는 아미타 사원이다. 오층석탑, 석등, 극락전, 미륵불 괘불 탱화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고, 매월당 초상화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다.
절집 안팎으로 오래된 느티나무가 많다. 몇 아름씩 될 고목 줄기와 하늘을 찌르는 가지들, 막 피어나는 나뭇잎들. 여기저기에서 시원시원하다. 맑은 햇빛 머금은 바람결 또한 시윈하고 시원하다. 오늘 하루 또 이렇게 속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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