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5. 20:31ㆍ충청
신라 승려 의상이 당나라에서 공부할 때, 그를 사모하는 여인이 있었다. 선묘 낭자라고 한다. 의상이 청혼을 거절하고 신라로 가는 배에 오르자,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은, 선묘의 혼을 달래기 위해, 당나라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절을 짓는다. 지금의 도비산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있다. 마을 사람들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천둥번개가 치고, 큰 돌이 공중에 떠돌면서, 일을 방해하면 큰 재앙을 내리겠다, 고 호통을 친다. 절집이 완성된 후, 공중에 떠다니던 검은 돌은, 절집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바다(적돌만)에 떨어져 '검은여'가 되었고, 절 이름은 '부석사'가 되었다.
영주 부석사와 이름이 같고, 동일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창건 설화도 거의 같은 내용이다.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이고,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이다.
2023년 5월 15일 월요일. 도비산 부석사를 둘러본다. 몇 아름씩 되는 느티나무 고목 숲속에 고만고만하게 작은 절집들이 모여 있다. 극락전, 안양루, 관음전, 산신각 등등. 날아갈 듯 가지를 늘어뜨린 늙은 소나무도 있고, 아주 작은 연못도 있다. 마애불이 있고, 일제강점기에 만공 스님이 수도하였다는 토굴이 있다. 고목 우거진 숲에 싸인 그윽한 분위기가 있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이 소백산 여러 산줄기가 어우러지는 멋이라면 여기, 서산 부석사 안양루에서 내려다보이는 것은 천수만을 메워 만든 간척지 너른 들판이다.
다시 일주문 앞으로 내려와서 해넘이 전망대 쪽으로 길을 잡는다. 전망대에서 한 굽이 돌아 고갯마루에서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들어선다.
도비산 마루(351.5)에서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바다 안개 엷게 낀 간척지 들판을 바라본다. 석천암 갈림길 가에 의자가 있다. 한참을 앉아 푸른 그늘, 푸른 바람을 즐긴다. 산위에서 맞는 바닷바람이다. 싫도록 앉았다 간다. 그냥 좋다. 그냥 좋은 이 맛을 즐기러 온 것이지.
땀이 식어 살짝 찬 기운을 느끼면서 다시 걸음을 뗀다. 해맞이 전망대에서 다시 너른 들판을 내려다본다. 저쪽 끝에서 바닷물도 반짝인다.
해넘이 전망대와 해돋이 전망대. 그러니까, 도비산 이쪽에서 해돋이를 보고, 저쪽에서 해넘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이렷다.
임도를 따라 걷는다. 동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가 봐야지.
완만한 오르막 몇 굽이 끝에 나타나는 작은 절집은 東庵이라고 쓴 현판을 달고 있다. 말 그대로 암자인 셈이다. 마침 주지 스님께서 나오신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아주 작네요. 아니죠, 아주 큰 것이죠. 우문에 선답이다.
차 한 잔 권하시는 말씀에 따라 방으로 들어선다. 찻물을 끓이면서, 설법 아닌 설법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신다.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창문을 연다. 천수만 들판이 한 폭의 그림이고, 바닷바람에서 풋풋한 산 내음이 풍긴다. 발효차, 그 맛이, 맑은 것인가, 그윽한 것인가. 모르겠다. 그냥 좋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부석사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있다. 산 허리에 걸려 구불거리는 길. 숲 그늘 속에서 나풀거리는 길. 나그네 발걸음도 나풀거린다.
으음, 百草是佛母라. 처음 그 자리에 와서 보니, 9.5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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