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6. 21:31ㆍ충청
"... 질그릇, 농기구, 소금, 젓갈 등이 고개를 넘어 내륙으로 팔려 갔다. 때로는 고개에 장이 서기도 했다. 밤이면 상인들이 밝힌 횃불이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연쟁이고개.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연암산과 삼준산 사이에 있다.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내륙에서 바닷가로 통하는 고개로서, 양쪽 지방의 물산이 유통되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때로는 장이 서기도 했단다. 흥정 소리 등 자주 떠들썩했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으리.
2023년 5월 16일 화요일. 아침 일찍, 고북면 장요리에서 천장사를 지나 연암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이다. 연쟁이고개 정자에 앉아 여유를 부린다.
연암산 마루 코밑에 자리한 천장사는, 天藏庵이라고 쓴 현판을 달고 있다. 글쎄다. 암자라고 보기엔 좀 큰 것 같기도 하다. 庵과 寺는 어떻게 구분되는 걸까. 해월, 만공, 경허 등 고승들의 자취가 있어 '사(寺)' 자를 넣어 부르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산꼭대기 바로 밑에 자리한 절집이 범상찮은 기운을 풍긴다.
천장사에서부터는 더욱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이다. 언뜻언뜻 내려다보이는 너른 들판과 먼 하늘. 잠깐만에 산마루에 오르고, 구불구불 산등성이를 느릿느릿 걷는다. 허물어진 돌성도 보인다. 따가운 햇빛을 가려주는 숲 그늘 속에서 산들바람을 만끽한다. 유유자적하는 기분에 젖는다.
서산 '아라메길' 둘째 구간, '원효 깨달음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를 얼마쯤 따라다니다가 산마루로 되돌아와서, 삼준산 쪽을 가늠하여 내리막길을 잡았다.
연쟁이고개에서 삼준산 마루까지 1.7Km.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가는 눈길을 거두고, 임도를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하늘을 찌르는 편백나무, 소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그 그늘 속에서 구불거리는 길이, 좋다.
"글을 몰랐던 수월 스님은 밤낮 천수대비주를 외었다. 어느 저녁 무렵, 태허 스님이 물레방앗간을 들여다보니, 수월 스님이 돌확에 고개를 박고 곤히 자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물레방아에 물은 계속 차고 있는데, 절굿공이는 허공에 박힌 듯 멈춰 있었다. 태허 스님이 수월을 돌확에서 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이질이 시작되었다."
하하. 대단한 뻥이다. 곳곳에 이처럼 기이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수월 스님이 천장사 부엌에서 불을 때다가 삼매에 들었을 때, 몸에서 빛이 발하여, 마을 사람들이 불이 난 줄 알고, 뛰어 올라왔었다는 둥.
그저,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웃어넘기고 말까. 물론, 어떤 의도가 맹랑한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할 것이고, 비유나 상징 등의 장치를 사용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가끔씩, '세상에는 어떤 일이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황당한' 이야기들을 긍정하고, 믿음을 두곤 한다. '황당한' 소견일 뿐일까.
"도를 닦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달은 차면 기우는 법 ..."
등등의 '말씀'들도 있다.
어느새 처음 그자리. 가벼운 한 걸음을 이렇게 접는다. 7.06Km. 예산 읍내에 가서 장터국밥 한 그릇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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