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2. 23:24ㆍ강원
2023년 9월 22일 금요일. 어제까지 이틀 동안 가을비가 추적이던 하늘은 맑아졌고, 바람이 선선하다. 정선군 남면 낙동리 개미들미을에서 걸음을 뗀다. 마을 앞 지장천에 제법 많은 물이 흐른다. 함백산 쪽에서 흘러내려, 고한, 사북을 거쳐 왔고, 저 아래 가수리에서 동강에 빨려드는 물줄기다.
광락로에서 수와우길로 접어든다. 돌배나무 가로수가 이색적이다. 푸른 잎새에 섞인 동글동글한 열매가 누렇게 익어간다. 지장천으로 가는 물줄기를 옆에 끼고 거슬러 걷는다. 포장도로이지만, 자동차 통행이 거의 없는 조용한 길이다. 이따금 나타나는 비탈밭에는 붉은 수수와 콩이 한가득하고, 어쩌다 들깨가 보인다. 수수밭은 추수가 끝난 것도 있다. 충주보다 가을이 많이 이른 걸 본다.
수와우길에서 갈라지는 길은 널찍한 산길이다. 좀 가파른 길에서 대여섯 차례 물을 건넌다. 비 갠 뒤라서이겠지, 징검돌들이 여럿 잠겼다. 어쩌다 첨벙, 오랜 옛적, 어린 몸짓도 이랬었지.
오선암엔 인적이 없다. 어디 출타하셨겠지. 아, 이 험하고, 깊고, 적막한 산속에서 스님들이 염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니,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삶이란 무엇인가. 상이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공인가, 색인가, 상인가.
높은 곳에 올라 오선암 한 줌 절집을 조용히 내려다본다. 조용히 발길을 돌린다. 조용히 내려온다. 절집 마당으로 오르는 길가에 구절초 하얀 얼굴들이 줄지어 볕을 받고 있다. 가볍게 흔들리는가. 내 마음이 흔들리는가.
개미들마을에 돌아와서 지장천 물줄기를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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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개미들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 칠현로 길가에 거칠현유적공원이 있다. 정선아리랑 발생지라는 백이산, 일곱 고려 충신이 숨어 살았었다는 거칠현동. 칠현사에 일곱 충신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바로 옆에선 유적 공원 확장 이전 공사가 한창이다. 지역 발전을 꾀하는 관광 자원 개발 사업이려니.
: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의 충신들이 개성에서 가까운 두문동으로 들어가 두문불출하며 망국의 한을 삭였다고 한다. 조선 개국 공신들의 회유와 협박 끝에 일부는 새 왕조에서 일하였고, 일부는 정선 땅으로 스며들었으며, 남은 사람들은 두문동에서 산불에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들 중 일곱이 소마평(지금의 남면 소재)을 지나 백이산 골짜기, 거칠현동으로 숨어들었고, 산나물을 뜯어 먹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잃어버린 왕조를 회상하며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랫가락에 실어 읊었다고 한다. 이 가락은, 구슬픈 사연과 함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오늘날의 정선아리랑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정선 아라리라고도 한다.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가기 전에 있는 두문동이 생각난다. 싸리재를 두문동 고개라고도 한다. 거기에서도 이런 얘기를 들었던가.
거칠현유적공원: 정선군 남면 낙동리에 있다. 거칠현 골짜기로 숨어들었다는 일곱 충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칠현사가 있는 유적 공원이다. 매년 10월 초, 정선아리랑제 때, 칠현사 제향이 있다고 한다.
거칠현 일곱 충신: 채미헌 전오륜, 화의옹 신안, 수은 김충한, 도총제 고천우, 존암 이수생, 변귀수, 김위.
백이산: 정선군 남면에 있다. 해발 972.5m. 아득한 옛날, 엄청난 홍수가 났을 때, 산꼭대기가 감투만큼 물 위로 솟아 있었다고 하여 산꼭대기를 감투봉, 감태봉이라고 한다. 물이 빠진 후에 산 위에서 파손된 배의 조각이 발견되어 '배이산'이라고 하던 것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백이산'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백이숙제'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말도 있고, 수양산이라고도 한다. 위에 소개한 것처럼 정선아리랑 발생지로 알려져 있다.
개미들마을(정선군 남면 낙동리)-광락로-수와우로-산길-오선암. 왕복 11.5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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